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김태석

이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동은 자본에 선행하며 독립적이다. 자본은 노동의 아들이며, 노동 없이는 애당초 존재조차 않을 것이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이며, 더 우대받을 자격이 있다”고 해, 자본의 나라 미국에서 그 누구보다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 대통령이었다.

시민의 삶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노동이다. 노동은 인간 삶의 원천이며 노동의 가치는 삶의 가장 근본가치다. 노동하는 시민의 삶이 공적 질서의 중심에 있는 세상이야말로 진정으로 바람직한 그리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공적 질서의 중심에 시민의 삶을 두고, 시민의 삶의 중심에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은 첫 업무지시로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을 마련하도록 주문했다. 취임 3일 만에 첫 외부일정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임기 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 ‘일자리 창출’ 이행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의 확인이자, 새 정부의 중요한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도 이러한 인간 존중과 노동의 가치를 확인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가 돋보이는 예산안이라는 평가다. 3% 이하의 경제성장과 소득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민간일자리 창출 지원, 아동수당 신설, 기초연금 인상 및 일하는 복지 지원 등의 예산 편성은 필수불가결하고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국가와 정부와 정치가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제주는 어떤가? 과연 제주지역은 노동의 소중함을 알고 노동하는 사람의 삶이 존중받는 살기 좋은 곳인가? 제주는 전국 시·도 가운데 경제성장률 1위, 고용률 1위의 좋은 고용지표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평균임금 전국 최저, 비정규직 비율 48.3%로 전국 16개 시·도 중 1위로 질적 수준에서는 전국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대규모 개발사업은 물가와 땅값까지 전국 최고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도민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하기만 할 뿐이다.

지난 7월 제주도의회 의회운영위원회 주관으로 ‘제주지역, 비정규직 제로시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제4차 공감소통 두런두런 정책좌담회가 열렸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당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전해준 바 있다. 이날 참여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임금·복지·노동조건 등에서 정규직과 비교해 차별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있는 비정규직의 일상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물려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도정과 교육행정 등 노사관계의 모범이 돼야 할 공공부문에서조차 앞다퉈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할 뿐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참여자는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누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도정과 교육행정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8월29일 원 도정은 정부보다 한발 앞서 출범시킨 ‘제주 일자리창출위원회’의 제주형 일자리 정책 발굴과 실질적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성과보고회를 가졌다. 하지만 재정지원 사업을 통한 민간 일자리 창출은 공공근로, 노인 일자리 사업 등 그 대부분이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일자리이자,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쁜 일자리’일 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보다는 실제 도민들이 고용불안과 차별적 처우를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국제노동기구 ILO가 말하는 사람 중심의 ‘좋은 일자리’(decent work)라고 할 수 있다.

앞선 필자의 의정칼럼에서 제주도정의 제2회 일자리 추경이 ‘알바’ 추경이 넘어 정부의 ‘일자리 추경’의 목적과 목표에 맞는 추경이 되도록 고민돼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각종 ‘일자리 정책’이 인간에 대한 존중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 결국 사상누각의 공허한 정책에 불과하다. 2018년은 지방선거가 예정된 중요한 해이다. 원 도정이 내년도 예산과 정책을 마련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해서 염두에 둬야 할 원칙과 목적은 도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 인간과 노동의 가치를 제주도정의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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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석. ⓒ제주의소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정책은 도민으로 통해야 한다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까? 제주도정의 모든 정책은 도민의, 도민에 의한, 도민을 위한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도정의 모든 정책과 예산은 결국 도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어야지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위한 선심성 정치가 돼선 안 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의지와 신념, 책임성이 간절히 요구되는 시기다. 그런 바탕 위에서 제주에 대한 정책진단과 처방이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김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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