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연구소는 지난 7월말 6박 7일 일정으로 몽골 북부 홉스굴 호로 향했다. 너비 36.5km, 길이 136km, 면적 2,760km²에 이르는 이 거대한 호수는 몽골에서는 샤먼의 성지로 불린다. 주민들은 이 호수를 어머니의 바다로 섬기며 살아간다. 이 곳에 얽힌 신화들은 몽골인들의 정체성과도 밀접하다.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의 생생한 홉스굴 호 방문기를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문무병의 몽골신화기행] (2) 지옥의 열여섯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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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강노루 가는 길 목장에서 본 몽골의 서낭당 ‘오보’.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1. 차강노루 가는 길

몽골 초원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어둠으로 포장해 버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길 없는 길, 광활한 몽골의 초원은 돌밭이었고, 굴헝이었고, 도랑이었고 결국은 몽골의 베테랑 운전수만이 건너갈 수 있는 지옥보다 험한 몽골의 길 없는 초원. 차강노루 가는 길은 그랬다.

몽골의 초원을 잊을 수 없게 하는 길, 한 번은 지나야 하는 이승과 저승이 갈리는 하얀 호수, ‘차강노루’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있다는 미여지벵뒤였으며, 자청비가 문도령과 목욕하던 호수의 물을 뜨러 하늘의 신소미들이 내려왔던 연화못이었다.

언제 어느 곳을 모르는데 반쯤은 돌아버린 내가, 꿈속을 헤매며 찾아가는 하얀 호수, 차강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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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차 푸르공.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2. 몽골의 천마(天馬) 프루공을 타고

열여섯 시간을 정신없이 달린 몽골의 차는 ‘프루공’. 2년 전 바이칼 알혼섬을 달리던 바이칼의 우아직처럼 어김없이 천마처럼 날고, 전차처럼 달리던 아, 길고 긴 지옥행 열여섯 시간이여. 

지옥 열여섯 시간의 고행을 가능하게 했던 과거의 시간, 고대 만 년 전의 원시를 질주하는 천마, 전차에 가까운 힘을 가졌다는 프루공보다 좀 큰, 15인승 개조형 승합차. 몽골의 프루공이나 바이칼의 우아직, 10인승 미니벤 보다 큰 몽골의 하늘 마차.

여러 명이 같이 탈 수 있어 좋았고, 따로 짐을 실은 한 대의 프루공을 거느리고 가던덜컹거림도, 돌밭을 뛰며 온몸을 뒤틀어 놓던 배포도몽골의 말, 하늘 길을 달리는 천마라 할 만한 러시아의 군용차로 만들어졌다는 프루공을 개조한, 구조가 단순해 잔고장이 적고, 정비가 쉬운 몽골 운전사만이 몰 수 있는 신화속의 천마,

자동차가 아니라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괴물, 차도 괴물스럽지만 운전수들도 몽골스러운 최고의 파트너가 가자는대로 개울이건 돌밭이건 수렁이건 거침없이 달리던 몽골형 우아직도 바이칼식 프루공을 모두 능가하는 15인승 천마를 타고 열여섯 시간의 지옥을 달려 우리가 도착할 ‘차강노루’는 제주사람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있다는 황량한 벌판 ‘미여지벵뒤’일까, 

하늘의 천사 같은 몽골의 소녀들이 이승에서 우리를 맞아줄 따뜻한 게르일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둠 속을 달려, 몽골의 하늘 마차에 저녁이 있는 삶을 싣고, 꿈의 마을, 차강노루를 찾아 기약 없는 하늘 길을 끝없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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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을 달리는 ‘프루공’ 보다 큰 우리의 천마, 20인승 미니버스.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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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시골 소녀와 함께.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3. 차강노루 게르에서 만난 몽골의 소녀

전날 오전 10시에 홉스굴에서 탄 프루공 보다는 큰 15인승 미니버스는 몽골의 베테랑 운전수가 인도하는 하늘 길을 날아 새벽 2시에 우리를 차강노루 게르에 데려다 주었다. 이는 열여섯 시간의 고행 끝에 얻은 더 이상 무너질 데 없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어둠을 저주하던 목소리가 외쳤다. “이젠 살아싱게. 차강노루에 도착했댄.” ‘차강’은 ‘하얀’, ‘노루’는 ‘호수’니 여긴 ‘하얀 호수’, 천국이엔.

밤을 쓸어 가는 아름다운 호수가 우리 앞에 있었다. 배고픈 여행자 위한 몽골 이승의 양고기도 나왔다. 몽골의 소녀들이 게르에 불을 피우고 ‘하얀 호수’를 깨우는 여명 속에서 새로운 세상, 몽골의 시골 게르를 뜬 눈으로 경험했다.    

차강노루는 제주의 자청비 신화에서 하늘의 선녀들이 물을 뜨러 내려오는 연화못 처럼 아침을 가져오는 정말 아름다운 호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늘 꽃밭에 물을 주는 신소미(仙女)들, 몽골의 전통옷을 차려 입은 소녀가 나와 우리들의 전도에 몽골의 술 마유주를 뿌리며 좋은 여행이 되라며 환영하고 보내는 아름다운 몽골의 송별제를 지냈고, 차강노루 ‘하얀호수’를 떠났다.

호수를 떠나니, 한라산과 같은 분화구도 있었고, 몽골의 성황당 돌무더기도 있었고,고기를 낚을 수 있는 호수도 있었다. 차강노루는 몽골사람들이 사는 이승의 전통마을이었다. 차강노루, ‘하얀호수’를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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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유주(馬乳酒)를 뿌려주는 몽골의 시골 소녀.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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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강노루(하얀 호수).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4. 초원의 바람과 무지개

생각해 본다. 지난 밤, 어둠이 물들기 전에 잠시 잠깐 내가 보았던 몽골다운 풍경들, 궂은 날씨에도 바람이 불었고, 비갠 하늘에서 쌍무지개 보았던 어제의 초원도 아름다웠다며 오늘도 다시 보는 몽골의 여름은 산뜻하게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낮 기온이 38도를 오르내리는데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행복이었다. 초원 어디서나 바람이 불고 습기가 없는데다가 바람까지 불어오니 그저 볕은 따가운 정도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해지는 몽골의 여름. 창문 하나 없는 게르에서도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여름에 부는 몽골의 산들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몽골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초원의 숨결이다.

몽골의 바람을 폐부 깊숙이 받아들이는 여행자라면, 그 속살 깊숙이 깃들어 있는 온갖 허브들의 향내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비단의 촉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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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5. 길에서 만난 몽골 마을 ‘솜’

몽골 초원의 길 없는 길, 몽골 초원을 달리는 길은 바람이 남긴 지도일 뿐,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대 발길이 닿는 곳이 길이다. 망망한 초원은 아무렇게나 가면 길이 된다. 그러나 여행하는 차들은 앞서 간 차들이 남긴 바퀴 자국을 따라 달린다.

온통 풀로 덮인 초원에도 차들이 오가며 밟은 자리에는 흰 넥타이처럼 곧게 이어진 길이 남게 된다. 초록 도화지에 흰 크레용으로 한 줄 그으면 그것이 몽골의 길이다. 유감스럽게도 몽골여행의 일정은 대부분 자동차로 움직인다.

길을 걸을 여유가 없다. 길은 여행자를 홀린다. 해가 기울면 초원은 숯불처럼 붉은 노을로 물든다. 시시각각 오묘한 빛깔로 바뀌어가는 저녁노을은 여행자의 넋을 종종 빼앗는다. 초원의 일몰은 매혹적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쯤 가면 다음에 묵을 게르에 도착할까. 해 저문 초원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은 새벽 두 시, 그야말로 칠흑 같은 밤이었다. 낮에도 가늠하기 어려운 평원의 길 없는 길은 나무 한 그루, 비스듬한 언덕조차 없는 밤이 오니, 어디가 어디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가물거리던 게르의 불빛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길에는 쓰다 버린 정거장 같은 몽골의 읍내 마을 솜(Sum)이 있었다. 은하철도로 떠나는 정거장처럼 낯선 몽골의 마을 솜은 막막한 벌판을 달리는데 불쑥 그렇게  ‘느닷없이’ 나타났다.

어째서 넓고 넓은 땅에 하필이면 그곳에 집들이 모여 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어 낯설기만 한 몽골의 마을 솜은 저만치에 있었다. 솜은 아이막에 속하는 마을 조직이라 했다. 아이막은 우리의 도(道)에 해당하니까, 솜은 군, 그 밑의 바이크가 면에 해당한다. 실제로 그 규모로는 솜은 우리의 ‘면’이나 ‘읍’ 단위와 비슷한데 현재 몽골에는 21개의 아이막과 348개의 솜이 있다.

막막한 벌판을 달리다가 불쑥 마을이 솜을 지나치며 암흑의 공간을 달리다가 잠시 들른 우주정거장 몽골의 마을, 솜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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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쳉헤르에서 몽골의 조랑말 ‘멀’을 타다.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6. 쳉헤르 온천 게르에서 몽골의 조랑말을 타다

작지만 강한 몽골의 말 몽골어로 말(馬)를 ‘멀’이라 했다. 말 위에서 태어나, 말 등에 실려 눈을 감는 게 몽골인의 일생이라 했다. 말은 몽골 사람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 넓은 초원을 말이 없으면 어떻게 이동했으며, 이리저리 달아나는 양들을 어떻게 몰고 다녔으며, 한 해에도 너덧 번씩 꾸리는 이삿짐은 어떻게 실어 날랐겠는가.

몽골의 전설에 말은 원래 하늘에 살았다. 밤마다 말들은 하늘에서 나무를 타고 지상으로 놀러왔다. 어느 신령한 승려의 말에 따라 큰 나무에 올무를 놓아 말들을 붙잡았다. 그 말들을 길들여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북방의 천손설화에는 말들이 대개 날개를 단 천마로 등장한다. 바람을 일으키며 초원을 달리는 말이 하늘의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다.

몽골 말을 탈 때는 왼편으로 타야 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훈련을 시켜서 오른편으로 다가가면 말이 놀라서 발길질을 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반드시 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말 주인이 죽는다고 믿었다. 몽골 사람들은 변소에 갈 때, 말을 보러 간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볼일 보러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몽골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세심하게 돌본다는 뜻이다. 여자들이 변소를 갈 때는 ‘꽃 따러 간다’고 한다.

처음 말을 타는 사람들은 마부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기분에 들떠 혼자서 달리다가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체중에 따라 골라주는 말을 타야하며, 가파른 산길을 트레킹 할 때도 흰말, 검은말, 얼룩말 따지며 우기지 말아야 한다. 말들 사이에는 서열이 있고, 친소관계가 분명해 그 성향을 잘 아는 마부가 골라주는 말을 군말 없이 타야 한다.

말은 영리하여 자신이 태운 사람의 수준을 귀신같이 눈치 챈다. 자신이 태운 사람이 초보의 관광객이라면 힘들여 달릴 생각을 않고 풀만 뜯어 먹는다. 말은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동물이다. 말은 조그만 소리나 빛깔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말을 탈 때에는 번쩍거리는 장신구나,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자와 머플러를 해서는 안 된다. 말이 놀라서 사람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말을 타고서 카메라를 찍거나, 휴대용 오디오를 들어서도 안 된다. 셔터 소리나 음악 소리에 말이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몽고식으로 ‘멀’을 공부하고 말을 사랑했으며, 헹헤르 온천 승마장에 오후 늦게 도착했던 우리들은 우선 1시간 반 승마 트래킹을 했고, 게르에서 몽골식 저녁을 먹었고, 이곳의 온천에서 저녁 이후에는 온천욕을 했다.

몽골에서의 온천욕이라니? 그것도 별하늘을 보며 하는 노천욕이라니! 온천의 도시 일본 홋카이도에서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서도 진짜 하늘이 보이는 목욕탕에서 40도가 넘는 뜨거운 온천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보는 온천욕은 못해 봤는데, 몽골 쳉헤르에서, 돈도 시간도 따지지 않고 했던 무한 리필의 온천욕은 몽골 여행의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숲이 우거진 언덕들 사이에 자리한 헹헤르 온천 게르에서, 뜨거운 온천물에 서로 함께 수용복을 입고 노천욕을 하며 하늘의 별을 보고, 술잔을 기울이던 우리들은 이 날도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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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성황당 '오보'.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7. 몽골의 성황당(城隍堂) 오보

제주의 신당(本鄕堂)을 몽골에서는 오보(ovoo)라 했다. 벌판에 끝없이 달리다 만나는 한 무더기 쌓인 돌무더기, 제주의 마을 당올레를 지나다 만나는 당나무와는 다른 광활한 초원의 동산 위에서나 마을은 보이지 않는 초원에 쓸쓸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다녔던 유일한 흔적, 만나기만 해도 반갑기 그지없는 이정표, 몽골의 성황당, 제주의 신당 오보.

그걸 쌓은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누군가 이 길을 앞서 지나갔으리라는 생각에 반갑다. 높은 산마루에다 망망한 평원의 언덕이나, 그냥 벌판 위에 소복이 쌓인 돌무더기는 그야말로 지나가는 바람이 일러주는 이정표라 하겠다. 몽골의 오보는 제주 신당보다도 원초적인 형태인 것 같았다.

오위의 사방 천리 눈 닿는 곳마다 허허벌판인 평원에서 당올레를 낀 제주 마을의 신당과는 달리 오위는 막막한 초원길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고,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이정표 노릇을 한다. 돌멩이가 귀한 평원에서 하나, 둘, 던진 돌무더기가 쌓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위의 기원은 북방 유목민들의 적석묘에서 비롯됐는데 시신을 돌무더기로 눌러 놓았던 장례의식이 오위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

몽골 사람들의 장례의식은 원래 매장을 하다가 티벳 불교가 전해지면서 풍장이 널리 퍼지게 됐는데 사람이 죽으면 말이나 소달구지에 시신을 싣고 가다가 떨어진 지점에 놓아두고, 버려진 시신은 짐승들이 말끔히 뜯어먹을수록 복된 일로 여겼다.

오위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신성한 산의 꼭대기에 세워지는 알탕 오위는 하늘과 땅을 구분 짓는 경계의 표시이며, 신성한 구역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초원의 한가운데 놓여 이정표 노릇을 하거나, 물이 솟아나는 샘을 알리거나, 솜과 솜의 경계를 표시,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기념하거나, 유명한 관광지 등을 알리는 다양한 오위가 있다.

몽골의 오위에는 만국기나 오방색의 천을 매단 티벳의 타르초나 룽다와 달리, 주로 하닥이라는 푸른색의 천을 매달고 있다. 버드나무에 하닥을 매는 의식을 ‘잘마’라고 하는데 이는 몽골의 샤머니즘과 관련된 의식이다. 오위에는 돌멩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들었던 말의 머리뼈,
다리를 다친 이가 신세를 졌던 목발들이 놓여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하고, 술병이나 돈도 바친다. 

지켜보는 이가 없지만 거기 놓인 지폐를 집어가는 이는 없다. 오위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몽골의 전설에 따르자면 목동과 관련돼 있다.

“부잣집 양들을 지키던 목동이 깜박 잠이 든 사이에 늑대가 양들을 잡아먹었다. 잠에서 깨어난 목동은 자책감에 스스로 목을 매었다. 목동은 죽어 양들을 지키는 정령이 되었고, 목동이 죽은 자리에 돌을 쌓고 버드나무를 꽂은 것이 오위의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버드나무는 물이 귀한 몽골에 물을 찾아주는 나무이며, 하늘의 신이 강림하는 신목으로 여겨져 몽골에서는 ‘몽골 나무’라고 부른다. 오위는 단순한 돌무더기로 보이지만, 사실 그걸 제대로 쌓으려면 몇 가지 지켜야 할 격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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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우선 중심을 파고, 그곳에 보온병이나 9가지 귀금속과 오곡 종자를 묻은 뒤 흙을 덮고 그 위에 돌을 쌓는다. 오위 부근에서는 제사 지내는 성산(聖山)과 마찬가지로 그곳의 지명을 말하지 않는 금기가 있다. 오위를 보면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돈다.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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