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순 명인과 두 아들 의기투합, 제주 향토음식전문점 '낭푼밥상' 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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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이 낭푼밥상의 코스 요리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제주 토종 참기름을 곁들인 독새기(달걀) 반숙입니다. 제주에선 달걀을 약으로 여겼는데, 손지(손자)가 아프면 할머니가 몰래 만들어주던 귀한 요리이기도 했지요. 음식을 내오면 대개 중년 남성들이 무릎을 칩니다. 그 때 먹던 음식이라고.”

음식을 내오던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의 설명이 2시간이나 쓰이는 코스 요리의 시작을 알린다. 10여 가지에 달하는 모든 요리는 제주 토종 재료로 만들어진 향토음식이다. 혼바당, 오메기술, 맑은바당, 녹고의 눈물, 고소리술 등 제주 전통주 5종도 선택하면 곁들일 수 있다.

최근 문을 연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소재 '김지순의 낭푼밥상(이하 낭푼밥상)'에서의 풍경이다. 제주 향토음식의 체계화와 고급화를 표방한 향토음식전문점으로 제주 향토음식 대가인 김지순 명인과 그의 아들인 가수 양호진, 양용진 원장이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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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순 명인의 두 아들인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왼쪽)과 가수 양호진(오른쪽).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첫 음식에 이어 푸른콩된장 드레싱을 곁들인 제주 채소 샐러드, 문게죽(문어죽)과 물김치, 빙떡과 옥돔구이, 삼색전, 전복양념찜과 날초기구이, 한치성게물회가 차례로 나오는데 이제야 전식이 끝난 참이다. 

주요리인 낭푼(양푼)밥상은 현대적인 재해석이 더해졌다. 제주 해녀들이 즐겨 먹던 낭푼밥상은 간단한 조리법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누구든 숟가락을 얹어도 부담이 덜하다는 특징을 지녔다. 제주 문화의 뿌리인 공동체 정신이 함축된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지슬밥(감자밥)과 성게미역국, 우럭콩조림, 자리젓, 쌈채소와 각종 밑반찬이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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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리인 낭푼밥상.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손님이 오면 생선 한 마리를 ‘온차’(온채) 내놓는 것이 대접이라 생각했던 제주인의 인심을 엿볼 수 있지요.” 양 원장이 설명을 보탰다. 

식초나 된장 등 전통방식으로 재현한 양념을 써서 본래의 맛을 살리고, 수수하지만 입맛을 돋우는 데코레이션과 플레이팅으로 보는 재미도 빠뜨리지 않았다. 게다가 각 음식이 지닌 옛 이야기나, 조리법을 개발해낸 뒷얘기까지 모두 코스에 포함된다.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는 제주 토종을 고집한다. 제주산 식자재 유통 체계를 갖추기 위해 양 원장은 4년 전 (주)오제이상사를 꾸리기도 했다. ‘제주도를 뒤진다’는 그의 표현처럼 발품을 판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정이 없지만 ‘진짜 제주’를 맛보여주고 싶은 것이 이들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문 연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소문을 접한 제주 안팎의 고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제주 토박이들은 저마다 추억을 털어놓기 바쁘단다. 수도 없이 제주에 왔다는 외국인에게도 “진짜 제주 음식을 맛봤다”며 감탄한다. 점심 코스 기준 1인 5만5000원으로 부담이 적지 않은 가격이지만 막상 식사를 마치면 만족스러운 반응이 대다수다. 

어머니가 평생 쌓아온 경험과 수집품 등을 망라한 향토음식박물관을 짓겠다는 바람으로 유수암에 부지를 사둔 것이 15년 전. 그 동안 외국인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행사에 초대돼 제주향토음식 시연에 나서면서 “이 음식은 어디에 가면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머쓱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제주향토음식을 선보여야겠다는 의무감이 세 모자를 움직이게 했다. 요리학원 운영과 전통요리 시연, 그리고 식자재 유통까지 등 모든 경험을 밑바탕으로 여기며 긴 호흡으로 준비해온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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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2층 홍차 카페 '판'의 내부.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건물 2층은 시쳇말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베이커리와 홍차를 다루는 카페로 영 다른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형인 양호진 씨 부부가 일본과 영국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모아온 다양한 종류의 홍차와 찻그릇을 만날 수 있다. 곧 베이커리도 겸해 제주산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할 계획이다.

바깥 테라스는 공연장이다. 사방이 숲인 까닭에 일부러 연출하지 않아도 근사한 분위기를 누릴 수 있다. 조금 더 모양새를 다듬고 나면 어쿠스틱 공연이나 하우스 콘서트 등을 열 참이다. 

공간 통째로 세 모자(母子)가 잘하는 것들로 채워진 셈. 그럼에도 양 원장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제주 토종 식재료 확보부터 레시피 개발, 상용화와 낭푼밥상 2호점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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