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항구, 리버티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받침대 현판에는 '오랜 대지여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 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올릴 터이니'라는 시(詩)가 새겨져 있다. 신천지 미국은 19세기 이후 세계 각지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미국은 미국인만의 미국이 아니었다. 달러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대전을 두 번 치른 후 달러는 세계통화로서 금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고, 1971년 달러의 금 교환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닉슨 쇼크를 거친 후에도 전세계 무역과 외환보유의 주종 통화로 자리해왔다. 달러는 미국만의 달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아메리카 퍼스트 원칙을 내건 한 사업가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의 나라이기를 원하지도, 자기의 화폐인 달러가 세계의 통화로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으려 한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데 따른 비용과 마찬가지로 달러화를 세계의 통화로 제공하는 데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가치가 흔들리면 안된다는 '강한 달러'가 그 비용 중의 하나이며 매년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공급되는 달러 유동성을 확대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비용이다.

하버드대학의 칼멘 라인하트 교수는 "미국은 1971년과 1973년 두번에 걸쳐 달러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미국이 언젠가는 무역적자를 감축해야 할 때가 올 것인데 그 때 또 한번의 달러 평가절하가 따를 것이다. 이때 중국을 비롯하여 미국의 재정증권을 외환보유고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은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이달 초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달러 중독증'이라는 칼럼에서 예고했다. 그의 말대로 달러의 평가절하가 기정사실로 된다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조건은 훼손된다.

비용을 수반하는 강한 달러

그러나 달러의 평가절하는 다른 나라들의 경우처럼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인베스테크 자산운영사의 존 스토포드는 지난 1월 초 블룸버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약한 달러를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으로 구두개입, 미국 단독 또는 주요 수개 국과 공조한 외환시장에서의 달러매각, 국부펀드를 통한 외국 자산의 매입, 그리고 양적완화의 지속을 제시했다.

하루에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달러의 양이 무려 5조 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통령이나 연준 의장의 구두개입, 또는 외환시장 개입이나 국부펀드의 외국자산 매입으로 달러를 세계 시장에 더 풀어내는 것의 효과는 미지수다. 그런 미묘한 시점에서 연준은 지난 15일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지만 금리인상이 달러의 강세를 야기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그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준 기준금리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5%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0%대로 내려간 것은 2008년 12월 이후의 일로 무려 만 7년 동안 지속되었다가 재작년 12월과 작년 12월 그리고 이번에 0.25%씩 인상되었던 것이다.

제로금리의 관성 때문에 이번에 오른 1% 금리는 인상임에 분명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아직 초 저금리임이 분명하고 물가상승률이 2%에 육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금리는 아직 마이너스 수준이다. 금년 중 두 차례의 추가 인상이 있더라도 연말에 1.5%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옐런 의장의 언질까지 있었으므로 시장의 판단은 미국의 통화정책이 당분간 양적완화 쪽에 머무른다고 보는 것이다.

양적완화 지속으로 약한 달러 추구

금리인상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까지 연일 달러의 환율이 하락했다. 발표 다음날 국제 금(金) 선물 가격이 하루 2.2% 상승한 것도 작년 6월 브렉시트 직후의 하루 인상폭 다음으로 가장 컸다.

trump-2056666_1280.png
▲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서 미국 달러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출처=pixabay.

아메리카 퍼스트는 남들과 똑같이 경쟁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민자들에 의해 부강한 미국이 건설되어왔듯이 강한 달러는 미국의 국익에 기여한 바가 없지 않았다. 달러에 대한 신뢰 덕에 미국은 아무 때나 달러를 찍어내던가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돈을 충당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남들과 똑같이 서로 경쟁하겠다는 것은 국제질서의 새롭고도 건전한 변화를 가져오는 올바른 방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기축통화라는 특권을 포기하는 것은 미국을 위해서나 세계 통화질서를 위해 대단한 모험이다. 취임 초부터 국정 지지도가 37%로 추락한 대통령에게 이것이 허락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3월 22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