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4) 朴 대통령 풍자 회화..."관습 깨기, 미술의 중요 가치"

에두아르도 마네(Edouardo Manet)가 그린 <올랭피아>(1863)가 한국에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심지어 마네의 고국 프랑스 언론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고 있다. 제작된 지 150년이 넘은 이 그림이 한국에서 한 분노한 예술가에 의해 패러디(parody)돼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이 누드와 하녀로 등장했고, 급기야 누군가 이미지를 찢어버리고 전시를 준비한 국회의원은 “상처받은 분들께 사과”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분노와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은 여성비하와 인격살인을 들었다. 

이 그림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던지 한 방송 매체는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그림에 대해 ‘문제없다’(43.8%)와 ‘부적절하다’(42.7%)로 양분된 의견이 나왔다. 전시 장소에 대해서도 ‘문제없다’(32.6%)와 ‘부적절하다’(53.9%)로 양분됐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패러디 작업은 작년부터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예술가가 미술사의 유명 작품에 기대어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외국의 사립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됐다면 허용될 만한 작품인 것이다. 미술이 허용한 공간을 넘어 한국의 정치적 공간에서 전시됐다는 데서 논란이 시작됐다. 미술이 비미술 공간으로 확장하면 창작물이 패러디에서 ‘모독’, ‘비하’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누가 창작의 자유를 허용하는가? 헌법에 보장된 예술의 자유는 무용지물인가? ‘블랙리스트’로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예술인들에게 이 정도의 자유도 허용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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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도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이구영의 <더러운 잠>. 출처=오마이뉴스.

마네의 <올랭피아>는 현재 미술사에서 19세기 인상주의를 태동시킨 선구자인 마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거의 모든 근현대미술사 서적에 등장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19세기 이후 전개된 미술의 역사에서 이 작품을 빼고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대의 후배 작가들이 마네가 시도한 과감한 기법과 전략을 보며 용기를 얻었으며 모네, 드가, 세잔느, 피카소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회화의 역사를 시작한 장본인으로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마네 생전에 이 그림을 1865년 살롱전에 전시하자 ‘부적절하다’거나 ‘고릴라처럼 징그럽다’ 등의 평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사실 파리의 홍등가 여성이었던 빅토린 모랑을 모델로 해서 그리기는 했지만 마네 역시 그보다 앞선 예술가였던 르네상스 시대의 지오르지네의 <잠자는 비너스>와 같은 고전적 누드 그림을 참고로 해서 기존의 누드화 전통을 깨고 팔다리가 짧고 관객을 노려보는 불편한 누드화를 그린 것이다. 여신이 아니라 동시대 홍등가 여성을 그렸다는 점, 주류미술이 선호했던 자연주의적 기법보다 묘사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공분을 샀다. 당시 언론의 평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프랑스 최고의 미술전이었던 살롱전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마네는 부르조아 계층이 좋아하던 당대의 취향을 거슬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스페인으로 도망가듯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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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3년 에두아르도 마네가 그린 작품 <올랭피아> 출처=wikiart.org ⓒ제주의소리

그러나 마네는 과거와 다른 예술가이고 싶어 했고, 예술의 관습을 깨고 싶어 했다. 그리고 바로 과거와 달라지고 싶은 욕망과 관습을 깨려는 용기가 추종하는 후배들의 주목을 받으며 예술가의 독자적 길을 모색하는데 기여했다. 19세기 말 파리에서 마네와 그의 추종자들이 일군 ‘근대 미술’은 단순히 예술가의 자유의 표현이 아니었다. 누구의 억압도 거부하고 독립된 주체로서 떳떳하게 과학과 더불어 ‘예술’이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표상인 파리의 인상파는 곧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에 전파됐고, 일본의 학교에서 인상파를 공부한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들이 한국에 미술이라는 개념을 전파했다. 그리고 미술은 관습을 깨는 일이 주요한 가치이자 생존의 방법이라는 하나의 공식이 생겨난 것이다. 

구시대의 관습 때문에 혼란을 거듭하는 오늘날의 한국에서 올랭피아 패러디 사건은 다시 마네가 추구했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예술가가 낡은 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역할에 앞장섰던 19세기 파리처럼 21세기 한국에서도 예술가가 변화의 시대에 앞장설 수 있을까. 세계 29위의 높은 부패지수, 세계 꼴찌에 가까운 남녀 성평등 지수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싶을 정도이다. 이 패러디 사건을 두고 벌어진 논란과 여러 현상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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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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