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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열린 관덕정 복원 사업 반대 주민 토론회에 등장한 피켓.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보다 관심을 가지고 사안을 지켜보며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주의소리

[기자수첩] 관덕로 사업에 ‘아뿔싸’ 모인 성내 주민들...주민 주도형 개발 시작 계기되길


최근 제주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꼽으라면 관덕정 광장 복원을 포함한 제주시 원도심(성내) 재생 사업이다. 제주시 일도1동, 이도1동, 삼도2동, 용담1동, 건입동 일대에 공공·민간 자본을 포함한 3577억원을 투입해 여러 일을 추진하는 이 사업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상태다. 특히 관덕정 앞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광장화 하는 사업에 대한 8일 주민설명회는 거센 주민 항의에 파행으로 끝났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행정에 항의한 주민들은 23일 자발적으로 모여 토론회를 열었다. 

누구는 자비를 들여 현수막을 제작하고, 누구는 손수 제작한 인쇄물을 나눠주고, 누구는 일하는 시간을 쪼개 참석해 마련된 이날은 지난 8일 설명회 못지않게 3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지면서, 흡사 활활 타는 용광로를 연상케 했다.

뜨거웠던 토론회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표면적으로는 재생 사업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업 주체(?)인 제주도청과 또 다른 주체인 주민이 다시 만나기로 했다. 상관인 도청 도시재생과장을 대신해 참석한 담당 직원은 ‘언제 어디서 다음 자리를 열지 확실히 대답하라’는 주민 쏘아붙임에 진땀을 흘리며 ‘의견을 상부에 전달하겠다’고 대답했다.

제주도 행정이 원도심 재생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4월에 진행된 국토교통부의 국가지원 도시재생사업 공모에 참여해 그해 12월 최종 선정됐다. 제주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람도 빠져나가고 그대로 두면 안 되는 원도심을 위해서 고민하다가 좋은 기회가 있어서 참여하게 됐다.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지자체와 경쟁해서 나랏돈을 가져왔는데 너무하다”(실제 발언은 아님)는 변명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민의 입장은 달랐다. 토론회에서 도시재생과 직원 손을 꼭 잡고 “주민 의견도 안 듣고 공모에 참여하면 되느냐”고 하소연한 아주머님과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외친 철물점 사장님이 생각하는 도시 재생은 행정, 전문가들이 각각 생각하는 도시 재생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 천 억원의 사업 성과를 이뤄낸 공무원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누군가는 주민들에게 ‘우매한 대중’이라는 비난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 단절된 계획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자 공허한 계몽이라는 것은 이미 앞선 주민설명회를 통해 확인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입장이 100% 옳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럼 원도심을 이대로 둬도 괜찮겠냐’라는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주민은 든든한 재산을 지닌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녹록치 않은 살림살이를 신경써야하는 이들에게 거창한 사업 계획과 세련된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다.

여기서 이날 토론회의 또 다른 결과를 추정해본다면, 그것은 바로 주민들의 깨달음이다. 토론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주민들은 ‘미처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는 자기 고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주민 대신 공무원들이 가득 찬 주민설명회를 보며 ‘이거 큰일 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어느 참석자의 고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내가 사는 공간과 지역이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을 터.

다만 그 깨달음의 배경과 방향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건물을 지금 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있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깨달음, 다른 이는 화려한 건물 대신 옛 정취를 살리자는 깨달음을 얻었다. 교육, 예술, 도시계획 등 각자의 경험과 수지타산을 고려한 판단이 현장에서 쏟아졌다.

그 판단들이 과연 옳고 그른지 논의는 나중이다. 도시재생은 이 같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명과 자발적 행동을 기초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토론회가 지닌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보인다. 한 두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토론회를 넘어 소모임, 단체까지 만들어지도록 주민들은 나서서 참여해야 한다. 각자 희망하는 원도심의 모습은 다를지언정,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짜배기 변화가 나오기 마련이다.

▲ 토론회를 준비한 주민 가운데 한 명인 하성엽 씨. 원도심에서 나고 자라 현재는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냥 앉아있으면 알아서 되겠거니 하지 마시고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고 참가하셨으면 좋겠다.”

토론회를 준비하기 위해 목이 쉬도록 홍보하며 애쓴 샌드위치 가게 사장님의 마무리 인사를 주민들은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미 대규모 계획을 세우고 나랏돈까지 타온 제주도의 입장, 주민 뜻을 모아야 되는 기초 과정을 이제야 시작한 원도심 주민의 입장. 양 쪽 간격은 분명 크지만 서로가 협의하고 소통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말고 애써주길 도민의 한 사람으로 바란다. 오늘 토론회가 주민과 행정, 도민 모두가 만족하는 원도심을 만드는 발화점이 되길 또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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