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2) 강아지 똥은 똥이 아닌가?
  
분명코 즉답이 떨어질 것이다. “무사 아니라게, 강생이 똥도 똥은 똥이주기게.”(왜 아니겠느냐, 강아지 똥도 똥이지 뭐.”)
  
아주 적고 희미하다 해서 본색(本色)을 감출 수는 없다. 그렇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게 따로 있지, 나쁜 일을 조금 했다 해서 혹은 큰 덩어리에서 한 쪼가리 축냈다고 그게 아니라고 발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로 하기 거북한 ‘똥’이란 고얀 말이 들어 있긴 하나, 일상생활에서 조금도 꺼리지 않고 쓰는 경우도 꽤 있다. ‘똥배 나왔다, 쇠똥구리, 닭똥집, 똥단지 무격(화투 패 11월 오동), 개똥도 약에 쓰려면 어렵다….’

그중에도 강아지똥은 어미개의 배설물인 개똥하고도 달라서 아주 작고 적은 양이다. 작고 적다고 해서 똥이 아니냐고 함이니, 족아도 아지망(나이 어리고 작아도 아주머니)이라 함이 아닌가. 섬세하면서 적절한 빗댐이다.

작아도 분명 있는 것은 있는 것인데, 견강부회로 없다고, 아니라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쁜 일을 저질러 놓고 ‘그 정도의 일을 가지고 문제 삼을 게 뭐냐'고 벅벅 강변하는 것은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은 거짓일 뿐 참이 아니지 않은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어렵다고 하지만 무얼 유용하게 긴히 쓰려 할 때 나오는 말이라 쓰임이 영 다르다.

본색을 감추기 버릇하면 안된다. 버릇이 더 좋지 않은 쪽으로 버릇을 키워 터수를 넓히면서 점점 고질(痼疾)이 돼 간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은 평범한 것 같아도 깊은 속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습관을 일러 제2의 천성이라 했겠다. 일단 검은 물이 들면 빼지 못한다. 오랜 경험칙에서 나온 불변의 진리다. 방죽도 개미구멍에서 무너지는 법 아닌가. 그러니 작은 잘못도 잘못이 ‘아니라’ 우기지만 말고 뉘우침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마음 다잡아야 한다.

‘강아지똥은 똥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도 사람 나름일 테다. 시골에서 순박하게 사는 사람이 세상 물정 모르고 여차해 한번 헛길에 발을 놓을 수는 왜 없겠는가. 결국 심성의 문제다. 나쁜 짓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 일을 내는 수도 얼마든지 있는 세상이다.

조금만 넓게 내다보면 세상에는 ‘강생이똥’으로 위장하거나 가면을 쓴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디 한둘이라야지….

눈만 뜨면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건 사고들. 그 가운데도 속 검은자들의 뇌물수수, 크고 작은 부정 청탁의 일들. 정경유착의 너저분한 사건 등에 연루된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검찰에 소환돼 들어가면서 포토라인에 서서 몰려든 취재진에게 내뱉는 말들이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라 입이 다물리지 않는다. ‘나는 모른다, 그런 적 없다, 기억에 없다, 죄송하다….’ 또 관행처럼 뱉어대는 “검찰에 가서 솔직히 다 말씀드리겠다.” 금세 천하에 들통 날 일을 우선 넘기고 보자는 심산에서 해를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려 한다. 도대체 가당한 일인가.

범죄자를 다스리는 당국자들도 법을 함부로 짓밟기 십상인가 하면, 심지어 금품수수의 중심에 서기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저러려고 그 어려운 공부를 했는가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세상에 믿을 건 오직 힘없는 선량한 서민들뿐이다. 

법을 수호해야 할 사람이 법을 어기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세상에 그런 몹쓸 일이 또 있을까.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나라가 끝없이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제발 이 나라가 이 이상 시궁으로 추락하게 하지 말게 해 달라 명찰하신 하느님께 빌고 또 빈다.

“강생이 똥은 똥이 아니가?” 단호히 답한다. “강생이 똥도 똥은 똥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증명사진 밝게 2.png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