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질문이며, 질문은 문입니다. 나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주는 마술의 문. 우리가 맨 먼저 넘어서야 할 장벽은 ‘그림책은 어릴 때 읽고 만다’는 편견입니다. 그림책은 초·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요즘 성인들 사이에서 ‘그림책의 발견’이 한창입니다. <논어>와 ‘그림책 이야기’로 함께 했던 오승주 작가가 이번엔 물음표를 달고 독자 곁을 찾아옵니다. 바로 ‘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입니다. 질문을 가지고 그림책을 읽는 사람의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 (10) 신년특집- ‘남탓’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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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 | 엘리자베트 슈티메르트 (지은이) | 카를리네 케르 (그림) | 유혜자 (옮긴이) | 비룡소 | 1999-07-22 | 원제 Kinder, Krach und große Ohren

대한민국이 이 꼴이 된 까닭이 뭐냐고요?

생각이 올바르고 건강한 어린이·청소년이라면 한번쯤은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올바르고 건강한 어른이라면 누구나 여기에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이 꼴이 된 것이 어린이나 청소년 때문은 아니잖아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친구와 싸우거나, 학원을 빼먹었거나, 준비물을 깜빡했거나 약속을 잊어버려서 상대방이 곤란에 빠졌을 수 있죠. 그 다음 순간이 참 중요합니다. 그때가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자연스럽게 누구의 책임인지 묻게 되죠.

선택은 두 가지예요. ‘남탓’을 하거나, ‘제탓’을 하거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제가 일어나는데 자기 자신도 어느 정도는 원인 제공을 하고 있죠. 제탓을 자주 할수록 문제가 해결되기 쉬워집니다. 하지만 남탓을 자주 할수록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죠.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남탓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거 하나는 명백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지금까지 ‘남탓’을 즐겨 해왔다고. 이 글을 쓰는 저도 ‘남탓’을 남발해왔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어른들이 제탓을 했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가져가서 제 할일 일을 했겠죠. 하지만 남탓을 하면 책임이 어떤 곳에 머무르지 않고 빙빙 돌아갑니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는 눈 내리는 제주도의 한겨울 밤에 가로등 밑에 서서 마구 떨어지는 눈발을 올려다본 적이 있습니다. 눈이 뱅뱅 돌면서 자리를 찾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정말 예상치 못했던 곳에 떨어지죠.

<논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죠. “지혜로운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고, 못난 사람은 남에게 찾는다.”(위령공 편) 자기 스스로에게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을 ‘반구저기(反求諸己)’라고 합니다. 이 못나고 부끄러운 어른은 지금부터라도 반구저기하겠습니다.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려고 너무 애쓰다가” 귀가 토끼처럼 길어진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골치아픈 문제인 ‘층간소음’을 소재로 다룬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비룡소)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법에 관한 놀라운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하던 대로’, ‘평범함’, ‘나다운 모습’입니다. 위층에 이사 온 아이들은 아래층에 사는 괴팍한 할머니 때문에 생쥐처럼 살금살금 걷고, 속닥속닥 말하더니 결국은 생쥐만큼만 먹겠다고까지 선언합니다.

아무리 층간소음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요!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에도 아래층 할머니는 득달같이 달려와 항의를 하니 아이들이 기를 펼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점점 아이다운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이게 가장 뼈아픈 일입니다. 아이가 아이다운 모습을 잃어버린다면 어른도 당연히 어른다운 모습을 잃어버리죠.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답지 못하고, 기업가가 기업가답지 못하고, 공무원이 공무원답지 못하고, 기자가 기자답지 못하죠.

위층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아래층 할머니는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참다 못한 할머니는 의자를 놓고 그 위에 탁자를 올려놓은 위태로운 대 위에 올라가 위층을 향해 귀를 쫑끗 세웁니다.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할머니 귀만 이상하게 길어질 뿐입니다. 할머니를 진찰하러 찾아온 의사는 위층에 사는 가족에게 “제발 시끄러운 소리를 내달라”며 부탁을 하고 갑니다. 아이들이 아이처럼 뛰어놀고 나서야 할머니의 괴상한 귀는 정상으로 돌아왔죠.

이 책을 읽고 저는 아이들의 안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뛰놀고 있는지, 아이답게 떼 쓰고, 질질 짜고, 속 썩이고,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숙제 안 하면서 살고 있는지. 대한민국 어린이 주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는 아래층 할머니 같은 사람이 가득해서 아이의 아이다운 모습을 말려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걱정스럽습니다.

2017년에도 역시 저는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를 것입니다. 나아가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많은 문제들은 어린이를 숨쉬게 하는 데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지금처럼 늪에 빠져 있고서는 어떤 생각도 전진할 수 없으니까요.

★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를  읽고 질문을 2개 만들어 보아요.

1. 위층 가족들은 왜 할머니의 부당한 항의에 맞서지 않았나요?
2. 의사 선생님이 위층 가족에게 시끄럽게 해달라고 부탁한 까닭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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