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㊹ 국정 파탄에도 빛난 시민 의식...'사람이 희망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나라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서 ‘사변’이나 ‘사태’로 명명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국가 개조와 국정 재건을 도모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진단하고, 이에 따른 처방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번 사태의 근인(近因)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공인의식의 결여’이다. 이 사태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등에 업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요, 권력의 사유화가 몰고 온 국정파탄이다.’

만일 청와대 참모진, 장·차관, 국회의원, 법조인, 언론인 등이 박근혜와 최순실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에 동조·묵인·비호하지 않고 최소한의 공인 의식으로 무장해 감시·견제·직언으로 제 소임을 다 했다면 이처럼 불행한 사태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둘째,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민주공화제의 근간인 3권(입법·사법·행정) 분립이 작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 개조와 국정 재건을 위한 방법·체계·조직을 재검검할 필요가 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초점은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분산된 권력 조차 감시와 견제의 틀 안에 가두어야 한다.

셋째, 이번 사태의 뼈저린 교훈은 ‘지도자 선택의 중요성’이다. 이 사태의 책임 소재를 굳이 가리자면 절반은 박근혜를 선출한 국민의 잘못이다. 우리는 이장 선거에서 대선까지 수 많은 선거를 치르지만 지연·학연·혈연 등 연줄이나 진보·보수 등 이념 성향에 따라 묻지말라 식 투표를 해왔다. 이런 투표 관행을 깨지 않고서는 결코 선진국민이 될 수 없다. 후보자의 능력이나 자질을 꼼꼼히 따져서 그릇된 가치관의 소유자나 깜냥이 안 되는 엉터리 사기꾼, 어리버리 얼간이를 지도자로 뽑아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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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4일 오전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발표 장면이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생중계 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넷째, ‘진영논리의 함정’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 이번 사태의 와중에 친박 국회의원과 ‘박사모’의 행태는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판단 없이 무조건 내편이면 감싸고 지지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보여줬다. 이 사태를 선거나 자신의 입지 강화에 이용하려는 정당과 일부 대권 주자의 기회주의적 행태도 비판받아야 한다.

다섯째, ‘특검 수사팀의 역사적 사명’이다. 어이없게도 이 사태의 주모자, 주동자들은 아직도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있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세 가지(인간·역사·하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첫 번째 단계인 인간의 심판이 시작됐을 뿐이다.

만약에 특검 수사팀이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 주모자들의 범행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촛불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할 것이다. 수사팀은 역사의 증인이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철저히 진상을 파헤쳐서 범법자들을 기필코 단죄해야 한다. 이것이 특검 수사팀에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 수사팀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반성 없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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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여섯 째, 이번 사태의 본질적 키워드는 ‘업(業)과 사필귀정’이다. ‘만사는 반드시 올바른 도리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이나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이런 평범한 사실을 모르는 주모자들의 정신 구조, 의식 세계가 놀랍고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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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하고 맹랑하다.

일곱째, ‘사람이 희망이다.’ 광화문 광장의 질서정연한 집회와 청와대 근처까지의 평화적인 시위는 한국인의 성숙한 시민의식뿐 아니라 국민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쾌거였다. 정치는 후진적이지만 시민 의식은 선진적이라는 걸 세계에 알렸고, 열화와 같은 촛불 집회가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냄으로써 국민주권주의의 승리를 예감케 했다.

이 시민혁명의 저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전도를 가로막는 내외의 도전에 응전하면서 안보와 경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새로운 르네상스가 도래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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