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당시 경찰 신분으로 제주 표선 가시리 주민들 살린 강계봉 옹 일화 유명… 30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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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의인 강계봉 옹(95)이 30일 별세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의 마지막 의인(義人) 강계봉 옹이 30일 낮 12시 10분께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故) 강계봉 옹은 4.3당시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한창이던 때, 당시 표선국민학교(표선초등학교)에 집단 수용된 표선 가시리 주민들을 많이 살렸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잇따랐던 4.3의인이다. 당시 공포에 질려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주민들을 애꿎은 희생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의인이다.  

그는 1948년 11월 22일 토벌대가 '양민들은 해변 마을인 표선리로 소개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표선초등학교에 소개된 가시리 중산간 주민들을 토벌대가 차례로 집단 학살하고, '폭도'로 지목받던 중산간 주민들을 '파리 목숨' 취급하던 것과 달리, 집단수용된 주민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대하고 적지않은 사람들을 살려내 4.3이후 까지 주민들의 존경을 받던 당시로선 드문 경찰이었다. 

4.3이후 표선면의 많은 주민들은 "당시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던 경찰이 '폭도'로 지목받던 중산간 마을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목숨을 살려준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런 분이 바로 강계봉 순경이었다"며 잇단 증언이 나왔다.  

현재 제주4·3평화기념관에도 김익렬 장군과 함께 문형순 경찰서장, 김성홍 몰라구장, 서청단원 고희준씨, 강계봉 순경, 장성순 경사와 외도지서 '방(方)'경사 등 일곱 명이 4.3당시 무고한 양민 학살을 막은 의인으로 ‘의로운 사람들(righteous people)’ 전시관에 전시돼 있기도 하다. 강계봉 옹은 최근까지 생존해 있던 '마지막 의인'인 셈이다. 

강 옹은 남원읍 위미리 출신으로 어렸을 때 도일했다가 해방 후 고향 제주로 들어와, 4.3발발 직후인 1948년 6월 경찰에 투신했다.

강 옹은 1950년대 후반, 구좌파출소장을 끝으로 9년여의 길지 않은 경찰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고향 위미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위미리장과 노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4.3당시 경찰 신분이던 강 옹의 행적은 잔인하고 참혹했던 그당시 상황과 대비될 뿐 아니라,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한 양민학살이 만연하던 것과 달리, 주민들을 '죄인'이 아닌 '인간'으로 대해주면서 '진흙 속의 연꽃'으로 회자돼 왔다. 

강 옹은 슬하에 4남3녀(4남 강성호,성익, 성민, 성덕, 3녀 애자, 애순, 애숙)를 두었다. 

일포는 8월1일(월)로 장례식장은 위미의례회관이다. 발인은 8월2일(화) 오전 7시 서귀포의료원. 장지는 위미리 가족묘지. 유족대표 연락처(강성덕 씨) 010-2811-384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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