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지하철이나 길 맞은편에서 노인들을 마주치는 일이 흔해졌다. 크게 내색하지 않지만 불안하고 거리감이 생긴다. 비정상적이지만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 자신은 어떤가. 나도 나이든 사람인데, 왜 자기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현대 사회에서 노년 세대가 얼마나 취약해지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사례다.

인간의 삶이란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며, 노년이 되는 과정은 인간 누구나 비슷한 경로를 거치는 숙명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퇴화하고 죽는 몸을 갖고 있으며 종국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개인의 자유는 확대됐지만 능력주의에 따른 퇴출의 공포가 높아진 불안하고 두려운 불확실성의 시대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고령화는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13.2%, 2015년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고령 노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나 저출산에 따른 유소년 인구와 비교해서 속도가 너무 빠르다.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1인 가구 증가 등 가족구조의 재편, 삶에 대한 가치관, 교육제도, 소비와 여가문화 등 사회 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49.6%, 201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다. 60세에 은퇴하는 사람들 중 다수가 노후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직장을 나오면서 60세 이상의 고용률은 높아져 빈곤율은 다소 정체되겠지만 노인 빈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연금과 같은 복지제도가 미비한 채 고령사회를 맞은 탓이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와 있다. 1차(증기기관), 2차(전기), 3차(정보화)에 이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소셜네트워크, 클라우드로 대표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가리킨다. 다보스포럼은 일자리가 앞으로 5년 이내에 710만개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새로 생긴다는 예측치를 내놨다. 과학기술 문명의 미래 전망은 이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노년세대에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과학혁명에서 생명공학의 목표로 본다. 길가메시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죽음을 없애버리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이다. 이제 평균수명이 100세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00세 시대가 되면 60세에 은퇴해서 30년 이상의 평균여명이 생긴다. 오랜 삶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이 기간의 생존은 무엇으로 뒷받침해야할지는 큰 숙제다. 연금, 취업, 교육 등 노년에 대비한 복지 정책의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노년의 여유가 축복인가 재앙인가는 우리 공동체의 진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노년의 시간은 은퇴 이전의 생산과 소비에 전념하는 것과 달리 자유가 지배한다. 자유시간은 생산력을 보강하기 위한 여가와는 다르다. 노년에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인간관계는 단절되기 때문이다. 고독을 인내하고 관심사에 집중하는 내공을 쌓는 일이 해법으로 제시되지만 시간과의 싸움은 쉽지 않다.

노년의 자유시간은 시간을 헛되게 보낼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시간을 순수하게 낭비할 수 있는 자유는 개인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충족시켜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일은 매슬로의 인간욕구 이론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에 부합한다. ‘시간은 돈이다’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자아실현의 기회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지금 노인 복지제도만으로는 30년 이상의 생활을 지탱해 나가기 어렵다. 북유럽에서 추진 중인 ‘시니어의무교육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평생교육 정책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서 100세 시대에 적합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노인교육의 혁신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번영의 기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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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 제주의소리
방송통신대학, 사이버대학, 각대학교, 공공기관, 민간기업에서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노년세대를 대상으로 한 특성화 교육은 거의 없다. 인문학, 문화 예술 중심의 지식 충전과 신지식에 대한 전문적 소양을 쌓을 수 있도록 2~3년을 기한으로 의무교육 형태의 노인교육제도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정원 감축이나 폐교되는 대학에서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100세 시대를 축복으로 맞기 위한 열쇠는 교육에 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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