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㊺ 역사에 남을 사건...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지 말라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고 했고, 극작가 브레히트도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여기 ‘아! 대한민국’에서 나라가 풍비박산이 되게 한 기절 초풍할 일이 벌어졌는데 한가하게 서정시나 쓰며 음풍농월을 읊조리고 있다면 그 자는 진정한 시인이 아니다. 물론 모든 시인이 우국충정의 혁명가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름지기 시인은 정의와 진실의 편에 서서 불의와 허위를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천박하고 허접한 글쟁이일 뿐이다.

필자는 단연코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칼럼을 쓰는 것은 도로(徒勞: 헛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궤적과 함께 이 땅에서 60평생을 살아오면서 숱한 일들을 겪어 왔지만 이번 사태처럼 참담하고 허탈한 감정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필부도, 시정 잡배도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 청와대 고위직, 장·차관, 재벌, 교수들이 속수무책으로 강남 아줌마의 손에 놀아났다는 이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상황에 직면하면서 ‘이게 정상적인 국가냐?’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태는 해방 이후 한민족에게 끼친 ‘최대의 정신적 폭거’라고 생각한다. 6.25전쟁, 제주4.3사건, 등 내전은 심각한 외상(外傷)을 남겼지만 이 사태는 불치의 내상(內傷)을 민족사에 아로새겼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사태를 “3몰(몰이성·몰상식·몰지각)과 3치(후안무치·파렴치·몰염치)의 인간들이 작당해 벌인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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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최순실 사태처럼 참담하고 허탈한 감정에 휩싸인 적은 없었다. 출처=오마이뉴스.

이 사태가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배경은 Ⓐ이 사건이 연인원 3000만명(?)이 참가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유발했다는 점 Ⓑ이 사건이 유사 이래로 여풍(女風)의 위력을 보여준 사건-장희빈·어우동·장영자-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는 점 Ⓒ이 사건이 여염집 아낙내의 망동과 분탕질로 대통령 탄핵을 시동케 한 점이다.

뿐만 아니라 ⓵대통령 위에 군림한 여제(女帝) ⓶정경유착의 고리이자 온갖 불법·탈법의 배후 조종자 ⓷사건을 기획하고 집행한 총감독, 주연 배우가 평범한 여인이었다는 사실에 미래의 한국인들도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주모자들은 명백한 객관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뻔뻔한 철면피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주범들은 청문회·특검·헌재의 소환에 불응하고 종범들은 도망 다니기에 바쁘다. 만일 저들의 주장처럼 결백하고 떳떳하다면 왜 불응하고 도망치는가?

자기들의 죄상이 백일 하에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도 돼지는 돼지다. 아무리 화장하고 위장해도 결국 진실을 가릴 수 없고 언젠가 그 가증스런 민낯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두 여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최순실은 동물적 후각으로 돈냄새를 잘 맡는 사람이다. 언론에서는 그녀의 재산이 8000억~10조 라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억만금이 있으면 뭐 하나. 감옥에선 돈 쓸 일이 별로 없으니까 무용지물일 뿐이다.

전통사회에서 선비들의 욕은 육두문자 대신에 ‘인두겁을 쓴 놈(년)!’이다. 곧, 인면수심(人面獸心), 양두구육(羊頭狗肉)이 가장 큰 욕이었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은 非가 理를 이기지 못하고 理는 法을 이기지 못하고 法은 權을 이기지 못하고 權은 하늘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도 하늘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진리를 일찍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에게 그런 지성과 양식이 있었을까?)

솔론은 옛 그리스의 철학자다. 솔론이 기원전 560년에 뤼디아 왕국의 왕위에 오른 크로이소스에게 말했다. 

“전하, 그가 훌륭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이야 말로 행복하다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 죽기 전에 그를 행복하다고 하지 마시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눈 여겨 봐야 합니다. 신께서 행복의 그림자를 언뜻 보여주시다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또,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의 신뢰를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 있고, 일부 국민을 항상 속일 수 있겠지만 모든 국민을 항상 속일 수는 없습니다.”

정유년 새해에는 우리에게 금지된 것들-안정된 나라·정직한 정부·편안한 국민-을 소망할 수 잇는 복된 한해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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