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살문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꽃살문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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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지리산 실상사를 다녀와서
저는 여름휴가를 이용해 3박 4일간 지리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실상사'라는 절에 다녀왔습니다.

본래 목적한 바는 아니었지만, 저는 실상사에 도착한 직후부터 한참 동안 '꽃살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문 창살이 꽃 문양으로 되어 있는 데다 단청까지 해 놓아 그 아름다움이 일품이라는 '꽃살문'은 전에 우연히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서 보았지요.

남들이 말하는 것은 직접 보고 어디 가서 아는 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도 있지만, 함께 간 아들(초등학교 6학년)과 딸(5학년)에게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절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돌장승 '벅수'에 대해 설명하면서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비교하기도 했었지요.

처음엔 보광전의 창살을 살폈습니다. 아니더군요. 아들과 딸 앞에서 머쓱해진 저는 바로 옆에 있는 칠성각의 창살을 흘낏 쳐다본 후 곧장 극락전으로 달려갔습니다. 여름철이라 문을 활짝 열어놓은 데다가 바람에 닫히지 않도록 묶어놓았기 때문에 머리를 벽에 바짝 붙여 애써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역시 꽃살문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요.

결국 저는 꽃살문을 보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아니, 보지 못한 게 아니라 더 이상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경내에서 찾고자 했다면 어찌 찾을 수 없었겠습니까.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오마이뉴스]를 검색해보니, 그 꽃창살은 약사전의 문 창살이더군요. 찾지 않기로 마음먹은 때문인지, 아이들과 함께 약사전 앞 게시판의 설명문도 읽고 그 안의 큰 철불도 보았지만 꽃살문은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초 제가 실상사를 찾은 목적은 도법스님께서 행하시는 '좌우대립 한국전쟁 지리산 희생자 천도 1,000일 기도'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종무소에 가서 '제주4·3사건' 희생자를 위해 [제주4·3사건 희생자 영가]라는 위패를 써서 함께 모셔줄 것을 부탁드렸지요.

기도는 하루에 네 번씩 행해졌습니다.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2시, 밤 7시부터 시작되었고 한번에 약 2시간씩 진행됐습니다. 새벽 4시와 저녁 7시 기도는 예불에서 곧장 이어졌기 때문에 처음엔 여러 스님들이 계셨지만, 예불시간이 끝나면 대부분 나가시고 도법스님만 남아 기도하셨습니다. 예불시간이 아닌 오전 10시와 오후 2시의 기도는 물론 도법스님 혼자서 주재하셨지요.

도법스님께서는 천수경 독경을 하신 후 연신 "석가모니불!"을 염불하셨습니다. 스님이 독경하신 경전은 '천수경'이 맞을 겁니다. 제가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큰어머니께서 늘 천수경을 독경하셨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너무도 귀에 익은 것입니다. 한글을 모르시는 큰어머니께서는 귀찮을 정도로 제게 한 글자, 한 글자 물어가며 결코 짧지 않은 그 천수경을 모두 외우셨습니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왜 한글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드리지 못했을까!' 하고 크게 후회했었는데, 큰어머니께서는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로 시작되는 긴 천수경을 글자로써 배운 게 아니라 그 수많은 글자를 하나 하나 기호로써 외우셨던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 한자를 배워 한자어로 된 천수경의 의미를 자연스레 따져보게 되면서부터는 '큰어머니는 뜻도 모른 채 천수경을 외우시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고 건방진 마음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큰어머니께선 병약한 제가 조금만 아파도, 친구들과 야영을 떠나도, 학교에서 조금만 늦어도 부엌에서 향을 핀 채 저를 위해 쉴새 없이 천수경을 외우셨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큰어머니 덕분에 이따금 절에 따라다니며 얼치기 불교신자가 되었고, 큰어머니 덕분에 천수경 독경을 대부분 따라할 수 있었지만, 저는 도법스님께서 천수경 독경을 하시고 염불을 하시는 기도시간 내내 부처님 앞에 절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 독경소리를 듣노라니 잡념만 생기고, 간절한 제 마음을 드리기엔 미흡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약골인 제가 하루 8시간 동안 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만 하루가 지났을 무렵엔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가락, 어깨 등 안 쑤신 곳이 없었지요. 제가 간절히 기원했던 것은 도법스님께서 그동안 해오신 '좌우대립, 한국전쟁, 지리산 희생자'와 특히 '제주4·3사건'의 희생자들의 천도였습니다.

저는 10여년 전부터 '제주4·3사건'을 공부해오면서 너무도 처절하게 죽어간 수만명의 죽음에 대해 들었습니다.

총 맞은 희생, 칼맞은 희생, 죽창과 철창에 맞아 고통 속에 죽어간 희생, 겨울 한라산에서 얼어죽고 굶어죽은 희생, 90대 할머니의 희생, 다섯 살 난 어린 희생,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다 함께 죽음을 맞이한 희생, 몸을 지키려다 칼로 난자당한 희생, 아기를 밴 채 총에 맞고 불에 태워진 희생, 생매장된 희생, 바다에 수장된 희생, 굴에 갇힌 채 연기에 질식한 희생, 온갖 고문 속에 죽은 희생 등 수많은 희생자들의 상처가 제발 아물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먼발치에 숨어 숨죽여 흐느꼈던 유족, 부모님이 총살당할 때 맨 앞줄에 서서 만세 부르고 박수칠 것을 강요당했던 당시 10대 소년, 들킬까봐 우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았다가 제 자식을 질식사시킨 어머니 등 살아남은 탓에 오랫동안 더 쓰리고 시린 마음으로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수많은 유족 분들을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자비로 이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지난 20세기는 문명의 시대가 아니라 폭력과 야만이 난무했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말이지 평화롭고 인권이 살아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3박4일과 1,000일! 제가 천도기도에 동참한 날들과 도법스님께서 쉼 없이 기도하고 계시는 날들입니다. 이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저는 언제나 스님 뒤쪽 왼편에 있었기 때문에 절 하는 동안 스님의 옆모습을 얼핏얼핏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독경과 염불을 하시다보면 지치실 법도 한데, 정확한 발음을 내기 위함인지 광대뼈부터 아래턱까지 움찔움찔 움직이며 독경하시던 스님의 그 진지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찮은 저의 짧은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마는 도법스님 덕분에 용기를 갖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과문한 탓에 제가 도법스님과 실상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이 아닙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도법스님이 쓰신 {내가 본 부처}라는 책을 읽고, 호기심이 발동해 실상사 홈페이지(www.silsang.net)에 찾아 들어가면서부터입니다. 그곳을 통해 스님의 천일기도를 알게 되었지요. 그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선 기도의 내용이 그렇고, 그것을 무려 천일 동안 하시다니요!

저는 또한 실상사에서 너무도 소중한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절 입구엔 굶어 가는 북한 이라크 어린이들의 사진과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함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본 제 아이들은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었던 용돈을 모두 꺼내어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또 절 입구 플래카드에 쓰인 '우리쌀 지키기'에 대해, '자연과 환경'에 대해, 그리고 대안학교로 운영되는 '실상사 작은학교'에 대해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있던 동안 마침 도법스님께서 교장으로서 운영하고 계신 '귀농학교'의 입학식이 있었는데, 스님의 권유로 그곳에 함께 가서 뜻깊은 장면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입학생 외에 이미 졸업하신 선배들이 축하하러 와서 참으로 흥겨운 장면이 연출되었지요. 어쩌면 하나같이 소처럼 사슴처럼 선한 눈빛들입니까?

"스님께서 입학생들에게 선물을 수여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장내는 잠시 웅성거렸습니다. "왜 우리 때는 안 주시고 지금은 주느냐"는 선배들의 장난끼 어린 항변 때문이었지요. 입학 선물은 수건 한 장이었습니다. 스님께선 수건 한 장씩을 학생들의 목에 일일이 걸어주셨습니다. 선배들은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앞으로 학생들은 노동하면서 흘리는 땀방울을 그 수건으로 닦아내며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횡설수설하는 단상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꽃살문을 찾지 않기로 한 까닭은 이처럼 실상사에는 아름다운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실상사가 아름다운 것은 결코 그곳에 있는 꽃살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것이라는 보물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제게 있어 실상사가 진정 아름다웠던 것은 그곳에 계신 분들 때문이었습니다.

전 그 아름다움들을 느끼기 위해 새벽이나 늦은 밤 아무도 없을 때에 느린 걸음으로 오랫동안 경내를, 탑 주변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실상사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마치 사진을 찍듯이 눈으로 가슴으로 팍 팍 찍었습니다. 지금 오후 6시 20분이니 공양시간이군요. 이제 조금 지나면 저녁 예불과 기도시간입니다. 예불소리와 도법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이제라도 또다시 달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천일기도를 하고 계시는 도법스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하면서 기도가 잘 마무리되길 기원합니다. 또한 천일기도 뿐아니라 귀농학교, 우리쌀 지키기, 대안교육, 환경·생명 보호, 북한어린이 돕기 등 하시는 일들이 잘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오는 11월 12일이 천일기도 회향날입니다. 종교를 떠나 한번쯤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면서 평화와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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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 실상사 주지스님인 도법스님은 작은 체구에 늘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계신 분입니다.

몇 년 전 소위 '조계종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양측이 모두 도법스님을 중재자로 인정할 정도로 불교계의 신망이 두터운 분이라고 합니다. 물론 스님께서는 사태를 잘 중재하신 후 총무원에 남아 '한 자리' 차지한 게 아니라 곧장 실상사로 돌아오셨지요.

최근 새만금 매립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를 하신 수경스님은 도법스님의 도반으로서 함께 실상사에 계십니다. 혹시 지역 편가르기로 비쳐질까 염려스러운데, 도법스님이 제주인(한림 명월)이라는 사실이 몹시 자랑스러웠다는 게 어쩔 수 없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위 사진들은 실상사 홈페이지(www.silsang.net)와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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