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크리에이티브모닝스, 철학사랑방...일상을 바꾸다

아침과 저녁 시간대 교통 혼잡은 요즘 제주에서 차를 가진 사람들의 큰 골치 거리이다. 길이 막혀도 잠시였던 몇 년 전에 비해 최근 겪는 교통난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언제까지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 한숨을 쉬게 한다. 천천히 차를 몰아도 금방 갈 수 있었던 거리가 가고 싶어도 길 위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은 변하는 요즘 제주의 아픈 모습이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극심한 교통량 때문에 버스를 타려는 사람도 차를 타고 가는 사람도 기약 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교통난도 뭔가를 위해 이동하려는 사람들의 열정을 꺾지 못한다. 특히 그 열정이 호기심, 새로움을 향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교통 혼잡을 뚫고 모여서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고 새로운 생각을 나눈다. 누구의 강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문을 듣고, 뉴스를 보고 모여서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 격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오래 전 지인을 만나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면 금상첨화이다.    

그런 모임 중에 조용히 제주의 아침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모임이 있다. 2012년 10월에 생긴 ‘크리에이티브 모닝(CreativeMornings)’은 한 달에 한번 금요일 아침에 만나서 주제가 있는 강의를 듣고 대화를 나눈다. 주로 제주가 좋아 눌러 앉은 젊은이들과 토박이들이 모여서 벌써 4년째 ‘창의성’을 높이는 아침을 이끌고 있다. 자원봉사를 하는 주최자들의 직업도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다양하고 참여하는 이들도 예술가, 학생, 여행객 등이다.  

필자는 소문으로 듣던 이 모임에 다녀왔다. 아침 8시 아라동 소재의 카페 애프터글로우의 아침은 빵 냄새가 가득했다. 사전에 예약을 한 사람들만 받기 때문인지 입구에서 예약자 명단을 체크했다. 참고로 외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이 모임은 참가비가 없다. 자유롭게 준비된 자리에 앉아 기다리자 커피와 과일을 얹은 베이글이 나왔다. 이날 강연은 제주출신의 젊은 작가 이해강이 그동안 진행했던 그라피티, 회화,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작업관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카페라는 분위기 덕분에 오고가는 질문도 편했고, 젊은 작가는 즉석에서 그린 그림의 일부를 관객에게 주기도 했다. 40여명의 참석자 중에 여성이 30여명이었는데, 역시 문화는 여성이 이끌어간다는 속설이 사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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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에이티브 모닝 제주 모임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해강 작가.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원래 이 모임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2008년 처음 시작되었다.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소위 ‘창의계급(creative class, 창조계급)’이 모여서 조찬 강연 시리즈를 시작한 후 샌프란시스코, 브뤼셀 등 여러 도시로 퍼져갔고 제주에도 상륙한 것이다. ‘창의계급’은 리처드 플로리다라는 학자가 2000년대 초반 후기산업사회의 경제 주체를 설명하면서 창의성을 지향하는 직업들을 모아 부른 용어이다. 그의 용어가 널리 확산된 덕분인지 몰라도 현재 세계 150여개의 도시에서 ‘크리에이티브 모닝’ 조찬 모임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모임 정보를 공유하며 사전 참가신청을 받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매월 주제를 정하면 전 세계에 있는 각 도시의 모임은 그 주제에 맞는 연사를 초대해 진행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테크놀로지’로 시작된 주제는 현재 45번째 주제로 이어지고 있는데 각각의 모임에서 누가 연사로 초대돼 언제 어디서 진행하는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브루클린에서 시작된 작은 모임이 거대한 글로벌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사랑’과 같은 평범한 개념부터 ‘윤리’라는 진지한 주제까지 소화하는 거대한 장이 된 것이다. 제주의 이해강 작가는 ‘이상한(weird)’의 연사였다. 이런 일사불란한 모습은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창의계급이 주도하는 이 네트워크는 향후 중요한 이슈가 나올 때 집단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제주의 저녁도 아침 못지않게 열정으로 넘친다. 크리에이티브 모닝이 글로벌 문화의 첨단을 걷고 있다면, ‘제주철학사랑방’은 15년 전부터 토박이 지식인, 문인들이 시작한 자생적인 모임이다. 직업을 불문하고 살아가면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화두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이다. 무엇을 해야 삶과 창작이 의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작한 제주철학사랑방은 말 그대로 ‘지(知)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의 궁극적 목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전문가에게 그 답을 묻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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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철학사랑방에서 조극훈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필자는 지난 수요일 이 모임에 다녀왔다. 7시경 벤처마루의 작은 회의실에 도착하자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면서 다과를 하고 있었다.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등록을 한 후 자리에 앉았다. ‘동학사상’을 듣는 이날 강사는 경기대 조극훈 교수였다. 서양철학을 공부한 그가 동학에 몰두하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동학의 핵심 사상까지 들으면서 회원들은 저마다 진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날의 백미는 자체적으로 진행한 시 백일장 대회 시상이었다. 회원 전용 밴드를 만들어 그 안에서 주어진 화두를 소화해서 창작한 시를 저마다 올리자 심사 후 장원, 차상, 차하 상을 주는 자리였다. 장원에 뽑힌 한 여성회원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는 시가 조용히 밤을 가르는데, 제주 문화의 뿌리가 튼실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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