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재발견에 나섰던 오승주 작가가 다시 고전을 꺼내들었습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논어 읽기 시즌2에 맞춰 <제주의소리>에 인문학 함께 읽기 칼럼을 펼쳐놓습니다. 좋은 생각에 힘입어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8) 조지 오웰이 말하는 1948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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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에세이 | 조지 오웰 (지은이) | 이한중 (옮긴이) | 한겨레출판 | 2010-09-15 | 원제 Why I Write

조지 오웰이 말하는 제주 4.3

정치적인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과 논점 회피, 그리고 순전히 아리송한 표현법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무방비한 마을이 폭격을 당하고, 주민들이 시골로 내몰리고, 가축들이 기관총 난사를 당하고, 오두막들이 소이탄에 타버리는 것을 ‘평정(平定)’이라 부른다. 수백만의 농민이 농지를 강탈당한 뒤 지고 갈 수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걸어서 길을 떠나도록 내몰리는 것을 ‘인구 이동’이나 ‘전선 조정’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재판도 못 받고 몇 년 동안 투옥되거나, 뒷덜미에 총을 맞거나, 북극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괴혈병으로 죽는 것을 ‘의심 분자 제거’라 부른다. 이런 식의 어법은 무언가를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법 없이 명명하고자 할 때 필요하다. - 조지 오웰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 ‘정치와 영어’

몇 년 전 현기영 선생께 들었던 강의 내용 중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4.3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라는 말을 저도 끝내 도망쳤다가 되돌아왔습니다. 저에게 4.3은 대학 시절 선배들과 사회과학학습을 받고 현장답사를 몇 번 하는 정도였지만 ‘짓누름’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제주도 남자들은 특유의 귀소본능이 있다고 하죠. 육지에서 생활하는 10여년 동안 제 마음속에는 4.3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4.3이 정신적인 마음의 고향이죠. 4.3이라는 학살을 정신적 고향으로 삼는다는 건 비참하고 슬픈 일입니다. 즐거운 기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순 아홉 번째 추념 기간에 3~40대, 그러니까 4.3이 세 세대를 지난 시점인 2030~40년 전후에도 여전히 생명력과 열정이 남아 있을 제주의 젊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1948년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저는 4.3이라는 숫자보다는 1948년이라고 표현합니다. 세계적 사건답게 날짜에 한정하기보다는 연도로 표현하는 게 좋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문인이나 역사가들이 연도로 특정 사건을 표현할 때 읽는 저도 그 시간을 함께 한다는 자부심이 들더군요.

대학 시절 저는 김수영 시인의 산문집에 매료되었습니다.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언어는 맑았고 거짓이 없었기에 어떤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조지 오웰을 만났을 때는 마치 김수영의 스승 같았습니다. 조지 오웰은 뼛속까지 진보주의자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은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당당했습니다.

스페인내전에 참전해 스페인공화국을 위해 싸웠으나 프랑코장군의 독재를 막을 순 없었죠. 부상을 당하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진보언론에 대한 환멸감을 깊이 느끼고는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소설을 남깁니다. 앞머리에 소개한 조지 오웰의 글에 따르면 제주4.3은 악의 무리들을 ‘평정’했으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인구 이동’이 필요했고, 안전하게 ‘불순분자 제거’가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 일은 한 ‘주어’(주체)는 무엇일까요? 4.3유족들과 가슴속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제주도민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 건 살과 피가 떨어져나가고 온갖 모욕과 비참과 공포를 낳으면서도 아직까지 영혼을 붙잡고 있는 이 사건이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법 없이 명명’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제주4.3은 ‘살과 피와 영혼 없는 정치’를 극복하라고 호소합니다.

살과 피와 영혼이 있는 정치의 시작

제주4.3 69주기인 지금 이렇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69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살과 피와 영혼 없는 정치’가 극복되었는가? 이게 해결되어야 "남로당 몇몇 사람들 때문에 주민들이 휩쓸린 것”, “공산폭도들의 반대투쟁” 따위의 말장난이 사라질 것입니다. 영혼 없는 정치는 이미 제주 곳곳에 흘러넘칩니다. 저는 공부방을 합니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아이들은 물만 주면 자연스럽게 크는 거 아냐?” 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제주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짐작했습니다. 제가 아는 지혜로운 농부의 말에 따르면 제주도 말은 주인이 올라탈 수 없다고 합니다. 제주 말은 대부분 남자들이 키우죠. ‘촐(말 먹이)’을 던져두고 따로 교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감하지 않는 생명은 그 어떤 것도 성장하지 않습니다.

실제 아이들이 보내는 일상은 예측불허하고 역동적입니다. ‘교감도 영혼도 없는 정치’의 아래에서는 이 모든 순간들이 무의미합니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 중에서는 많은 상처와 좋지 않은 습관들로 인해서 ‘기다림’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부모는 돈만 내면 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해결하려고 공부방에 돈을 내는 게 아니냐고 당당하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제주도의 이혼율과 이혼증가율은 몇 년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한 지인이 “제주도 남자만 빼고 모든 게 변화하니까”라고 말하더군요. 부정할 수도 없고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제주도는 1948년 이래로 영혼 없는 정치에 지배돼 있습니다. 이걸 이겨내지 못한 상황에서는 4.3문제 해결도 요원합니다.

그렇다면 피와 살과 영혼이 있는 정치란 것이 무엇일까요? 조지 오웰은 가슴속에서 한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정치는 사람이므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내가 민병대에 입대한 날 위병소에서 내 손을 잡아준 이탈리아 민병대원이다. 그에 대해서는 스페인내전을 다룬 내 책(<카탈로니아 찬가>(1938) 첫머리에 묘사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남루한 제복과 강인하면서 우수 어린 순박한 얼굴이 떠오르면(이 얼마나 생생한지!) 전쟁의 복잡하고 부차적인 문제들은 다 사라지는 듯하고, 아무튼 누가 옳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힘을 앞세운 국제정치와 언론의 거짓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의 핵심 이슈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타고난 권리인 줄 알았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한 시도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의 최후가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이런저런 비감(悲感)에 젖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를 만난 곳은 ‘레닌 병영’이었으니 그는 아마도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였을 텐데, 우리 시대의 특수한 여건에서 그런 종류의 사람은 게슈타포한테 살해당하지 않으면 대개 GPU(소련 국가정치보안부)한테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장기적인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고작 1~2분밖에 보지 못했던 이 사람의 얼굴은, 나에게 이 전쟁이 정말 어떤 것이었는지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 조지 오웰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보다’

1948년에 제주도는 무엇을 잃었을까요? 저는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의 정신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사람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947년 3.1절 기념집회에서 경찰의 부당한 탄압에 항거해 95%의 직장에서 민관군총파업을 감행했던 정신, 남한 단독선거만큼은 막아보려 제헌의원 선거를 거부했던 정신. 지금 이 정신이 제주에 있나요?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3년의 체험과 심리치료를 담은 책『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에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자유의 순간을 회고합니다. 1948년 이후의 제주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던 순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홀로 그 사람의 모습만 더듬어 보아도 수용소 생활에서 용기를 불어 넣어주던 사람은 집에 돌아와 보니 없지 않은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비통과 환멸의 늪에서’

조지 오웰도 빅터 프랭클도 소중한 사람의 결말을 보면서 지독한 환멸감을 느꼈지만 결코 그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것을 자극과 격려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진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내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지 않으면 거짓이 판치는 정치 지옥이 영원히 반복될 것입니다.

조지 오웰이 아니었다면 저는 ‘정치’에 관해서 말하고 글 쓰는 것을 지금도 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가라앉는 배에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가라앉는 배에 관한 것이 될 터”(『나는 왜 쓰는가』)이듯,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써야 합니다. 우리를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정치의 언어들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민들도 정치 언어의 대표적 피해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상처 입힌 정치 언어는 “거짓을 살인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나는 왜 쓰는가』)되었으니까요.

다시 1948년. 비록 무모한 결정이었다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있지만 당시 불의에 항거하기로 결단한 제주 선조들의 마음을 상상하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아마 이 마음을 안고 기꺼이 죽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때의 이 마음과 지금의 이 마음이 다시 만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삼군의 장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필부 한 사람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논어, 「자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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