미세먼지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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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후 칼럼] 고등어, 경유차 문제? 공공의 이익 위한 정책 마련돼야

매일 출근길에 숲을 거쳐 일터로 간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창밖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창문 너머 물체가 가물가물하다. 시야를 가린 것이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헷갈린다. 휴대폰에 뜬 미세먼지 경고 문자를 본다. 며칠째 미세먼지에 둘러싸여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서 만난 사람들은 입 가리개를 착용하고 있다. 짙은 녹색으로 변한 청정 숲에서 미세먼지의 공격을 실감한다. 사람은 무사했으나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미세먼지가 우리 삶을 괴롭히는 골칫덩어리가 된지는 오래됐다. 미세먼지는 인간이 움직이는 모든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급격하게 농도가 높아지고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면 존재감이 드러난다. 언론의 보도 프레임으로 확산된다. 정부가 반응을 보이면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뀐다. 2015년 한국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9.1㎍/㎥로 OECD 평균(14.05㎍/㎥)의 두 배이며 1위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의 지시, 6월 3일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로 공론장에서 역할은 끝이 났다. 공론장에 등장한 이후 경유차, 화력발전소, 고등어가 주목 받았다. 국민 생선 고등어는 억울하다. ‘클린디젤’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경유차가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경유차를 멀리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다. 친환경 구호로 포장한 정부 대책에서 진정성이나 책임감, 신뢰감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확실하다. 반복되는 위험신호로부터 낙관적 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세먼지는 특별한 무엇을 의미한다. 평등성, 유해성, 인공, 정책성이다. 공간을 보편화시켜 모든 사람을 골고루 공격한다.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쉽지만 온 몸을 파고들어 파괴한다. 꽃가루병인 건초열(Hay Fever)과 달리 인간이 원인을 제공한다. 증상이 심하면 정부가 정책을 내놓는다. 정책을 놓고 부처 이기주의와 이해 당사자의 저항은 심하다. 

누구는 미세먼지를 경제성장의 과실 내지는 훈장으로 여긴다. 미세먼지를 검증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경제를 망친다고 주장한다. 전체차량의 절반이 넘는 경유차는 버스와 영세사업자, 자가용 소유자에게 지켜야 할 대상이다. 값싼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의 폐기는 업계와 일반시민을 쉽게 납득시킬 수 없다. 지리적 거리가 없어진 세계화시대, 산업 발전은 미세먼지를 양산해 이웃나라로 전파한다. 무제한의 월경은 없다는 연구결과를 볼 때 모두 중국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그렇다고 이웃 국가와의 공조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 내부의 대량 배출처로 지목된 경유차와 화력발전소는 오늘날 무엇을 상징하고 인간과 어떤 관계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클루언이 말한 ‘미디어는 인간 육체의 확장, 메시지다’라는 통찰과 통한다. 

‘클린디젤’, 저렴한 연료비로 대변되는 경유차는 인간 육체를 공간과 시간으로 확장시킨다. 자동차는 인간을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미디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전기차, 수소차 등 수 많은 자동차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유차의 배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당분간 값싼 경유차의 매력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차량 소유의 사회 심리적 이점은 미세먼지의 부의 효과보다 크다.

전력은 석탄, 석유, 원자력, 수력, 풍력, 조력, 태양 등 다양한 원천에서 생산된다. 환경 비용을 빼면 석탄 화력발전은 저렴하다. 인간은 전기 없이 살 수 없다. 전기는 현대 미디어를 작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네트워킹과 소통을 위한 필수재다. 전기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세먼지는 메시지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매일 전기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견강부회라고 말하기에는 계면쩍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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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현대는 ‘위험의 시대, 불안의 시대’다.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 악화는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무엇인지 실체를 다들 잘 안다. 혹시 안개로 생각하고 감상에 빠질 수 있다. 이제 안개도 미세먼지와 섞여있기 때문에 비호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미세먼지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수용돼야 한다. 미세먼지의 공공성과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공유, 학습하고 소통능력을 키운다면 미세먼지의 수준을 낮출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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