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리석게 오늘도 꿈을 꾼다. ‘우리의 의지’에 따라 지역사회가 완전히 정의롭게 될 수 있다는…. 그게 미래를 위해 내 안에 깃든 헛된 기대와 유혹을 이겨내는 저항의 척도다. 그래서 나의 물음은 언제나 도발적이다. ‘도대체 누가 있어 지역사회의 물을 흐려놓는가’”(지역사회에 ‘비판언어’가 살아 있어야 한다, <제주의소리> 2013년 12월26일)
평생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영원한 언론인’ 강정홍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이 5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한 순간도 정의를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으나 혹독한 병마 앞에서 육신까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고인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아니 병마와 싸울 힘을 기르려 펜을 들었다. 스스로 그렇게 얘기했다. “하루하루 글쓰기로 버틴다”고. 최근 병상에서도 그는 “글 쓰다가 죽게 돼서 행복했다”고 했다.
난개발, 패거리, 평화의섬, 땅, 중국자본, 제주의 정체성, 진정한 지도자….
그랬다. 그의 글은 도발적이었다. 깊고 그윽했지만,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불의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대충’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평생 언론 외에는 곁눈질 한번 하지 않은 그였다. 칼럼 바이라인에 ‘전(前) 편집국장’ ‘전 논설위원’조차도 극구 사양할 만큼 그저 ‘언론인’으로 남길 원했다.
글은 곧고 날카로웠지만, 밑바탕엔 제주에 대한 무한사랑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제주의 가치와 정체성, 평화를 지키자는 외침에 가까웠다. 특히 제주 곳곳이 중장비에 파헤쳐지는 현실을 무척 괴로워했다.
“개발에 대해 말이 많다. 그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지역사회를 ‘보다 나은 세계’로 이끌기 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게 문제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분노하고, 그리하여 무엇에 대해 저항할 것인가를 모른 채, 우리들의 주의력은 끊임없이 분산되고 흩어지려 한다.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수한 잡담 속에 갇힌 채’ 시간만 소진하고 있다”(개발에도 자존심이 있는데…, <제주의소리> 2016년 11월21일)
무엇보다 고인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언론의 역할이었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무수한 비판과 사자후도, 그에겐 건강한 언론 없이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좀처럼 나서기를 꺼려했던 그가 지난 2015년 5월 한 학술세미나에 나가 던진 화두도 “언론의 생명은 비판”이었다. ‘우리의 비판언어는 건강한가’라는 주제로 토론에 나선 그는 예의 ‘정직하고 깨끗한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판은 정직해야 한다. 비판의 참다운 의미는 엄격함과 순수함에 있다. 깨끗한 손으로 기사를 다뤄야지 불순한 의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비판은 흔한 말로 ‘까는 기사’가 아니다. 잔잔하게 기사를 써도 내용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미래지향적이면 충분히 힘을 가진다”
고인에게 제주의 가치, 제주인의 정체성은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인 4.3과도 연결된다.
“‘이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지킨다는 것’ 그리하여 ‘제주사람의 정체성을 바로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현해야 할 4.3사건의 교훈적 의미입니다. 그게 바로 ‘제주사랑’입니다. 역시 역사적 사유는 ‘자신의 숨겨진 뿌리’를 향해서 되돌아갈 가능성에 대한 물음입니다”(‘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것’이 4.3사건의 교훈적 의미입니다, <제주의소리> 4월12일)
이게 마지막이었다. <강정홍의 또다른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을 텐데도, 당시 그가 원고에 붙여 남긴 말은 깊은 울림을 줬다.
“늙고 병들어 글이 시들해질까봐 힘있게 쓰려고 노력했어.”
고인은 1972년 제남신문 기자로 언론에 발을 들였다. 제주신문 편집국장·논설위원, 제민일보 편집국장·상임논설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제주중재부 중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창립된 제주언론인클럽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2013년 이후 <제주의소리>에 ‘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써왔다.
유족으로 부인 최순자씨와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10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전 8시30분. 제주시 월평동 선영에 묻힌다.
관련기사
- ‘제주의 자연을 지키는 것’이 4.3사건의 교훈적 의미입니다
- 개발에도 자존심이 있는데…
- ‘국제자유도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킨다는 것
- 아직도 우리의 ‘특별자치’는 유효한가
- ‘땅의 위기’는 막다른 ‘삶의 위기’입니다
- 아무리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 우리 고장의 이른바 ‘어른’들
- 아무리 정치판이 못마땅하더라도…
- 집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 만약 우리 주변에 이른바 ‘패거리’가 있다면…
- 제주에서 ‘제주사람’으로 산다는 의미
- 눈을 크게 뜨면 ‘올바른 선택’이 보입니다
- 도대체 당신은 ‘어떤 제주’를 원하십니까
- ‘제2공항’예정지 주민들의 ‘결사반대’의 아픔
- ‘역사적 관점의 다양성’을 위하여
- 개발하지 않는 게 ‘최상의 개발’
- 어찌 잔솔인들 함부로 할 수 있으랴
-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는 어리석다’지만…
- ‘좁은 우물 안’에서도 삶의 여백 만들 수 있다면…
- 지역사회엔 ‘확신에 대한 반대자’도 있어야 한다
- 땅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 도대체 ‘제주의 정체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주민들의 ‘낮은 목소리’를…
-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업적추구’인가
- 이른바 ‘중국자본’…그 끝없는 물음
- 왜 다시 전통을 이야기 하는가
- 우리 소나무도 이 땅의 ‘거주자’입니다
- 누가 ‘평화의 섬’을 욕되게 하는가
- 이름 모를 들꽃인들 어찌 함부로 할 수 있으랴
- 한라산과 ‘드림타워’...건물이 높을수록 그늘도 넓다
- 그러나 미래는 그냥 오지 않는다
김성진 기자
sjk317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