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만민공동회, 시민평의회 눈길...‘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 진화

촛불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국민적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시작해 문화축제로, 또 ‘더 나은 민주주의’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학계, 종교, 정치, 교육, 농민, 언론, 여성 등 제주지역 104개 단체가 참여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은 26일 오후 6시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도로에서 ‘박근혜 하야 촉구! 6차 제주도민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주최 측 추산 6000명(경찰 추산 1800명)이 모였다.

이날 눈길을 끈 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른 시민들. 이들은 서로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준비한 얘기들을 차분하게 꺼내놓았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만민공동회’다. 말 그대로 19세기말 독립협회가 시도한 민중대회이자 대중집회를 촛불에 접목한 것.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군위안부 졸속 합의부터 교육 정책에 이르기까지, 또 ‘촛불 그 다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까지 폭 넓은 주제가 다뤄졌다.

▲ 26일 열린 ‘박근혜 하야 촉구! 6차 제주도민 촛불집회’. ⓒ 제주의소리

대기고 1학년에 재학중인 김명진 군은 “이제 후배들은 정말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국정교과서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오현고에 재학중인 김지덕 군은 “촛불은 진정한 애국심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며 “바람불면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점점 더 번져나가 우리나라 곳곳의 모든 악을 제거할 수 있을 때까지 불타올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청소년은 “나중에 태어날 자식이 ‘그 때 엄마는 뭐했어’라고 물어봤을때 ‘아무것도 안했다’고 하면 정말 창피할 거 같아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며 “나 하나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변화를 꿈꾸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는 분명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뼈 있는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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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박근혜 하야 촉구! 6차 제주도민 촛불집회’에 앞서 열린 제주 시민평의회. ⓒ 제주의소리

집회에 앞서 오후 3시부터 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열린 ‘시민평의회’ 역시 이색적인 시도였다.

청소년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각계각층 30여명은 옹기종기 천막 아래 모여 앉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정치’의 방식들을 논의했다.

시민평의회를 공동 기획한 고은영(32.여)씨는 “우리가 시민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며 “제주에서 토론의 장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세대를 불문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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