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㊶> 운명에 따르는 삶, 불행인가? 행복인가?


최근 검찰 고위직인 전·현직 검사장이 쇠고랑을 차고 청와대 고위직이 비리 의혹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걸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싶다. 만일 부모 잘 만나 좋은 대학 나오고 고시 패스해서 소위 잘 나가는 자들의 무리에 끼어 있었다면 나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 지금껏 온전했을까?

이 나라의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자’라고 하지 않던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70여년 동안 각종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간 정치인, 고위 공직자 수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수 백에서 수 천에 이를 것이다. 게다가 지방의 고급관료들까지 포함하면 수 만이 될 거다.

한데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개나 소나 기를 쓰고 고지에 오르려하니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속이다. 고위직이 낙마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팔자가 센 경우고, 다른 하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가 모자란 탓이다. 큰 나무는 바람을 더 타고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고 했다. 당쟁과 사화로 얼룩진 조선조의 양반가에서 “정3품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는 가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벼슬은 아무나 하나? 깜냥이 안되는 사람이 분수를 넘는 벼슬을 탐하다가 패가망신을 당한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과장으로 있으면 행복할 사람을 임원 자리에 앉히면 회사는 물론이고 그 자신도 불행해진다”는 말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현생은 전생의 결과이고, 내생은 현생의 결과”라고 했다. 이것은 우주의 가장 정확한 법칙인 ‘인과의 법칙’인데 현생이 100% 전생의 업보라면 현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은 희망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그냥 운명에 맡기면 되는 것다. 그래서 역술가들은 전생이 현생에, 현생이 내생에 끼치는 영향력을 절반(50%)으로 본다. “사주는 50%만 믿으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 나머지 50%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주가 좋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나쁘다고 슬퍼할 이유도 없다. 어떤 역술가는 궁합이 잘 맞는다는 소리를 하기가 무섭다고 한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너무 낳고, 오히려 궁합이 안 맞아야 맞춰 살려고 서로 노력한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론에 따르면 사람의 일은 미리 결정돼 있어 인간의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100% 운명론이냐, 50% 운명론이냐 - 그것이 문제로다. 나는 절충안으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믿는 쪽이다. 운이 7이요, 능력이나 노력이 3이니까 운이 대세인 건 틀림없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고 싶다.

운명의 다른 이름(동의어)은 팔자, 신의 섭리, 인과론, 연기론이다. 나는 마흔 살, 불혹의 나이가 되면서 운명론자가 됐다. 그래서 “운명에 순응하는 자는 업혀가고, 거역하는 자는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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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려간다”(키케로), “운명을 따르는 게 행복이다”(정신과 의사 꾸뻬 씨), “운명을 사랑하라”(니체의 운명관 용어 'Amor fati', 괴테)...등등을 좋아한다.

운명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무엇이고, ‘팔자 도망은 못 간다’는 걸 알기에 요즈막에는 모든 일을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마음 편히 산다.

이순의 나이에 들어서야 속된 야망을 버리고 장삼이사, 필부의 행복을 새삼 체득한 나는 정말 아둔한 사람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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