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2) 상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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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외빵. ⓒ 김정숙

햇볕이 점점 두터워져 간다. 솜털을 벗어던지며 새순들도 초록 살이 오르고 밀 보리는 하루하루 익어간다. 아니다. 밀은 어디로 갔는지 띄엄띄엄 보리만 익어간다. 밀 재배는 거의 사라졌지만 저렴한 밀가루의 공습으로 음식은 정착되었다. 오히려 쌀을 위협하고 있을 정도다.

밀은 쌀이 궁핍한 과거, 제주에서 ‘빵떡’을 만들어냈다. 빵도 아니고 떡도 아닌 것이, 빵도 같고 떡도 닮은 것이 ‘빵떡’이다. 떡을 대신 했으니 떡이라 해도 될 거 같고, 빵 만들 듯이 만들었으니 빵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기일제사 때는 메밀이나 좁쌀, 쌀로 만들던 떡을 줄이고 빵떡을 만든다. 빵떡은 ‘상외빵(떡), 상애빵(떡), 기주떡(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산남지역에서는 둥글게 빵처럼 만들어 찐다. 상위에는 올리지 않는다고 하여 ‘상외빵’이라 하고 산북 서부지역에서는 반달모양이나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기주떡’이라 불렀다. 아마도 술을 기주로 해서 만들어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싶다. 막걸리를 넣어 발효 시킨 반죽으로 만든다. 모양은 다르지만 만드는 방법이나 맛은 비슷하다. 때로는 팥으로 소를 넣기도 한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막걸리의 상태에 따라 만들 때마다 맛이 달랐다. 과 발효된 막걸리를 넣으면 매끄럽게 발효되지도 않을뿐더러 시큼했다. 무더운 여름철 상온에서도 쉽게 상하지 않는 것은 매력적이다. 간혹 곰팡이가 피어도 뜯어내고 다시 쪄서 먹었다.

우리 집엔 여름제사가 많아서 한 여름에 몇 번씩 종일 기주떡을 만들고 쪄야 했다. 반죽해서 부풀고, 만들어 찌면서 또 부풀어 떡은 큰 대바구니가 넘쳐나곤 했다. 제사가 끝나면 친척들과 나누었다. 나누어 주고 더러는 받으면서 여름은 빵떡 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상외빵은 두 번 찌면 더 부드럽고 맛있다.

빵집이 생기면서 집에서 빵 만드는 일은 줄어들었다. 산북지역의 기주떡은 사라졌지만 상외빵은 살아있다. 시댁에서는 번거로운 상외빵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직도 애틋하게 상외빵을 반기기 때문이다.

우리 형님 레시피는 밀가루 킬로그램에 우유1리터와 막걸리 한 병, 이스트, 설탕, 소금을 조금씩 넣어 반죽한다. 빵집 빵처럼 반죽을 많이 치대지 않아 쫄깃거림은 덜하지만 우유와 막걸리의 풍미가 깔끔 담백하다. 냉동저장 해두면서 쪄 먹는다. 속을 가르고 나물이나 김치를 넣어도 채소과일 드레싱이나 꿀을 곁들여도 좋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하루 날을 잡고 하는 즐거운 놀이이기도 했다. 봄엔 쑥을 넣어 만들기도 하고 반죽을 질게하여 한 덩어리로 쪄내 잘라먹어도 좋은 간식거리였다.
빵떡은 이제 없다. 빵은 빵으로써 색을 분명히 하고 떡은 떡 대로 제 위치를 잡으면서 영역을 키우는 중이다. 상 위에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조상 기일을 잡아 넉넉하게 나누려던 그 마음만은 5월 숲처럼 일렁였으면.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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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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