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0) 향사당에서 되짚는 제주문화의 미래

‘예의를 지키십시오!’ 

올해 초 필자가 참석한 한 좌담회에서 문화계 인사 한분이 최근 늘어난 건축물의 이질적 모습을 진단하며 격정적으로 한 말이다. 오랫동안 제주문화의 원형과 전통을 연구하며 문화운동을 해온 그에게 우후죽순 들어서는 알록달록한 건축물이나 서양식도 아니고 동양식도 아닌 건물 이름들, 서구식 대중문화와 생경한 예술형식의 착륙은 토착민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보로 보였을 것이다.
 
거칠게 부는 섬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사람들, 저가 비행기가 들어서기 전까지 육지로 왕래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의 제주문화와 지금은 너무 다르다. 부모와 조부모, 그 이전 세대부터 사용해온 제주어를 사용하며 빙떡과 돔베고기에 걸쭉한 조술을 마시던 감칠나는 문화는 관광지와 휴양지로 떠오르기 전 제주에서 살았던 많은 이들이 아끼고 싶은 문화이다. 필자 역시 빙떡을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담백한 맛 너머로 중산간 마을의 고즈넉한 명절이 떠오르고 맷돌을 갈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으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영원한 고향의 모습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팽창과 무역규모와 반경의 확장은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문화의 순수성을 흔들어 놨다. 잔치국수와 파스타처럼 밀가루 음식 문화가 확산되면서 변형되며 토착화된 것도 있고 단발령으로 단시간 내에 바뀐 남성의 머리 양식도 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사람의 접촉은 문화를 변화시키고 낯선 것 중에서 필요한 것들이 선별적으로 수용되기도 하고 강제적으로 토착문화를 혼종화시키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왔다는 것이 ‘세계화’와 문화를 연구하는 주요 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 변화와 혼종화의 현장인 제주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이론이 추상적이며 냉정해 보일 정도로 아프게 다가온다.

제주시 원도심 향사당이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활쏘기와 주연을 열고 민심을 살피던 기관이었다가 20세기 초 신성여학교의 자리로 쓰이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절이 있었던 곳이다. 1980년대 옛 건물을 허물고 자리를 살짝 옮겨서 지금의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골목길 한 가운데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히 자리 잡은 작은 건물과 뜰은 왠지 발을 들여놓기가 부담스럽다. 아마도 제주와 한국의 거칠고 아픈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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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깊어가는 향사당.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런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향사당이 21세기 제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간 소박하고 의미있는 행사들이 열렸었다. 시를 낭송하는 문학의 밤이 열리는가 하면 새로 출판한 책을 소개한 작가의 북 콘서트가 열린 적도 있다. 작은 음악회가 오기도 했고, 문화향수사업인 ‘PLAY향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1월 초에는 청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 ‘영성과 물성의 충돌- 신화로 보는 제주의 현재’가 열렸었다. 창틀로 찬바람이 들어오는 겨울날 젊은 청년들이 모여서 제주문화를 연구하는 한진오의 강의를 들으며 전통과 신화의 가치를 되새기기도 했다. 강사는 설문대할망의 신화와 ‘제주다움’의 가치를 해석하고 까치, 야자수, 삼나무처럼 20세기에 들어온 것들이 제주의 ‘삼다’를 바꾸었다고 진단하며 개발의 바람은 ‘영성과 물성의 충돌’이라고 설명하며 신세대의 공감을 얻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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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과 물성에 대해 강의하는 강사와 참가자들. 사진 제공=오순희 ⓒ제주의소리

지난 11월 11일부터 3일 동안 열린 한 전시는 향사당의 분위기와 이질적인 유럽의 그림을 선보이며 주목을 끌었다. ‘제주 향사당에 미켈란젤로가 왔다’라는 마케팅 냄새가 풍기는 뉴스를 보고 필자는 이 행사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외국인 작가를 초청하면서 르네상스 미술의 대가이자 사망한 지 수 세기가 지난 이탈리아 거장의 이름을 언급하면서까지 홍보를 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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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아짜룽가의 전시가 열린 향사당 내부.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비오는 오후 들른 향사당에는 작가 삐아짜룽가와 그를 데리고 온 기획회사의 대표가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작가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커피액으로 그림을 그리며 인체데생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옥의 흰색과 갈색의 인테리어를 뒤로 하고 걸린 그의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보고 그린 신체와 현대 여성의 누드 신체가 어우러져 있었다. 볼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입양된 작가가 교황에게 매를 맞으며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와 세속적인 현대를 결합한 모습은 그의 문화적 배경만큼이나 독특했다.    

우월한 자본을 들고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땅이 팔리고 다국적 소비문화가 넘치는 가운데 ‘제주다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만드는 요즈음, 향사당에 온 볼리비아계 이탈리아인 작가의 전시는 이방인과 그들이 소개하는 문화와 제주의 접촉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방인의 전통과 현대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인가? 이방인을 통해 제주문화의 현재를 반성하고 재고하는 계기인가? 아니면 예술과 문화의 얼굴을 빌려 새롭고 생경한 문화를 제주문화 속으로 녹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혼종화 작업은 ‘예의를 지키는 것’일까?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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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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