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현장행정 실종” 여론 비등...공무원이 편하면 도민이 불편해진다 

여명(黎明)을 알리는 상서로운 존재, 닭의 해가 밝았다. 닭이 빛의 도래를 예고하듯이, 지난해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발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둠의 ‘끝판’이었다면, 빛은 촛불로 일어선 우리 국민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진실규명을 넘어 ‘낡은 시대의 완전청산’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국민의 명령’대로 과연 정유년(丁酉年)에는 새 시대의 출발을 선언할 수 있을까?

시선을 제주로 돌려보자. 서광(曙光)이라도 비쳤으면 좋으련만,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세계인의 보물섬이 자꾸만 망가지는 것 같아서다. ‘제주에 살어리랏다’며 도시민이 몰려들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제주의 무한매력에 대한 자부심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넘쳐나는 관광객은 ‘관광1번지’의 입지를 확인시켜 주는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뿌듯함도 잠시였다. 지금은 제주 섬이 감당할 수 있는 환경용량을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구 급증과 함께 쓰레기, 하수, 차량이 넘쳐났다. 이중 당국이 전쟁을 선포한 쓰레기 문제는 일상을 덮고 있다. 당연히 처리시설은 한계에 봉착했다. 교통은 곳곳이 지옥으로 변했다. 

부동산은 폭등했다. 자본의 속성을 보여주듯, 전역에서 육중한 기계음이 그치지 않았다. 한 뙈기 땅만 있어도 여지없이 파헤쳐졌다. 개발의 심리적 마지노선도 무너졌다. 급기야 미래 제주의 핵심가치라는 청정과 공존에도 공허함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인구 100만’을 부르짖던 때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거꾸로 우리가 얼마나 미래 예측을 잘못했고,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했는지를 의미한다. 아니 그보다는 정작 ‘뭣이 중한디’를 모르는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파이를 키울 것인가, 가치를 중시할 것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대역사(大役事)로 포장된 제2공항 갈등은 탈출구가 안보인다. 해군기지가 그러했듯이, 한쪽에선 행정절차가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주민과의 갈등은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급기야 주민들은 제2공항 타당성조사 연구진을 고발했다. 용역보고서에서 안개일수를 조작했다는 이유였다. 주민들로선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이 모든게 근원적으로는 일방통행에서 빚어졌지만, 당국은 ‘특별한 보상’ ‘지역발전 계획’ 따위만 되뇌이고 있다. 주민 요구가 진짜 그런지 헤아려봤느냐고 묻고싶다.  

지리한 대치정국이 펼쳐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동안 제주사회가 해군기지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나? 그럼에도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성산읍 주민과 시민사회는 또 한가지를 묻고 있다. 제2공항은 지역사회가 합의한 최선의 대안이었는가.       
 
해군기지는 또 어떤가? 10년째 ‘아픈 손가락’ 강정을 놔두고선 제주사회의 통합을 얘기할 수 없다. 이제 강정은 누구에게 맞설 기력조차 잃어가고 있다. 구럼비 발파, 이웃간 갈등, 무더기 사법처리가 강정의 눈물을 보여주는 상흔이라면, 구상금 청구는 공동체 파괴의 완결판이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100% 대한민국’을 부르짖었지만, 강정은 애초 박근혜 정부엔 기대조차 걸지 않았는지 모른다. 실제로 이 정부는 각계에서 줄기차게 구상권 철회를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렇다고 원희룡 도정이 앞장서지도 않았다. 정치 현안에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말이다. 그때마다 ‘통치권 차원의 결단’을 운운했다. 결과적으로 강정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 강정은 말그대로 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오락가락한 측면이 있으나, 환경적으로 논란을 빚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뒤늦게나마 브레이크를 건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여론을 살폈다는 얘기다. 이미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탄핵’한 것이 법과 제도 이상의 차원인 점과 같은 이치다.  

원 지사는 올해 역점 과제로 쓰레기와 주차·교통, 서민주택을 꼽았다. 그는 이 세 가지를 해결하지 않고는 양적성장을 하더라도 도민 소득이나 삶의 질 제고로 이어질 수 없다고 했다. 이왕 팔을 걷어부치는 김에 제주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 

제주사회가 겪는 굵직한 갈등사안은 따지고 보면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소통은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백번 양보해 설사 그것이 쇼맨십이어도 좋다. 자꾸 얼굴을 내밀고,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른바 ‘현장행정’의 위력이다. 

하지만, 요즘 제주 공직사회에선 현장행정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중앙정가 소식을 좇기 바빴던 도지사는 물론 실·국장, 과장, 계장(담당)까지 몸이 너무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무사태평’ ‘공무원 세상’이라는 말이 나올까. 책상머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에는 제주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혹자는 ‘공무원이 편하면 도민이 불편해진다’고 했다. 시쳇말로 격하게 공감한다. 그 중심에는 도지사가 있다. 먼저 모범을 보이되, 공무원들을 쉼없이 채근해야 한다. 대의는 ‘도민을 위하여’다. 자율이라는 명분 아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방임(放任)에 가깝다.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문제가 아니다. 원 도정 들어 그런 징후들이 많이 보였다. 아직 조직을 틀어지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능력이 출중한 원 지사에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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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진 편집국장.
그런 점에서 새해 화두는 여전히 소통이다. 현장에서 넥타이를 풀어헤치면 막힘이 있을 수 없다. 원 지사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만 협치의 부활도 중요하다. 협치란 다른게 아니다. 어려울수록 각계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정유년에는 지역에 천착하는 도백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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