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말 서방 선진국 G7 회의가 맥없이 끝난 직후 프린스턴 대학의 역사 및 국제관계 교수 헤롤드 제임스는 “반격을 당하고 있는 세계화”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여러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주의 및 포퓰리즘을 걱정했다. 또한 차기 G7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프랑스의 마린 르 팽, 영국의 보리스 존슨, 이태리의 베페 그릴로, 독일의 후라우케 페트리 같은 자들의 모임이 되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역 및 이민에 있어서 극단 보수주의 내지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호무역의 양상도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일본 자동차의 수입을 걱정하던 것은 옛말. 생산시설의 현지화가 추진되면서 이제는 외제차가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상표를 달고 출하된다. 이제는 외국상품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외국자본과 외국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영어로 “앤티 이스테블리시먼트(Anti-establishment)”라고 말하는 것, 즉 “사회적, 정치적 기본 틀 또는 그 틀을 움직이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서방 여러 나라에서 힘을 받고 있다.

60년대에 월남전쟁 후에는 전쟁에 대한 회의 및 삶의 목표 상실이 이런 “앤티” 정서의 근원이었다면 지금은 오래 끌고 있는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이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의 상층부에 군림하고 있는 소수의 지배집단이 하는 일이라곤 금리를 내리거나 돈을 찍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제로금리의 장기화로 자산가격만 오르고 있는데 자산 축적이 없는 99%는 무능한 지배집단에 대해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뉴욕 타임스의 명 칼럼니스트 로저 코헨은 트럼프-베를루스코니 신드롬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곤궁이 극에 달할 때 검증되지 않은 사업가가 정치인으로 급부상하는 현상이다.

이태리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끈 포르자 이탈리아(“전진하라 이태리”)당이 창당 3개월 만에 총선 승리를 했을 때와 지금의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유사하다는 이야기다. 당시 이태리에서는 여러 기존 정치인들이 부패 스캔들로 얼룩져 있었고 그 반사이익을 공산당 계열의 정당이 얻으려 하고 있었다.

4개의 TV사를 소유한 언론재벌이며 AC 밀란 축구단의 주인이기도 했던 그는 1994년부터 2011년 까지 17년 동안, 선거에서 승리했던 절반의 기간은 수상으로, 선거에서 패배한 다른 절반은 막강한 야당 정치인으로 이태리의 정치를 농락했다.

반 세계화로 가는 미국과 서방

1989년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 “역사의 종언”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하여 시장자본주의와 함께 인류의 진화과정의 최종 형태이자 역사의 종착점”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랬던 그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로 글로벌 경제위기로 확대되고 있던 2011년에는 “미국식 민주주의와 앵글로색슨 자본주의는 이미 전세계적인 대세가 아니다. 중국은 이번 금융위기 때 별 타격을 받지 않아 중국 모델이 우월한 게 아니냐는 인식도 없지 않음”을 인정했다(2011.1.18 파이낸셜 타임스) 

그는 또 금년 1월에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공개했다(2016.1.12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일대(一帶)는 중국 서부지역과 중앙아시아, 러시아, 중동 및 유럽을 연결하는 육로를 말하며 일로(一路)는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통해 사우디 반도와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는 항로를 말하는데 필요한 자본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

중국의 발전 모델에서는 국가가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직접 수행한다. 앵글로 섹슨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전체주의적 자본주의가 민간부문의 창의를 침해하고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두 모델의 차이는 가정의 차이일 뿐이다. 전자는 권위적이지만 능률적이고 청렴한 정부의 존재를, 후자는 합리적인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효율적 시장의 존재를 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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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서방의 민주주의는 대중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포도 알처럼 커지고 있는 지금 그것을 해결하려는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하려는가?

세계대공항의 와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우리의 두려움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던 숨은 뜻은 두려워하지 말자는 격려 외에 두려움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경향에 대한 경계에 있지 않았을까? 바로 전 1,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독일이 바로 그런 정치의 희생물이 아니었던가.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6월 22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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