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6) 오사카 킨텐츠 백화점의 ‘연활’ 프로젝트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최근 화두인 새로운 지역 활성화 방식은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고 각종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행정당국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수많은 지역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제주의소리>가 최근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제주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했다. 장기 연속기획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도시재생 성패 사례들을 현장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 오사카에 위치한 300m 짜리 초고층 건물 아베노 하루카스. 이 건물 지하 2층~지상 14층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킨테츠 백화점 매장이 있다. ⓒ 제주의소리

오사카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높이 300m의 초고층 건물 아베노 하루카스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꼽힌다. 전체 60층 중 지하 2층부터 14층까지는 일본 최대 규모의 킨테츠 백화점이 자리한다. 규모만 10만 제곱미터가 넘는다.

킨테츠 백화점을 거닐다 보면 ‘마치 스테이션(March Station)’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공유공간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이 백화점이 사회공헌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전적으로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연결·관계를 활성화 한다는 뜻을 담은 엔카츠(緣活)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킨텐츠 백화점 소속으로 현재 엔카츠 사무국에서 일하는 세이지로 사노 씨는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는 프로젝트 배경을 설명한다.

“백화점을 만들 때 물건 뿐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류의 장을 마련하려 한 겁니다. 상품과 함께 사람, 이벤트를 만날 수 있는 거리같은 장소를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시민활동단체와 봉사단체 등 여러 사람들과 백화점이 하나게 돼서 지역사회를 더 좋게 만들려는 활동을 이어주려 합니다.

‘활기’를 백화점과 지역 전체에 퍼져나가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대형 백화점들은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 이벤트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돈을 쓰고 연예인을 초청하는 건 일회성입니다. 어떤 활동이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이어졌으면 했다. 참가자들의 의욕과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 킨테츠 백화점 내에 위치한 공유공간 '마치 스테이션'. ⓒ 제주의소리

▲ 마치 스테이션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지역단체들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 enkatsu

체험, 전시, 공연, 상담,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공공성 있는 단체가 ‘마치 스테이션’을 사용하고 싶다고 신청하면 저렴한 임대료로 공간을 대여해준다. 다만, 사무국 직원들이 직접 신청자들을 만나 엔카츠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협력의 정신을 소중히 하자는 차원이다. 비영리 단체여야 하며 수익이 목적인 기관·단체는 제외된다.

자신들의 활동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단체들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만하다. 많은 방문자들로 붐비는 초대형 백화점의 목 좋은 자리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렇게 현재 등록된 지역 단체만 270곳이다.

건강단체가 운영하는 뇌 활성화 체조, 시니어 라이프 지원 협회의 심리·성격 검사, 당뇨병 개선 식생활 프로젝트,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상상력 워크숍, 손 마사지 트리트먼트, 웃음 요가, 유엔 난민 지원 캠페인, 입양단체 활동 소개, 그림 교실 등 이 공유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 마치 스테이션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지역단체들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 enkatsu

지역주민들의 활동과 백화점을 이어주고 있는 것은 시민 자원봉사팀 CSR이다. Concierge(안내인), Supporter(지지자), Reporter(통신원)로서 활동한다. 젊은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 100여명으로 구성돼있는데 이들은 백화점 측과 지역단체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이래저래, 이 백화점을 통해 지역에는 다양한 연결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세이지로 씨는 기업들도 이제는 커뮤니티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화점의 일반적인 관계에는 상인과 소비자들이 존재합니다. 엔카츠는 이를 넘어 자원봉사자, 지역주민들, 시민단체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커뮤니티라는 게 앞으로 일본에서 정말 중요시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게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엔카츠는 하나의 숲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과 지역 상생?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

▲ 오사카에 위치한 300m 짜리 초고층 건물 아베노 하루카스. 이 건물 지하 2층~지상 14층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킨테츠 백화점 매장이 있다. ⓒ 제주의소리

킨텐츠 백화점의 엔카츠 프로젝트는 대기업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 지 보여준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엔카츠 프로젝트를 통해 백화점은 많은 수의 잠재고객을 확보하게 됐다. 270개의 단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만 수천명이다. 소비자들을 매장 안 까지 들어오게 하는 게 난제인 백화점 입장에서는 이 문턱을 비교적 쉽게 넘어서게 됐다.

킨테츠 백화점 소속인 세이지로 사노 씨는 “매출과의 직접적인 관계성은 모르겠다”고 답하면서도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에 사람이 오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백화점 매출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동행했던 커뮤니티 디자인 회사 Studio-L의 사야카 히라노 씨도 “다양한 활동을 백화점에서 진행하게 되면 그 공연과 행사를 주최한 이들이 지인들이 오게되고 자연스럽게 쇼핑하게 되지 않겠냐”면서 “조금은 영향이 있을 듯 하다”고 귀띔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