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 몰은 콩 말댕 해여?"
"나 한 몰은 콩 말댕 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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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국립민속박물관은 특별전 <노인>을 개최했다. 사진 속 인물은 <노인>전 객원 큐레이터를 맡은 조용문 옹. 출처=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35) 나이 많은 말이라고 콩 마다 할까?

* 나 : ‘나이’의 제주방언. 연세
* 한 : 기본형 ‘하다’. 많다(多)의 제주방언, 형용사, 
고어에서는 ‘하다’(爲, 동사), ‘하다’(많다, 多, 형용사)로 쓰임
* 몰 : '말'(馬)의 고어
* 말댕 : ‘말다고, 말겠다고’의 제주방언
* 해여 : ‘하느냐, 하겠느냐’의 제주방언. 하다(爲, 동사)

나이가 많으면 더욱 식욕이 생기므로 나이 많은 말인들 콩을 싫다고 할 까닭이 있나 함이다. 결국 자기가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오륜의 하나로 장유유서의 예를 갖춰 노인을 극진히 우대해 왔다. 그런 전통이 오늘로 연면히 이어지고 있음은 말할 것이 없다. 

서민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 버스를 타고 보면 으레 마련된 ‘경로석’에서도 나타난다. 경로석은 자동차의 동요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자리, 허리 부분에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집안 제삿날 파제 뒤 음복할 때면, 연세 드신 어르신은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안방에 독상을 받고 앉는다. 아잇적에 무엄하게도(?) 슬쩍 훔쳐본 것이지만, 그 상엔 메밥도 사발 수북이 담았고 국도 넉넉히 떠 놓았다. 우럭구이며 산적에다 먹고 싶어 그렇게 침 흘리던 능금이며 댕유지(당유자) 몇 쪽도 올려 있곤 했다.

아이들은 몇 술 뜨면 그만인 밥이며 국에 과일도 한 쪼가리, 종잇장마냥 얇게 썬 것이었다. 그렇게 웃어른 대우를 깍듯이 했던 기억이 새롭다. 노인 존경의 마음은 그렇게 은연중 발양됐을 것이고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노인우대 풍속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나이 들면서 노인이 무심결 먹는 데 충동적·본능적으로 돼 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치가 높아 갈수록 먹고 싶은 음식도 많고, 또 양껏 먹으려는 것은 동물적인 인간의 본능이다. 

즐거움 치고 식도락에 더할 것이 있으랴. 더욱이 구차하던 시절 먹고 싶던 것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시절이 풍요해지면서 덩달아 기름기 있는 푸짐한 음식을 찾는 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 많은 말이라고 콩 마다 할까?”

그렇다. 가축의 먹이 가운데도 최고 상질인 게 콩이다. 겨나 말려 썬 짚, 마른 풀 따위에 콩을 섞어 여물죽을 쑤어 눈 오는 날 김 모락모락 나는 놈을 말에게 먹였다. 묽게 쑨 말죽(馬粥) 으로 이에 더할 먹이가 없다. 나이 먹은 말이라고 그 ‘콩여물’을 마다하겠는가. 안 주어 못 먹지, 있으면 정신없이 먹어댄다. 그게 동물이다.
  
사람들이 야박하지 못했다. 보릿고개를 넘기느라 조바심이던 그 곤궁한 형편에도 마소에게 이따금 이런 별난 먹이도 주어 가며 짐승을 부렸다. 자주 할 수 있었으랴. 어려운 형편에 겨울 농한기 한철, 한두 번 할까 말까 한 대접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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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밭갈이 모습. 출처=제주도청 홈페이지.

그렇게 잘 먹인 마소는 파종기 봄부터 가을 추수 때까지 부릴 만큼 부렸다. 잘 먹여 살만 피둥피둥 찌는 게 아니다. 먹이면 먹은 값을 해내는 게 짐승이다. 그러니 본전을 뽑다가도 남는 게 마소를 먹이는 일이었다. 억세게 일을 했으니까. 제아무리 힘들어도 눈만 껌뻑껌뻑할 뿐 제 할 일을 다해내는 말과 소, 얼마나 우직한 가축인가.

노인 우대 풍속은 결국 노인이 갖고 있는 높은 ‘경륜(經綸)’, 그 정신적 자산을 미래로 가는 자양으로 활용하는 수단이 된다. 노인은 늙어 굼뜨고 힘없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숭고한 가치다. 
  
노인을 공경하고 격에 맞게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언행을 본받되, 특히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속에 한 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니 한마디 한마디가 잘 여문 알곡이다.

예를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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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교수의 책 『백년을 살아 보니』. 출처=교보문고 홈페이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올해 백수(白壽)가 눈앞인 98세 노령이다. 〈별 헤는 밤〉의 시인 윤동주와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동문 수학한 분. 고령에도 나무처럼 꼿꼿해, 그분에게서 틀니·보청기·지팡이 같은 노년의 그림자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지난해 펴낸 『백년을 살아 보니』는 10만 부나 팔렸다. 지금도 집필을 이어 가면서 강의를 일주일에 서너 번씩이나 나간다는 게 아닌가. 노당익장(老當益壯)한 분이다.

1920년 평남 대동에서 출생, 25세에 광복을 맞았지만 환희(歡喜)는 짧았다고 회고한다. 그도 그럴 게 공산주의를 경험하다 월남했고, 30엔 6·25전쟁, 40대엔 4·19의거를 목격했다니, 가히 한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철학자다.

노 교수가 꺼낸 말씀 한마디에 옷깃을 여민다. 

“이승만 박사가 실패했는데, 소인배와 아첨꾼을 썼기 때문이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편 가르기를 했어요. 내 사람, 같이 일할 사람, 영 아닌 사람으로 나눴고, 아닌 사람은 당 내에서까지 내쳤지요. 그렇게 분열돼서는 정치 못해요.”

진리가 녹아 있는 노 교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행간을 넘어 기어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노인이 펼치는 또 하나의 맑은 세계다.

우리는 ‘나 한 소(나이 많은 소)’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영화 ‘워낭’을 기억한다. 소와 노인, 주객이 일체로 네 것 내 것 없이 노인과 소는 한 몸이고 한 마음이었다. 노인은 소를 제 몸처럼 돌봤다. 잘 먹이고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끼고 어르고. 
  
미물에게도 감성이 있고 지각이 있다. 정과 의리가 있다. 소도 주인의 사랑을 느껴 한평생 노인에게 몸 바쳐 일했다.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한 노인과 소. 

소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것을 흐린 눈빛으로 알았다. 노인이 코뚜레를 풀고, 숨을 거둔 소는 마침내 노인에 의해 매장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이별로.

“나 한 몰은 콩 말댕 해여?” 

나이 든 말이라고 콩여물 죽을 마다하겠는가. 외려 더 먹으려 들 것이다. 먹일 수만 있다면 먹일 만큼 먹일 일이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노인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어 내야 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 그게 철학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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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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