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석 칼럼] 원 지사 손에 쥔 저울과 제주특별법을 상상...도민 입장서 가치 저울질하길

지금 제주사회에는 제주의 미래 가치 논쟁이 한창이다. 

원희룡 도정이 제주 미래의 핵심가치로 ‘청정’과 ‘공존’을 채택하고 제주의 현안문제·이슈와 미래 트랜드 변화를 토대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를 실현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하면서 불쏘시개가 됐다.

그 배경은 글로벌화, 시장중심, 효율과 성장 일변도의 국제자유도시 전략에 대한 반성에서이다. ‘국제자유도시의 덫’에서 벗어나 청정과 공존의 핵심가치를 구현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인간의 삶은 가치 관련적일 수밖에 없다. 그 가치는 정신적, 자연적 가치 외에도 물질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화무쌍해도 인간의 삶속에는 사랑·도덕·정의의 정신적 가치는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런 가치와 생존과 문화적 삶에 필요한 여러 가치가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역사에 역동성을 부여해 왔다.

이런 가치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인식되는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있었다. 가치란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보는 학설도 있으나, 가치는 사람마다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라 보는 학설도 있다. 

후자에서 말하는 가치의 주관성과 상대성은 근대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신(新) 간트학파의 선구자 리케르트(H. Rickert)는 가치란 현실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효력을 가지는 것이며 또 타당성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글로벌화의 거센 물결은 IMF 외환위기를 혹독하게 겪은 우리더러 무한경쟁에서 살아 있으려면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정부의 주도로 2006년 7월 1일 자치분권의 특례를 규정한 제주특별자치도를 설치하여 국제자유도시로 조성·발전시키겠다는 미래비전이 현실화됐다.

이를 법의 그릇에 담은 것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약칭 : 제주특별법)이다.  

겨우 10년을 달려왔지만 참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각종 규제완화를 통한 외자유치 성공, 연간 관광객 550만→1300만 명, 상주인구 56만→65만 명, 지난 7년간 연평균 지역내총생산(GRDP) 6.9% 증가 등 주요 경제지표가 크게 나아졌다. 다른 한편, 세계생물권보전지역·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의 영예를 얻음으로써 자연이 잘 보존된 보물섬으로 외국인들에게 알려져 제주의 브랜드 가치와 도격(道格)이 상승됐다.

시쳇말로 ‘개발과 보존’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현란한 겉치레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시민사회의 경고음이 울렸다. 2014년 정초 제주지역 농업, 노동, 환경, 인권, 여성, 4․3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신년하례 석상에서 강조한 것은 “공공의 사회적 가치”였다. 그 가치 실현을 위해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행복한 제주사회 건설”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참뜻이다. 

특별자치를 수단으로,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을 목표로 하여 제주가 추구하고자 한 가치는 청정 · 평화 · 행복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정해군기지 건설사업, 영리병원 도입 등 공공정책의 시행과정에서 가치의 충돌이 발생하는 등으로 가시적 ·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도민의 행복감은 떨어졌다.
 
지난 10년의 특별자치도의 성과에 대한 중앙정부의 평가에 따르면 제주 특별자치는 적어도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주관적, 상대적 평가다. 관념적인 것이다. 오감으로 체험하는 도민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주택과 교통문제, 청년실업 문제가 풀리지 않고 해를 거듭할수록 켜켜이 쌓이고 또 사회안전망도 허술하다는 것이다.

개발의 효율성과 가치의 선택과 집중을 잘하라는 뜻에서, 5차례 제도개선을 통해 국가사무 4537건이 제주특별자치도에 이양됐다. 하지만 제왕적 도지사라는 닉네임과 달리 가치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했다.

여러 가치가 충돌할 때, 가치균형성의 원칙이나 피해최소성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허물이 크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의 동질성과 연속성을 훼손하였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도의회는 모법(母法)에서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위임조례’를 제정하여 도지사의 제왕적 권한 남용을 억제할 수 있었음에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일례로, 제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산간이 개발의 미명 하에 파괴돼 미래의 소중한 자산을 보존하지 못했다. 특히 생태계의 보고이자 지하수 함양지대인 곶자왈 109㎢ 중 약 20%가 피폐화된 까닭은 개별허가방식에 의한 관광개발이 그 원인이다. 2009년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변경하면서 3개 단지, 20개 관광지구가 폐지돼 대규모 관광시설이 곶자왈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제주특별법이란 이른바 공존의 질서이며 서로 경합하고 충돌하고 심지어 서로 모순될 수도 있는 제주공동체 내의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수단이다. 도지사는 특별법을 적용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분이다. 도지사가 가치의 저울질을 잘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돌아온다.

우리 대법원에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오른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있고, 왼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으며 옷은 우리나라의 전통 의복을 입고 있다. 법전 대신 칼을 들고 있는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정의의 여신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저울은 법의 형평성을 의미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공평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양팔 저울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올바른 판단의 근거가 되는 법전을 들고 있어 정의 실현의 의지를 나타낸다.
  
상상해 본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저울은 가치의 형평성을 의미할 수 있다. 원희룡 도정이 제시한 청정과 공존 가치는 저울의 양쪽 추(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청정의 추(錘)에는 자연-치유-휴양-건강의 가치가, 공존의 추(錘)에는 평화-문화-사람-세계화의 가치가 구슬처럼 달려 있어 아름다운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도지사의 왼손에 쥔 제주특별법은 정의로운 법집행의 권위를 상징한다. 

정의의 여신상을 떠올리는 이유는, 예래 휴양단지나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의 사례에서 보듯 과거의 잘못된 법집행을 버리고 다수의 도민 입장에서 가치의 저울질을 잘 해달라는 주문에서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 비전과 원희룡 도정의 미래비전은 언어적 포장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법정 계획인 2차 종합개발계획을 살펴보면 제주의 여러 가치를 보호하고 창조적으로 자원화 하겠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법적 개념(제주특별법 제2조)이다. 과거 10년 간 그 개념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가치 전도(顚倒)적이었다는 점을 반성하고 치유책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 제주특별법 제1조(목적)에 '도민 복리증진'과 '친환경적'이라는 문구를 삽입하자고 6차 제도개선의 방향을 설정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아래 [표]를 보면, 제주발전을 바라보는 90년대 도민의 시각과 2000년대 국가의 시각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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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1일은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앞날이 밝지만 않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몰고 올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반(反) 세계화의 흐름이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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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석 <제주의소리> 상임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이럴 때일수록 관용과 포용심을 드러내 선린(善隣)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공존의 가치를 증장시켜야 한다. 제주인의 삶속에 유전자로 스며든 삼무정신과 해민(海民)정신이 있어서 든든하다.

중요한 공공정책 결정이 정부나 관료집단이 아니라 도민 다수가 참여하는 협치(協治)에 의존할 때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또 경제발전목표를 성장극대화가 아닌 고용극대화, 즉 청년실업 해소에 방점을 찍을 때 행복한 제주사회가 올 것이다. / <제주의소리>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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