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특히 청년 실업 문제로 많은 나라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눈앞에 다가온 제4차 산업혁명이 사정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까 걱정들을 한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Fordism)이 각각 제1차 및 제2차 산업혁명이었다면 컴퓨터 및 인터넷의 보급은 제3차, 로봇 및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제4차 산업혁명이다. 과연 이러한 일련의 산업혁명들이 일자리를 빼앗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자동차의 발명이 초래했던 일자리의 변동을 되돌아 볼 만하다. 산업혁명의 첫 무대였던 영국에서 자동차의 등장은 마차와 마부에게 어마어마한 위협이었다.

이들은 의회를 움직여 자동차가 마차보다 빠르게 달리면 안되는 규정을 통과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그 보급을 막아보려 애썼다. 이 때문에 자동차의 상용화는 영국보다 독일에서 먼저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동차 산업은 전 후방 연계효과가 큰 산업으로서 마차와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가 새로 창출되었던 것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한 두 사람의 발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세돌과 커제를 이긴 알파고를 제작한 딥 마인드 회사에는 400명이 일하고 있다. 이 숫자는 전후방 연관산업의 일자리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의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고 일자리의 형태를 바꿀 뿐이다.

19세기 초 인도와 영국의 직물산업 발달도 비슷한 사례다. 숙련공에 의한 수공업 제품은 한정된 수량을 부유층 소비자에 공급해왔으나 직물산업 혁명으로 비숙련 노동자들에게도 일자리가 생겼고 낮은 가격의 제품이 출하되어 소비의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UC 버클리 대학의 브래드포드 들롱 교수의 표현(4월 3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대로 기술 발달은 노동을 축출하지 않고 지원했다.

기술발달은 일자리를 빼앗지 않았다

일자리의 감소 탓을 기계로 인한 노동의 대체 때문으로 미루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 일자리의 감소, 특히 양질의 일자리 감소는 그 원인을 기계와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엉뚱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보행자 횡단보도의 예를 보자. 사람이 서 있으면 자동차는 반드시 정차한다. 이것은 사람이 차보다 우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보행자가 그곳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에도 사람이 타고 있다.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는 차량은 자칫 보행자에게 큰 위해가 될 수 있으므로 자동차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도로를 이용하는 순서로 본다면 누구던 먼저 그곳에 도착해 기다리는 측에게 우선권이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시야를 돌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을 보면 근로계약도 당사자 간의 하나의 계약인데 사용자에게는 해고 부자유의 원칙을 근로자에게는 이직 자유의 원칙을 적용한다. 유연성의 상실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태는 비정상의 도를 넘는다. 사용주는 정규직 전환기한 2년 규정을 피하기 위해 쪼개기 계약을 한다. 한두달 퇴직하게 한 후 재채용하는 방식이다. 정규직 전환시 4대 보험료 및 퇴직금 부담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해고의 부자유 때문이다.

심지어는 전체 교사의 10%를 차지하는 교육자들이 기간제 교사로 차별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 교사와 다름없이 담임 선생 등 일을 맡아 하면서도 3월부터 여름방학이 끝나는 8월 말까지 임용했다가 2학기가 시작될 때 다시 계약하는 쪼개기 고용에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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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김군을 추모하는 추모쪽지와 국화꽃이 놓여있다. 출처=오마이뉴스( goo.gl/RRQ0Pk ).

비정상의 도를 넘는 쪼개기 계약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주 거론되는 외주(아웃소싱)는 그 자체로는 비정상이 아니다. 애플이나 나이키가 디자인 및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제품의 생산은 거의 전량을 외주에 의존하는 것이라던가 BMW 공장의 경우에 하도급 업체에서 파견된 근로자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것은 회사의 집중과 선택의 문제로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주 업무에 속하는 분야임에도 이를 외주 받는다던가 임시직으로 채우는 것은 꼼수다.

새 정부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한 지금은 좋은 기회다. 기술 혁명은 4차혁명으로 종언을 고하고 제5차 산업혁명은 사고의 중심을 자본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것, 자본의 입장에서 사람을 비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장에서 자본을 수단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이를 제일 먼저 마중하는 일은 불가능할까?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5월 30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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