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건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 해의 수확을 나누는 기쁨이 열심히 일한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

명절이 서러운 사람들

한가위 추석을 불과 며칠 앞둔 저녁하늘 동네어귀에 어슴푸레 떠오른 달. 저 반달이 이번 중추절에도 예나 다름없이 한 해중 가장 몸집을 불리고 환한 표정을 지을 것이라는 무심함이 가슴 아프다. 약자들과 서민들의 삶이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이 땅에서 저 달만큼은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함께 나눠 받을 수 있는 것일까. 한때 추석이면 우리 모두가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떡방아로 찧은” 둥그런 떡으로 여기며 즐거운 마음 목청 높여 부르던 저 달이 이젠 ‘손잡이 없는 금수저’로 보일 따름은 무엇 때문일까. 

모두가 사이좋게 나눠먹어도 모자람이 없을 큼직한 달이건만 이 땅의 한가위 보름달이 서러운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전 정부 이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 그리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이 여전히 소외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거기에다 이 정부에 들어서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하면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광화문 광장의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단식 농성을 계속하고 있고, 쌀 수매가를 인상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을 지키라며 시위에 참가했던 한 나이 드신 농민은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의 공식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금수저들만의 반쪽 나라

앞으로도 ‘명절이 서러운’ 사람들의 대열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해당지역 주민들로 더욱 불어날까 두렵다.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라도 제발 말해 달라”는 한 세월호 참사 유족의 절규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입에 거품을 물며 국민을 위한다는데 나라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더욱 ‘불모의 땅’이 돼가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률은 1위, 소득 불평등이 4위에다 청년 실업률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며 나라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데 저 한가위 달을 한가로이 쳐다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 자신들의 소원대로 ‘잃어버린 십년’을 되찾아와 ‘금수저들만의 반쪽 나라’로 만들어버린 그들뿐이 아닐까.

그러나 진정으로 심각한 것은 이런 부끄러운 기록들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도층 인사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에 있을 것이다. 최근의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장관 후보들의 각종 비리의혹으로 얼룩진 면면은 지금까지 이 정부의 행태를 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장관후보들 어느 누구 가릴 것 없이 부동산 투기와 각종 갑질은 기본이다. 어느 여성 장관후보는 쪽집게 아파트 투기로 천문학적인 부동산 수입을 올려 장관직이 아니라 ‘복부인’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입증했다. 그녀의 일 년 생활비는 무려 5억 원. 적어도 장관이 이쯤 돼야 절대왕권을 휘두른 루이 14세나 즐길 수 있었던 송로버섯과 삭스핀 요리를 서슴없이 만찬 식탁에 올리는 청와대와 격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일까. 

족집게 인사

또 경찰청장 후보는 음주 운전으로 중대한 교통사고를 내고도 경찰신분임을 숨겨 경찰로 계속 살아남아 오늘의 영광을 누리는 배달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했다. 또 다른 장관후보는 관련기업체들로부터 세칭 황제전세와 초저금리대출 등 금수저로서의 각종 특혜를 누려오다 장관직 임명이라는 대박이 터졌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SNS에서 “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모함과 음해, 정치적 공격이 있었다”며 “시골 출신에 지방학교를 나온 ‘흙수저’라고 자신을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장관으로 부임하면 (언론 등을 상대로) 법적인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의 모범을 보였다. 그에게서 자신의 비도덕성에 대한 반성이나 수치심은 조금도 엿볼 수 없었다. 이 정부가 그를 장관후보로 선정한 것은 바로 이런 그의 면모를 높기 샀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언급했듯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이런 문제 있는 사람들만 어디서 족집게처럼 골라오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자고로 현군(賢君)이라면 간신배들을 엄히 다스려야 국가의 기강이 서는 법. 그러나 대통령의 최측근인 실세 비서관부터 직권남용에 의한 부동산거래와 전관비리, 특혜 등 각종 권력형 의혹을 받으면서 여론으로부터 압도적인 사퇴압력을 받고 있지만 최고권력의 비호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청와대는 그의 비리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자신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 언론사 기자와의 수사상황에 관한 가벼운 대화가 특별감찰관으로 하여금 국가 기강을 흔드는 어마어마한 국가사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로마의 모든 길은 부(富)로 통한다

하지만 공식석상의 축사에서 보듯 초등학생들도 술술 암기하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도 착각하는 청와대의 그분이 최측근 비서관에 대한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나 있을까. 그래서 절대 절명의 궁지를 모면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들로 하여금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게” 만드는 것. 매번 정권을 흔드는 큼직한 비리의혹이 터질 때마다 손가락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게 만들어 국민들의 관심을 사안의 본질과 관계없는 엉뚱한 곳으로 쏠리게 만드는 수법으로 워낙 짭짤한 재미를 보는 바람에 이젠 상습적인 게 돼 버린 것 같다. 그러면서 진실이 달과 손가락 사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게 몇 번이던가. 그러나 아무리 순진한 흙수저들이지만 속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예전과 달리 청와대 실세 비서관에 대한 국민들의 사퇴 여론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요즘에 벌어지는 권력실세들의 일련의 비리들의 특징이라면 권력이 곧 치부(致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로마시대에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면 이 정부의 모든 길이 돈으로 향한다고나 할까. 다시 말하면 국민들을 위해 쓰여야 할 권력이 자신들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제, 경제”를 떠들어대며 여론에 물 타기 하더니 그 경제가 결국 이것이었는지. 노인빈곤률과 청년실업률에서 보듯 흙수저들의 시름은 커져만 가기에 ‘잃어버린 십년’을 딛고 ‘물 만난 고기’와 같은 금수저들의 권력형 부 쌓기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은 밤하늘 한복판으로 옮겨선 저 반달. 이대로 나갔다간 나머지 반쪽마저 금수저로 채워버릴 판이다. 
▲ 큼직하게 떠오른 추석 달. 그러나 달을 바라보는 현실을 녹록치 않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모두를 위한 한가위

최근 밝혀진 청와대에 대한 최대 보수일간지 주필의 대우조선 로비는 안보와 성장주의의 미명하에 실세 정치인들과 보수언론들, 그리고 기업들 등 금수저들의 돈과 권력을 둘러싼 더러운 유착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안보와 성장만 외치면 애국이고, 복지를 말하면 포퓰리즘일까. 정부의 막무가내 식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과 냉혹한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서있는 노동자들과 같은 흙수저들이 중추철을 앞둔 즐거움보다 헬조선의 두려움을 먼저 느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그들만을 위한 허울뿐인 안보와 성장주의 때문이 아닐까. 

▲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민심이 떠나면 국운이 쇠하는 법이다. 호화만찬을 즐기다 시장에 가끔 나가 방송사들의 카메라 앞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입술에 립스틱보다 더 빨간 고추장을 묻히고 황송스런 미소를 지어주는 속 보이는 ‘서민 코스프레’로 흙수저들이 속아 넘어가고 민심이 돌아올 리 만무하다. 국민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정부는 한 해의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한가위 명절이 흙수저와 금수저를 가리지 않는 모두를 위한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서서히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는 저 달이 며칠 후에 짓게 될 그 환한 미소가 우리 모두에게 전해지길 절실히 기원한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