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33) 싱싱한 보리밭에 들었던 소하고 계집 방에 들었던 사내놈은 늘 솔깃해 한다

* 섭보리 : ‘잎 싱싱한 보리 또는 청보리’의 제주방언. 퍼렇게 한창 자라는 보리
* 왓드 : ‘밭에’의 제주방언
* 쉐광 : ‘소와’ ‘소하고’의 제주방언
* 지집 : ‘계집’의 제주방언
* 가나민 : ‘간 적 있으면’의 제주방언. 가본 적이 있으면
* 주우릇헌다 : ‘솔깃해한다’의 제주방언. (그쪽으로) 망음이나 정신이 쏠린다는 뜻

몸에 밴 행동을 버릇 또는 습관이라고 한다. 몇 번 되풀이하면서 익어 버린 행동이다. 습관으로 몸에 배어 버리면 고치기가 힘들다. 그래서 습관을 ‘제2의 천성’이라 하는 것이다.

오래된 소싯적 일이다. 

동네에 육지에서 내려와 살던 가족이 있었다. 마을 소임이던 그 집 어른을 사람들은 ‘풍헌(風憲)’이라 불렀다. (옛날 면이나 리(里)의 일을 맡아보던 향소(鄕所)의 한 소임인 걸 안 것은 장성한 뒤다.)

그 집엔 아들이 3형제였는데, 큰아들이 지적장애인(당시는 정신병자라 했다)으로 중증이었다. 둘째는 일 년 선배였는데 잘 생긴데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에도 탁월해, 운동회 때면 청백 계주 마지막 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막내가 나하고 동창이라 그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제일 겁나는 게 그의 큰형이었다. 너절한 좁은 공간에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으면서 사람을 보며 으르렁거려 그 앞을 지나며 기겁을 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제삿날, 파제하고 음복하는데 깜짝 놀랐다. 문 밖에 거지가 와 있지 않은가. 이럴 수가. 옛날 그 잘 생긴 형이었다. 흐린 눈으로 힐끔 쳐다보더니, 아는 둥 마는 둥 내게 손을 내밀며 먹거리를 간절히 구걸한다. 제사퇴물을 건넸더니 두 손으로 낚아채 삽시에 먹어 치우더니 돌아서는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쓸쓸했다. 정신질환도 유전한다는 말을 그때 들었다. 땟국이 흐르는 옷, 가족들은 육지로 옮겨갔다는데 혼자 남은 그는 거지 중에 상거지가 돼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한번 촘지를 먹어난 고냉이’(한번 참기름 먹어 본 고양이)라 불렀다. 그는 어느 골목 어느 집 하며 제삿날을 꿰찬다는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정신이 나갔는데도 놀라운 일이었다. 찾아다니던 ‘버릇’이 뼛속에 들면 그렇게 되는 모양인가 보다 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다. 그만큼 본성은 고치기 힘들다. 

“오그라진 개꼴랭이 삼 년 대롱에 찔러도 오그라진 냥 싯나” (오그라진 개꼬리 삼 년 대롱에 찔러도 오그라진 양 그대로 있다) 했다. 인성(人性)만이 아니다. 물성(物性) 또한 쉬이 바꾸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돌이마음’이란 말이 있다. 나쁜 데 빠져 있다가 착하고 바른 길로 돌아온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회개한 마음이다. ‘마음잡아’ 개과천선하게 되면 얼마나 좋으랴, 그래서 성경에서도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蕩子)를 환영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마음을 바로 가지거나 새롭게 결심은 하고서도 ‘마음잡아 개장사’하고 헛되이 되는 수가 있다. 방탕하던 사람이 마음을 다잡아 생업을 하게 됐으나, 결국 오래 가지 못해 헛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역시 ‘제 버릇 개 못 주는’ 경우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도 한소리 나온다. “제 버릇 개 주겄소?”

‘섭보리’가 얼마나 파릇파릇 싱싱한 먹잇감인가. 소의 입에 갈 것이 아니었다. 밭담 넘어 들어 그 맛을 한 번 들여 놓으면 참기 어려운 법이다. 같은 이치로 어여쁜 계집에게 은밀히 미쳐 놓으면 도저히 떼질 못하고 계집질에 골몰하게 된다. 심하면 계집 치마폭에 가산을 쓸어 담고 만다. 한번 몸에 밴 버릇은 버리기는커녕 고치거나 덜하는 것도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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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자의 <황금보리밭의 소들>, 순지 5배접, 암채, 227×728cm, 1988. 사진=오마이뉴스.
  
1920년대 근대소설의 천재적 작가 김동인도 평양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호의호식할 뿐 아니라 주색잡기에 혼을 빼앗긴 나머지 가산을 탕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말마다 머나 먼 한양까지 내려와 기생방을 드나들며 돈을 물 쓰 듯했으니, 산처럼 쌓아 둔 돈인들 그냥 있겠는가.

우리 사회,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한데 그 속도가 가장 더딘 곳이 정치 쪽, 그것도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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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야경. 사진=오마이뉴스.

날치기, 공중부양, 전기톱과 해머가 난무하고 심지어 최루탄까지 터지는 곳이 국회 아닌가. 밀고 밀리고 마이크를 빼앗고 탁자를 뒤엎고 멱살잡이에 주먹질….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국회가 대만과 우리 국회란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국회를 바라보면서 무얼 배울 것인가. 개탄스럽다.
  
18대 국회에서 ‘몸싸움 방지법’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졌지만, 그게 제 구실을 하는가. 소수당에 의해 얼마든지 입법·사법·행정 국가 3권을 마비시킬 수 있는 악법, 엉터리 바보들을 법이라 한다. 문제는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먼저 정치인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 의식 개혁 없이 민주주의는 한 껍질도 허물을 벗지 못한다. 딱한 일이 이 일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국회가 또 어떤 험한 활극을 펼칠지 자못 걱정스럽다. 조마조마하기까지 하다. 척박한 토양에 그동안 민주주의를 끌어안고 피 흘려 왔다. 더욱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하에서 민주 시민들이 목숨 걸어 가며 악전고투해 왔지 않나. 고진감래라 했으니, 민주주의가 찬연히 꽃 필 때가 됐을 법도 한데 언제까지 얼마만큼 더 기다려야 하나. 
  
제발 ‘제 버릇 개에게 주고’ 새롭게 출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국회가 변해야 정치가 변하고, 정치가 바뀌어야 나라가 번영하는 법이다. 제발 이 못된 버릇이랑 개밥으로 일그러진 양은그릇에 담아 줘 버렸으면 좋겠다.

“청보리 왓듸 들어난 쉐광 지집방에 들어난 놈은 한번 가나민 주우릇혼다.”

한 번 재미를 봤으니 또 맛보려 들게 된다. 애초에 유혹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한 개인에게는 패가망신이요, 국가 사회로서는 폐단을 쌓는 일, 없애겠다는 그놈의 적폐를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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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내대표 손 잡는 국회의장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부터),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세균 국회의장,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정례회동을 갖고 손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특히 이 나라 정치인들 하루속히 각성해야 한다. 퍽 하면 국민을 위해, 국민의 뜻 운운하며 ‘국민’을 담보하지 말고, 냉정히 자신부터 성찰할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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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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