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담 시간여행] (6)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밭담 이야기 

제주밭담이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지정되고 3주년을 맞이했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의 생활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온 제주밭담은, 이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물려줘야하는 소중한 인류의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주밭담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본 연재는 밭담길을 따라 걷다 만난 우리네 삼촌들에 관한 것이다. 밭담과 함께 섬의 살림을 일구어온 한 사람 한 사람의 제주 농민들에게, 미처 보물인줄 몰랐던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역사가 곧 제주밭담의 역사이고, 삼춘들의 살아 온 이야기 속에 우리가 후세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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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밭담 이모저모. 행원리 노인정에 계시던 어르신들. ⓒ정신지
행원리에서는 무슨 농사를 주로 지었나요?
옛날에는 메밀, 보리, 조, 콩, 쪽파, 마늘 등을 많이 심었다. 소와 말이 있을 적에는 말이 밭을 밟아야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농사를 돕는 가축들이 집집마다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밭일과 바닷일을 함께 해왔다. ‘산듸’라 불리는 밭쌀 농사도 조금 했다. 우뜨르(위쪽) 밭에서 주로 산듸와 메밀 농사를 지었고, 아랫마을에서는 보리를 심었다. 고도 별로 흙의 질이 다르기 때문에 심는 작물이 달랐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땅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랫마을에는 ‘질왓’이라 불리는 찰진 흙으로 이루어진 밭이 많다. 그만큼 토양의 질이 좋다. 질왓은 보리와 조를 많이 심었다. 흙이 곱고 무거운 질왓을 사람들은 가장 비옥한 땅으로 본다. ‘질왓’ 다음으로 좋은 밭이 ‘뜬밭’이다. 화산암이 많은 행원리에는 화산토로 이루어진 뜬밭이 많다. 뜬밭에서는 콩을 많이 심었다. 행원리에는 모래밭도 있다. 서북풍의 바람이 불면서 해수욕장이 있는 월정리 쪽에서부터 모래가 올라온다. 김녕리에서 불어오는 모래로 이루어진 밭도 있다. 마을에는 두 개의 모래밭이 있다. 물빠짐이 좋은 모래밭에서는 당근농사 등을 짓는다. 

밭마다 나오는 돌도 달랐다고요?
높이에 따라 땅의 질이 다른 것처럼 제각각의 밭에서는 다양한 돌이 나온다. 마을 어르신들은, ‘너희가 보기에는 다 같아 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다 다른 돌’임을 강조한다. 색이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게도 다르고 구멍의 생김새도 다르다. 뜬밭과 모래밭의 돌은 생김새가 비 슷하지만, 질왓에서 나오는 돌은 ‘뜬돌’이라 불리는 무거운 돌이다. 구멍이 뚫린 모양새도 아랫마을 구멍이 크고 무겁게 생겼지만, 윗마을의 돌은 가볍고 잔 구멍이 많다. 아래 쪽으로 갈수록 돌이 무거워진다. 

밭담은 어떻게 쌓았나요?
가장 밑에 놓는 돌을 ‘굽자리’라 부른다. 굽자리는 오래 전 밭의 주인이었던 조상이 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상들이 밭의 경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가장 밑에는 큰 돌을 두고 그 위에는 작은 돌을 물려가며 쌓았다. 자기 밭의 담은 자기가 쌓는 것이 기본인데, 중간에 무너지면 넘어진 쪽의 담은 그 밭주인이 다시 쌓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쓰러뜨렸는지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농사를 짓다보면, 자기 밭의 흙과 돌의 성질을 자연히 알아가기 때문에, 어른들게 배우기도 하지만 쌓다보면 돌의 물림과 물림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갠노’라는 도구도 있지만 그것은 석공들이 쓰지 밭담을 쌓을 적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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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좌읍 행원리의 밭담 풍경. ⓒ정신지

동쪽마을에서는 장남에게 재산을 주던 풍습이 있다던데...
옛날엔 장남이 다 가졌다. 쪼가리 땅을 장남 외의 형제들이 물려받고는 했지만, 그 마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장남이 특별한 존재라서 그렇게 차별을 한 것이 아니라, 나눠 줄 만큼의 밭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랬었다. 장남은 땅을 물려받는 대신 조상들의 제사도 모셔야했고, 나머지 형제들의 살림도 도우며 살았다. 그래도 행원리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물질을 해서 부모님을 모셨기 때문에, '석 딸 낳으면 부자'라 하기도 했다. 게다가 4.3사건을 겪으며 많은 이들의 부모님이 희생을 당했다. 부모가 있어야 물려줄 땅이 있는 것인데 4.3사건으로 많은 부모가 세상을 먼저 떠났다. 

행원리 밭담의 특징이 있다면? 
화산토와 모래가 많아서 행원리의 밭은 주로 암소가 갈았다. 서쪽은 자갈밭이 많아 힘 좋은 수소가 밭을 간다고 들었는데, 제주 동부에서는 암소가 새끼도 낳고 일도 했다. ‘꼭 우리 마을 어멍들 같이’ 암소들이 열심히 일을 했다 회상한다. 마을의 밭담은 첫째로 바람을 막기 위해 쌓였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밭과 밭의 경계를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을 막는 일이다. 바람이 워낙 센 마을이라 태풍이 불면 바닷물이 3 킬로미터 정도 뭍으로 올라온다. 어른들은 장난으로 ‘바닷물 올라가면 한라산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농사에 가장 치명적인 것이 해수이기 때문에 밭담이 없으면 농사가 불가능하다. 

밭담을 지키기 전에 농민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는 메시지

"밭담이 귀하다고 여겨진다면 그 밭 안에 있는 작물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제주에는 외래종 까치가 너무나 많다. 농작물을 전부 파헤쳐버리는 까치 때문에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섬 전체가 지금 소나무 재선충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기온이 따뜻해져 생긴 벌레 때문이다. 하지만 까치는 인위적으로 사람이 가져다 놓은 것이니 사람이 책임을 져야한다. 까마귀 보다 훨 머리가 좋은 까치는 퇴치도 힘들다. 노루나 꿩만 뛰놀던 시절에는 피해가 가도 그저 동물과 사람이 먹이를 나눠먹는 셈 쳤지만, 까치는 정말 큰 문제다. 

밭담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농민의 일상에 더 많은 관심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예전 행원리에서는 워낙 돌이 많아 땅이 천 평이면 그 중에 이백 평만 농사를 지어도 성공이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땅을 파다가 암반이 나오면 그걸 다 깨부수는데 정부에서 보조금을 준다. 그렇게 돌을 캐서 개간을 하며 지금의 밭을 만든 거다. 하지만 너무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다. 옛 어르신들처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연과 더불어 살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농민들의 삶을 지키고 함께 가야한다. 밭담만 지켜서는 절대 제주도가 살아날 수 없다. 힘들어도 함께 전처럼 도우면서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신지 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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