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9) 세계 주요도시 '문화 투자 확대' 고민...제주는?

문화도시, 문화예술도시, 복합문화도시, 문화관광도시, 창조도시, 역사문화도시, 창의문화도시. 문화지구, 문화예술창작지구, 예술 특구... 도시에 창의적 색채를 입히려는 노력이 다양한 명칭을 만들어낸다. 마치 지역간, 도시간 경쟁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위와 같은 이름을 붙이고 차별화를 외치며 온갖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어디에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을 만한 문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문화와 창의적 예술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야심은 제주부터 포항까지, 미국 뉴욕에서 영국의 게이츠헤드까지 넘쳐난다. 축제가 만들어지고, 문화공간이 건축되고, 동네가 정비되고 예술가를 위한 구역이 마련된다. 심지어 관광객이라고는 거의 없던 동네에 사람들이 늘면서 새로운 관광콘텐츠로서 부각되고 경제가 살아나기도 한다. 분명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오게 하는 촉매재로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오늘날 세계 관광의 대세는 문화관광이며 전체 관광의 37%로 에코 투어, 건강 투어, 요리, 스포츠 등에 비해서도 우위를 차지한다고 하니 제주가 ‘문화예술의 섬’을 표방하는 것은 문화관광 확대의 측면에서라도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뉴욕현대미술관의 관람객들. 문화도시 뉴욕의 핵심 시설중 하나이다..JPG
▲ 뉴욕현대미술관의 관람객들. 문화도시 뉴욕의 핵심 시설중 하나이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문화에 투자하는 것이 곧 경제의 장을 확장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모든 도시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유럽처럼 도시 자체가 역사와 문화의 축적물인 곳부터 LA처럼 매우 현대적인 도시는 인프라와 규모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규모와 정치적 환경,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책임분담에 따라 투자가 달라지고, 문화적 지향점도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도시 경쟁력을 문화와 예술, 창의적 인력 풀의 확대에서 찾고자 각종 프로그램이 가동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의 도시들은 누구의 돈으로 문화를 만들고 있을까? 지난 5월 흥미로운 보고서가 나와서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도시문화포럼(World Cities Culture Forum)’이 회원국을 상대로 2014-16년 자료를 수집해 진행한 조사로 세계 16개 도시(암스텔담, 런던, 뉴욕, 파리, LA부터 서울, 도쿄, 상하이 등 아시아의 도시 포함)의 문화에 대한 투자규모, 공적 투자와 민간 후원 등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보고서라고 하니 주요 시사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서울의 경우 서울문화재단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존하는 등 각 도시의 협력기관의 정보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는 있다.)

먼저 파리, 모스크바, 런던은 매년 10억 달러(1조원 이상)의 공적 자금을 문화에 쓰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문화 인프라, 역사적 유물 등을 고려하면 가히 세계적인 도시에 어울리는 엄청난 예산이 정부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상하이는 위의 세 도시보다 작지만 세계적인 문화도시로서 손색이 없는데 놀랍게도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도 도시 자체 내에서 문화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에서도 상업과 금융, 신(新)산업이 발달한 곳이어서 인지 도시 차원의 공적, 민간 후원으로 문화를 일구고 있다고 하겠다. 대신에 브뤼셀, 런던, 암스텔담, 토론토 등은 국가에서 받는 예산이 전체 예산의 50%를 넘는다. 서울은 45%를 국가에서 받고 있다.

대부분 문화에 투자되는 공적 자금의 60% 이상이 도시와 지방정부에서 직접 나온다고 한다. 이스탄불, 선전, 모스크바, LA 등이 그 사례로 도시를 운영하는 주체가 문화도시에 대한 책임과 방향도 맡아야 한다는 상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모스크바는 71%, 이스탄불은 78%가 도시와 지방정부에서 나온다.

이 조사에는 중국의 선전, 상하이가 참여했는데 다른 나라의 도시보다도 상업 문화, 새로운 문화, 그리고 창의산업에 대한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여년간 중국의 놀라운 도약을 반영하듯,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현대적인 취향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문화에 투자하고 있는 듯하다.

상하이 PSA 로비. 2012년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현대미술관이다..JPG
▲ 상하이 PSA 로비. 2012년 발전소를 리모델링한 현대미술관이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문화에 대한 민간의 투자와 후원이 강하다. 뉴욕은 전체 문화투자의 70%가 민간 후원에서 나온다. 샌프란시스코는 61%, LA도 45%에 달한다. 일본의 도쿄도 민간 후원이 45%를 차지하는데 서울은 15%라고 한다. 16개 도시 평균 민간후원은 20%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문화는 공적 자금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하겠다. 놀라운 것은 파리 4%, 시드니 9%로 서울보다 낮다. 민간 후원은 도시마다 편차가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보고서의 의의는 문화에 대한 지원방식에 정석이 없다는 것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공적 자금이 전체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뉴욕처럼 민간후원이 70%가 넘는 곳도 있다. 공적 지원은 평균적으로 국가 38%, 도시 36%, 지역 25% 정도의 비율로 투자되고 있다고 한다. 민간 후원도 개인이 후원하는 것과 기업이 후원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미국과 영국은 개인 후원이 대부분이며, 아시아의 도시는 기업후원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마다 가진 공통의 고민은 문화에 대한 투자와 후원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세금혜택과 인센티브와 같은 간접적인 공적 지원이 점점 중요해 지고 있으며, 크라우드펀딩, 매칭펀딩 등의 새로운 방식도 등장하고 있으나 아직 규모가 작아서 그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각 도시별로 문화에 대한 투자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제주는 어떤 확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가?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사진-2.jpg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