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 제주사람 대표는 콘텐츠기획가라는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제주토박이 청년이다. 그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사람책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제주 곳곳에 숨어있던 보석같은 이들의 특별한 경험과 생각들이 그의 글을 통해 풀어져나온다. 그의 만남과 이야기가 제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편집자 주]

[박경호의 제주사람책 이야기] (15) 김종현 섬이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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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유)섬이다 대표. ⓒ 박경호

오랜만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떤 분을 모시면 좋을까 참 고민이 많았다. 실마리는 그 동안 인터뷰에서 공통질문으로 던진 “인생의 변화를 준 인연이 있나요?” 이 물음에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제주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이 삶의 변화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연 한 명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유)섬이다의 김종현(44) 대표라고 얘기하고 싶다.

대학시절 한 프로그램에서 김종현 대표를 멘토로 만났다. 지금 내가 사람을 만나고 연결하는 일을 하게 된 것도 김 대표 덕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많은 제주 청년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있다. 그는 늘 제주의 ‘미래가치’를 고민하면서 그것을 실행해 나갈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넥슨과 다음의 제주 이전을 이끌었고, 다시 사회적기업 창업에 뛰어들었다. 어떤 금전적 목표가 아니라 제주의 미래가치를 위한 판단이었다. 이래저래 그의 삶의 궤적은 참 독특하다. 이 범상치 않은 사람, 한 번 깊게 들여다봤다.
 
- 우선 독자들에게 소개와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워낙 다양한 삶을 살아와서 제 소개를 뭐라고 쉽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지금 용담해안도로의 로컬푸드 레스토랑인 닐모리동동과 성이시돌목장 내에 있는 우유카페 우유부단을 운영하는 '섬이다'의 대표로 있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인터넷 비즈니스와 검색광고 기획자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다니던 회사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제주 이전을 담당하게 됐죠. 2009년부터는 넥슨의 제주 이전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지 매입과 건축 과정도 진행하고, 행정, 지역 대학과 여러가지 정책적 조율도 하고 지역협력과 사회공헌 사업들도 담당했습니다.
 
- 섬이다 외에도 정말 하시는 일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 이유, 그리고 그 중심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제 삶을 관통하는 지향점은 ‘제주의 미래가치를 실현해보자’는 것입니다. 다음(Daum)이 제주 이전을 준비하기 위해 20명이 있는 사무실에 故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 다음이 왜 제주에 가느냐에 대해 설명이 필요했죠. 그때 저희의 대답은 ‘제주는 미래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미래가치란 말이 제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표어,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제주의 미래가치를 떠올리며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기업의 이전이었습니다. 제주의 미래가치와 부합하는 기업들의 제주 정착을 도왔습니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는 약 30만평입니다. 산업용지는 15만평에 불과하죠. 통상 골프장 1개가 차지하는 면적이 30만평 정도 됩니다. 같은 토지를 사용하지만, 첨단 산업이 훨씬 높은 부가가치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합니다. 그런데 첨단산업단지는 자생적 지역 기업에 의해서 형성되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기업의 이전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첨단 기업의 제주 이전은 제주의 미래가치에 부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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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故 노무현대통령이 다음(DAUM) 지능화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모습. ⓒ 김종현

현재 운영중인 섬이다의 로컬푸드 레스토랑과 카페 같은 경우도 제주의 미래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외부자원으로 제주의 미래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해 봤으니, 제주의 자원을 가지고 제주의 미래가치를 실현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로컬푸드라는 영역이었습니다. 지역순환형 경제와 지역 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지역주민들의 소득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의 미래가치를 누가 실현할 것이냐라는 고민을 했을 때 청년들이 만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의 청년들이 제주 공동체가 갖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 자연스럽게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청년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교육하기도 하고,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지원하게 된 것이죠.

섬이다는 지역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그 수익을 다시 제주에 환원하는 예비사회적기업입니다. 사회적 경제 역시 제주의 미래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제주를 위해서 필요한 경제적 방식입니다. 그래서 제주의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는 영역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게 됐습니다.

- 최근 대기업 본부장에서 다시 창업을 하셨는데요, 쉽지 않았을 결정이라 생각됩니다. 어떤 계기로 맘을 먹게 되었나요?

저는 그냥 기업에 있었던 것 자체가 행운이고 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업이 무언가를 내려놓는 거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청년시절에 청년인권단체도 만들어 보려 했었고, 시민단체 활동도 참여했습니다. 당시 활동가들의 임금은 70~80만원 정도였습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삶을 꾸려가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었어요. 저는 그렇게까지 할 용기도 부족했고, 가정 상황이 안 돼서 직장을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헌신적인 분들에 비해서, 저는 많은 것을 받아 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장에서 얻은 경제적 안정성이 저의 기본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행운이고 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성직자를 꿈꾸기도 했었는데요. 기본적으로 어릴 때부터 공동체 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실존적인 고민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 성향들이 있기에, 제주의 미래가치를 실현시키는 삶, 지역 공동체가 도움이 되기에 활동들이 눈에 들어온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니,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 다양한데 제가 오히려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고민은 크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업에서도 제주의 미래가치와 관련된 시도들을 많이 했습니다. 닐모리동동도 그때 시작했고, 청년단체 지원도 그때 했죠. 지금의 일들은 직장 생활에서 했던 활동들의 자연스런 연장선입니다. 결국 저는 제가 가는 길의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고, 같은 길을 가는데 중간에 옷을 갈아입은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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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이다에서 운영하는 우유부단. 제주시 한림읍 성이시돌목장 내에 위치해있다. ⓒ 섬이다

- 대표님께서는 제주의 많은 청년들에게 멘토가 되어주시는데요. 제주의 미래에 청년들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요?

제가 HRA(Human Renaissance Academy)라는 대학생 교육 프로그램에서 멘토 역할을 한지 이제 8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제주대에 강의도 나가고, 청년 혁신가들을 육성하는 사업도 담당하고 있죠. 청년 기업가들과는 사업 방향에 대해서 조언해 주고, 청년단체들과는 제주에서의 청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청년들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요. 일단은 제주 청년들의 눈높이, 목표가 미래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당장의 시선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업에 한정돼있죠. 그 과정을 잘 넘어가는 게 우선은 중요한 것 같아요. 청년들이 꿈꾸는 제주의 미래상이 10년, 20년 뒤에는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잖아요. 그에 맞춰서 청년들이 도전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같이 만들어 가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미래라는 말이 멀고 큰 이야기 같아서 청년들이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있을 것이고, ‘제주라는 지역에서 청년들이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겠죠. 하지만,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싶어요.

스타벅스하면 지금은 아주 글로벌한 기업이잖아요. 하지만, 처음에는 시애틀에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작은 커피숍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제주 청년들이 어딘가에 시작한 커피숍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나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지 모르죠. 스타벅스가 그냥 커피숍이 아닌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가진 커피숍을 만들었던 것처럼요.

클럽메드라고 하는 글로벌 리조트 그룹을 또 소개하고 싶은데요. 제주도와 비슷한 스페인의 마요르카라는 섬에서 시작했어요. 2차 대전 후 놀거리가 없는 청년들이 바다에 텐트를 펴서 놀기 시작한거죠. 그들은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교감하고 함께 즐기는 것을 중시했죠. 스텝들은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고객들과 같이 놀고, 레저를 즐기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세계적인 리조트 그룹이 탄생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시작되었고, 맥도날드도 생각해보면 노동자들의 싸구려 식당이었습니다. 요즘 제주도로 치면 흑돼지 집이라고 할까요? 킨포크라는 잡지도 포클랜드 지방에서 시작해 자연주의 생활양식의 대표적인 잡지가 됐습니다.

자꾸 외부에서 큰 것을 가져와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 제주가 갖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들을, 작지만 가치있고 혁신적인 시도들로 현실화 해 나간다면, 경제적으로든 지역의 브랜드로든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년들이 그런 것에 도전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작지만 미래에는 훨씬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더 주목 받을 수 있는 일에 도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더 나은 미래 제주를 위한 과감하고 담대한 새로운 산업, 경제, 문화, 행정을 꿈꾸게 해줘야 합니다.

- 대표님의 청년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청년기는 그리 순탄하지 않아요. 나름 방황과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때 돌아가셨어요. 당연히 충격이 컸죠. 그리고 대학 진학에도 제 뜻을 이루지는 못했어요. 아주 어릴 때 저는 신부님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진학 시점에 법대를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법대에 떨어지면 성직자가 되라는 뜻인가 해서 2지망을 가장 유사한 종교학과를 썼죠. 결과는 법대에서 떨어지고 2지망인 종교학과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큰 실패 중 하나였죠.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니, 좌절감에 또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교학이라는게 많은 분들이 생소하잖아요.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는 비인기학과였죠. 그 때 제가 92학번이였는데, 당시 한국사회에 대한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취업난이 나오기도 했죠. 당시 인문대였던 저는 그것을 좀 더 일찍 경험하기도 하였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지만, 딱히 방향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름 학생운동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학생운동 했다고 해서, 학생회장 등 앞에 나서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학생회 집행부에서 활동했었죠.

대학을 졸업하고도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시민운동가를 해볼까’라는 고민을 실제로 많이 하면서 시민단체 활동도 많이 했죠. 청년 인권을 위한 NGO단체도 만들어보려 했구요. 그런데 취업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저희 세대는 IMF 이후에 대학 졸업을 하면서,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다행히도 인터넷 산업의 태동기였습니다.

당시 한국에 인터넷 산업이 활성화 되면서 엔지니어, 디자인 쪽 전공자들은 있었지만, 새롭게 기획하는 일은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영역이었죠. 저 같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는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였어요. 그래서 인터넷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저는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진로에 대한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느껴봤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청년들을 만날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무튼 청년 때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것부터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것까지, 많이 고민하면서 지내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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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청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종현 대표(왼쪽 가운데) ⓒ 섬이다

- ‘제주사람책이야기’의 공식질문인데요. 대표님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되는 인연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 대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인연입니다. 이 대표와의 인연이 없었으면, 저는 지금 서울 어딘가에서 인터넷 비즈니스 기획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겠죠. 이 대표와 함께 제주 이전을 구상을 했던 시기는 일생일대의 전환을 줬습니다. 제주의 미래가치라는 키워드도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고요. 제주의 미래에 대해서도 참 많이 이야기를 나눴던 거 같습니다.

이 대표는 다음의 경영일선에서 물러설 때에도, 제주이전 프로젝트만은 계속 챙겼어요. 그래서 단순 직장 상사를 넘는 더 깊은 인연이 된 것 같습니다. 제주 이전 뿐 아니라 ‘즐겁게 세상을 바꾸는 기업’ 이라는 다음의 철학은 지금도 저에게 깊은 영감과 울림을 줍니다. 그런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접했던 것은 저에게 매우 큰 자양분입니다.

이 대표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기업, 소셜벤쳐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관련 활동들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워낙 창업가 정신이 강한 분이라 저에게도 창업에 대한 자극도 많이 줬고요. 제가 지금 섬이다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자극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김종현 혹은 섬이다가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섬이다는 제주는 섬이다라는 뜻도 있지만, 빛날 섬(閃), 다를 이(異), 많을 다(多)라는 의미도 품고 있습니다. 제주가 ‘빛나는 다름이 많다’라는 뜻입니다. 이름처럼 제주에서 다양하고 혁신적인 시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섬이다는 로컬푸드를 활용하는 예비사회적기업입니다.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 가치가 있는활동을 기업적 방식으로 풀고, 거기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입니다. 우선 로컬푸드와 관련해서도 혁신적인 시도를 어떻게 해 볼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레스토랑, 카페 직원들이라고 하면, 단순 운영인력이라고 생각할텐데요.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서 직원들 스스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 만큼 더 다양한 로컬푸드 매장들이 나오게 되겠죠.

또 제주의 가치를 구현하는 시도들을 새로운 영역에서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여행, 교육, 문화 등 즐거운 영역이 너무 많죠. 영역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제 활동의 지향점은 첫 번째는 제주다움에 기반해서 혁신을 시도하면 좋겠다는 거에요. 혁신과 창조는 항상 자기다움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제주가 제주 밖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지역이 되게 만들고 싶습니다. 진정한 자존감과 행복은 내가 누군가를 돕고, 세상에 기여할 때 얻게 됩니다.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의 비전은 외부에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외부에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주가 대한민국과 세계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 참 많은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지속가능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든 공동체든 단 몇 년 몇 십년이 아니라 수 천년 수 만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미래는 최악이거든요.

저는 사람이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자 태어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크든 작든 자기만의 색깔로 빛나는 작은 별들인 거죠. 그리고 각자는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치 있는 존재로 이 땅에 온 거죠.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나만의 빛을 창조하고, 제주는 더 다양한 빛을 담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김종현은 누구? 1973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랐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다음(DAUM)에 입사해 검색비즈니스 팀장, 대외협력실장, 제주프로젝트 실장을 맡았다. 다음의 제주이주를 이끌었다. 이후 넥슨 지주회사인 NXC의 대외사업본부장을 맡아 넥슨 네트웍스의 제주 이전을 기획했다. 예비사회적기업 섬이다를 만든 후 이시돌목장의 카페 우유부단을 성공 궤도로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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