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대통령 탄핵과 이 부회장의 구속은 촛불시민들이 이룩한 작지 않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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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검사무실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이 확정된 후 첫 조사다. 출처=오마이뉴스.

법치의 성역

드디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수감됐다. 근 80년의 삼성 역사에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기에 이 부회장의 구속은 가히 새로운 역사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간 3대에 걸친 삼성의 제왕적 세습체제가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민주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각종 패악과 비리에도 삼성재벌의 ‘백두혈통’만큼은 처벌의 철저한 예외였던 점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다. 한겨울의 살을 에는 칼추위를 무릅쓰며 상식과 정의의 사회를 외쳐온 촛불 시민들의 열성이 이룩한 작지 않은 기적이다. 

서민들에 대한 가차 없는 법의 엄격한 적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삼성재벌만을 위한 특별한 대우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냉소로는 성이 차지 않을 정도였다. 경제 불황속에 사소한 생계형 범죄에도 엄중한 처벌을 받는 ‘장발장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이 땅에서 그들만큼은 ‘치외법권’이었고 ‘법치(法治)의 성역(聖域)’이 아니었던가. 국가 삼권(三權)은 물론 언론과 학계까지 삼성의 절대적인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오죽해야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삼성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었을까. 

로얄 패밀리의 옹색한 상속

그러나 3대에 걸친 삼성의 제왕적 세습체제를 감안하면 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이 부회장의 현재 알려진 재산은 약 십조 원. 이 천문학적인 재산을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대부분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력이나 후광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금수저의 정점에 서 있다. 20여 년 전 아버지 회장으로부터 받은 몇 십억 원의 종자돈을 밑천으로 그룹 내 계열사들을 동원해 눈덩이처럼 불린 게 오늘날의 이 부회장의 재산의 실상인 것이다.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로얄 패밀리’가 구차하게 남의 눈치를 봐가며 그렇게 복잡하고 치졸한 편법적인 상속 방법을 쓴 이유는 너무나 뻔하다. 몇 푼의 세금도 아까웠던 것이다. 십조에 대한 상속세를 제대로 낸다면 당연히 몇 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달하지만 이 부회장이 실제로 낸 세금은 얼마 안 되는 최초의 종자돈에 대한 양도세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국가권력은 그들을 위해 합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보수언론들은 우호적 여론 형성에 앞장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부의 끝없는 욕심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 비리는 더욱 악랄하다. 이 합병은 사실상 이 부회장의 그룹 전반에 걸친 경영권 승계 과정의 선상에 서 있다. 문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장악을 위한 이 합병에 본인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국민들의 저금통인 국민연금이 투여되며 5000억원이 넘는 거금을 날린 것. 이익은 이 부회장이 보고 그 비용은 국민들이 지불해준 셈이다. 이미 갖고 있는 재산만으로도 몇 대에 걸쳐 호강을 해도 남을 정도지만 최고재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가.

이 과정에서 국가정책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의 더러운 결탁과 뇌물 수수는 언론에서 익히 보도된 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커녕 그렇지 않아도 경제 불황에다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최소한의 경제적 보루마저 군침을 흘리며 축낸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의 광고를 받아먹고 사는 일부 언론들의 구태는 여전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결정에 앞서 언론들은 “재벌회장 구속의 경제적 파급”을 운운하며 은근슬쩍 반대여론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골몰했다.  

이념의 광기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주가는 현재 예전보다도 오히려 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회장이 구속되면 금방이라도 해당 기업이 망하기라도 할 것 같이 떠드는 이른바 ‘재벌 친위’ 언론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다. 한때 재벌을 곧 애국자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몇몇 대기업들이 오늘날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재벌들의 선대 창업주들의 공헌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부족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희생 없이 그리고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지원 없이는 오늘날의 우리 대기업들은 존재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이 부회장의 구속 결정에 대해 어떤 국민들은 환호성까지 질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만큼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또한 대기업들의 첨병 노릇을 하는 보수 언론들의 말발이 이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못된 관행을 제대로 바로잡기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코앞에 닥친 대선 정국에서 “사드배치는 애국, 사드반대는 종북”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의 이념적 광기는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사드배치가 국가적 중대사인 만큼 신중한 검토와 전반적인 국민적 합의 과정이 필요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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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출처=오마이뉴스.

황금혈통의 환상

능력과 자질과 관계없이 황금혈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닮은꼴이다. 임금님의 황금 옷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은 이들의 권력에 기생하는 자들의 미사
▲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여구에 불과했다. 촛불시민들의 순수한 마음과 용기가 없었다면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는 사실은 왕국의 영원한 비밀로 묻혀 갔을 것이다. 돈과 권력의 눈치만 보는 이기심과 비판적 이성이 결여된 맹신은 국가적 비극의 씨앗일 뿐이다. 더 큰 비극을 막은 촛불혁명의 작지 않은 성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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