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7) UCLG '세계문화정상회의 2017'이 주는 교훈

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제주에서 예술의 영감을 받았다는 시인이 아리랑을 부르고, 관료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문화로 관료주의를 재미있게 만들자는 말에 흥분하는 사람들, 도시는 무대이고 거주자는 공연자라는 모토로 도시전략을 세운다는 발표자까지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제주 문예회관 일원에서 열린 세계지방정부연합(UCLG)의 ‘세계문화정상회의(컬쳐 서밋)’ 행사장은 문화 예찬과 자신의 지역 자랑으로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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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고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의 문화를 알린 고은 시인. ⓒ양은희

2015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경제성장, 포용적 사회, 균형된 환경을 지향했던 그 동안의 발전 방향을 확대하여 인간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출범했다. 문화를 매개로 활동하는 공무원, NGO, 시민단체, 예술가 등 다양한 인물이 참여하여 주제별 세션에서 자신이 속한 도시, 기관의 활동을 소개하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향후 교류와 협업을 지향하는 행사이다. 

1회 빌바오에 이어 2017년 2회가 제주에서 열렸다. ‘컬쳐 서밋’의 한국어 제목은 ‘세계문화정상회의’라고 했으나, 참가자들의 열린 사고나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인간의 누려야 할 ‘문화 권리’를 보호하려는 신념을 보면서 차라리 ‘세계문화회의’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3일 동안 참가하여 우리가 배울 몇 가지 교훈을 챙겨 보았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다.

첫째는 ‘문화’에 대한 환상으로 보편적 세계 문화를 수입하는 것보다 제주에서 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문화’는 거의 모든 분야의 화두이기는 하나, 특히 세계화를 지향하는 자본의 외피로서 부각된 측면이 많다. 즉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비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문화 다양성’ 선언 이후 21세기 문화의 화두를 세계화의 지평에서 소외된 혜택 받지 못한 소수자, 소수문화로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즉 표준어 사용으로 위협받는 제주어 뿐만 아니라 대량생산과 현대문화 속에 사라지는 공예기술, 해녀문화와 노래, 관혼상제에 관련된 전통문화까지 우리 스스로 박물관 속으로 보내고 있는 제주의 유무형 문화유산을 생활 속으로 가져와 ‘지속가능한 유산’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제주의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도 ‘문화’에 대한 의식을 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어느 도시의 시장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근현대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관광객 1천만 명이 찾아오는 자신의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시민이 십시일반 기부하여 지은 오래된 운동장을 파괴하고 새로 지으려는 대형 마트를 막고 있었는데,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제주의 지도자들도 수천 년간 쌓은 제주의 문화뿐만 아니라 20세기 문화까지 그동안 조금씩 쌓아온 삶의 흔적이 모두 중요한 유무형의 유산이라고 여기고 이를 지속가능한 현대의 삶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없이 남의 것만 수용하며 비슷하게 변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었다.

세 번째는 점점 ‘문화’로 무장하고 있는 제주가 미래를 위해 한정된 자원과 자본을 가지고 그릴 수 있는 ‘문화 제주’의 궁극 지점을 미리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좋은 의도였으나 열심히 만들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도달하지 않으려면, 로마의 문화 부시장이 던진 조언에서 배워야 한다. 로마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화유산이 넘치나, 경제가 위기를 겪으면서 문화를 관리할 예산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예산의 90%가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서 배우라는 듯 이렇게 말을 던졌다. “여러분, 문화 인프라를 늘리는 데만 몰두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도시와 지역에 맞는 모델을 찾으십시오. 로마처럼 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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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를 닮지 말라고 역설한 로마의 문화 부시장. ⓒ양은희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다. UCLG ‘컬쳐 서밋’에도 범상치 않은 역사가 있다. 2001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문화 다양성’ 선언은 폭력과 전쟁으로 파괴되는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의 씨앗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처음 국제 문화 네트워크의 종사자들이 모여서 인류의 공존을 위해 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산하기 위해 ‘문화를 위한 의제 21(Agenda 21 for culture)’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문서는 21세기 들어 인적 교류의 장이 넓어지고 문화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면서 여러 정책수립 주체가 참조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구상된 것이다. 2004년 완성본이 나왔고, 마침 새로 출범한 UCLG의 문화위원회가 이를 채택하여 세계의 지방정부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5년 빌바오에서 열린 1회 컬쳐 서밋에서 ‘문화를 위한 의제 21’를 보다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행동강령인 ‘문화 21 실천(Culture 21: Actions)’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실천의지가 있는 지자체를 위해 ‘시범 도시(Pilot Cities)’, ‘선도 도시(Leading Cities)’, 그리고 ‘컬쳐 21 랩(Culture 21 Lab)’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를 독려하고 있고 그 과정과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 이번 ‘컬쳐 서밋’이다. 워싱턴 DC부터 리버풀까지 문화 실천의 주역들이 있는 현장에서 자신의 도시를 홍보하고 위상을 자랑하는 면도 있었으나 공존의 가치, 지속가능한 공존을 위해 용기있는 발언도 가능한 열린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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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문화권리를 외친 이스탄불 문화국장. ⓒ양은희

그중에서도 이스탄불 문화국장의 소신과 용기는 제주의 문화 인재들이 배울 점이 아닌가 싶다. 21세기에도 전쟁, 식민지화로 자신의 문화를 보호하지 못하고, 유산이 파괴되는 민족들이 있다. 그는 자신의 문화를 자랑하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위협에 처한 이들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고 터키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세계적인 도시의 박물관에는 남의 문화에서 약탈하거나 교묘하게 빼온 문화유산이 전시되고 있다. 

그는 “자기의 것이 아닌 유산을 가진 박물관은 그 유물을 원래 위치로 돌려주어야 한다. 그런 실천이 가능할 때 바로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문화 권리’를 지키자는 ‘컬쳐 서밋’의 모토가 진실됨을 믿을 수 있다”고 일갈했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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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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