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40) 복 없는 사람 몫의 달걀엔 뼈가 들어 있어 먹지 못한다

* 빈복한 : 박복(薄福)하다, 타고난 복이 없다
* 나시 : (그 앞에 주어지는)몫, 적시
* 독새기 : 달걀, 계란
* 뻬 : 뼈의 제주방언. 뼈대, 골격(骨格)
* 들엉 : ‘들어’의 제주방언. (속에) 들어 있어서

속담일지언정 글에서 중요한 것은 ‘은유’다. 생각을 어떤 사물에 빗대되, 좀 더 그 본질 속으로 들어가 비유하는 것. ‘내 마음은 호수’ 하는 식. 밀착도가 매우 높다. A=B가 되는 것이다. 등식이 성립된다.

원체 복이 없는 ‘빈복다리’를 빗대되 언어로 할 수 있는 극한까지 끌고 갔다. ‘복 없는 자의 몫으로 주어진 계란 속엔 뼈가 들어 있다.’고 했지 않은가. 달걀 속에 뼈가 들어 있다니. 생선의 가시 같은 것도 아닌, 거칠고 딱딱한 뼈가.

당연히 먹지 못한다. 흰자 노른자만 들어 있으리라 해서 무심코 입에 넣었거늘, 홀연히 그 속에서 뼈가 나왔으니 놀랄 수밖에.

누가 뼈를 넣어 궁지에 내몰려 한 게 아니다. 멀쩡한 달걀 속에서 나온 뼈이니, 필경 복 없는 자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주위의 영향을 무릅쓰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나 사람은 그가 처한 환경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무얼 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이루려 해도 진전이 없다, 가슴 아릿하게 보고 싶은데도 만나지도 못한다, 삶이 그만그만해 더 나아지는 게 없다…,

zzzohmy_193644_132[434278] (1).jpg
▲ 복 없는 사람 몫의 달걀엔 뼈가 들어 있어 먹지 못한다. 흰자 노른자만 들어 있으리라 해서 무심코 입에 넣었거늘, 홀연히 그 속에서 뼈가 나왔으니 놀랄 수밖에. 사진=오마이뉴스.

이런 곤경에 맞닥뜨릴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일에 대해 비관하고 만다. 이어지는 게 체념이다. 그러고서 생활에서 손을 내려놓는다. 우리 제주인들도 ‘나 빈복해부난 영 못살암셰,(나 복이 없어서 이렇게 못 사는 거 아니냐.)’ 했다. 일이 안 풀릴 때면, 입에 돌아진 게(입에 올리는 게) 만날 그 말이었다는 얘기다.
  
숙명론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미리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 그게 숙명론이다.
  
주위를 가만 살펴보면 숙명론자들은 대개 비관적이다. 행운의 여신이 제 편에 서 주지 않을뿐더러 자신을 비켜가 버렸다고 예단하기 일쑤다. 그러고 나면 삶에 탄력을 잃게 된다. 생기가 없다. 그들은 나태하기 쉽고 일에 적극적이지 못한 단점이 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자들에게 제공될 일의 공간이 있으랴. 냉혹한 얘기지만 턱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후다닥 털고 일어나려 않는다. 잘 돼도 그만, 못 돼도 그만인 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반전(反轉)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일이 잘못돼도 운이 나빠서 그런 거라 확신하게 된다. 허망한 것을 믿으니 미신이다. 결국 안 좋은 악순환만 되풀이된다.

거시적으로 눈을 돌려 봐도 지나치게 미신적인 사람들은 결코 성공한 적이 없었다.

숙명론에서 탈피해 성공한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실패 속에 좌절했다 다시 일어나 대통령이 된 사람,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을 억척스레 도로 일으켜 세운 기업인, 항암치료를 거부하고서도 십 수 년도 더 생명을 이어 오는 유명 소설가, 수족을 제대로 못 쓰는데다 지적장애까지 가진 아이 곁에서 평생 희생적으로 살아가는 헌신적인 사랑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자칫 운명이라 한다. 이때, 소중한 것이 평상심의 회복이다. 평정을 되찾음으로써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신념을 획득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려는 일의 성취가 가져다주는 탐스러운 열매다. 작은 실수에도 좌절하기 쉬운 게 인간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내지 못하면 무엇 한 가지도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이를테면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인생에서 갖춰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평상심이다.

“빈복한 놈 나시 독새기엔 뻬가 들엉 못 먹나.”

언뜻 보아 맞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상황을 두고 한 말은 결코 아닌 성싶다. 달걀 속에 뼈가 들다니, 언어도단 아닌가.

그렇게 여기니 그렇게 보인 것일 뿐이다. 살다 보면 이런 헛된 것이 눈앞을 어지럽게 하는 수가 잦다. 그래서 불가(佛家)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마음 아닌 게 없다. 생각이며 일이며 꿈꾸는 것까지도 일체 마음이 하는 것이다. '독새기에 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뻬가 들엉 못 먹나'라 한 것이다. 마음이, 마음이 그렇게 시킨 꼴이다.

숙명론은 바로 그런 섬약한 마음에서 나온다.

숙명론자의 삶은 결국에 비극을 불러들인다. 마음이 하는 바를 따라 자연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어서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모든 일의 근본이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마음을 하루 빨리 추슬러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본래 타고난 모습으로 돌아가 도전적인 자세를 유지할 때, 성취가 있고 삶의 가치를 실현한 뒤의 환희가 있다.

어머니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학(無學)이었다. 초가집 무뚱(툇마루) 흑으로 개벽한 벡보름(흙으로 칠해 놓은 벽)에 ‘바를 正’자를 막댕이(막대기)이로 긁어 숫자를 표시했다. 누구네 집에 보리쏠(보리쌀) ‘몇 되 꿔 준 것, 또 받을 것’ 하고 썼다. 글 아닌 것 같아도 분명 글이다.

그런 당신께서 비만 안 오면 밭에 가 살았다. ‘독새기에 뻬 들엉’ 먹고 못 먹고는 어머니에겐 한 푼 가치조차 없는 호사요 사치였다. 이 한 몸 끌고 다니며 박박 기어사(박박 기며 일해야) 네 오누이 키울 수 있다는 의지 하나로 살았던 어른이었다. 그 덕분에 내가 이 글이라도 쓰고 있지 않은가. (웃음)

어머니는 소소한 일이나 상황 변화에 좌절 따위로 일을 멈춘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숙명론이 어디 붙은 말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분이다.

숙명론에도 유전적인 것과 환경적인 게 있다.
  
“난 오래 못 살아.”
“난 부모 닮아 건강하지 못해.”
“난 이런 데는 강하지 못해.”
  
이렇게 건강이나 능력, 유전자 등에 의해 타고난다는 유전적 숙명론자의 말이다. 유전자가 자신을 좌우한다고 믿게 되면, 그 믿음이 성큼 현실로 다가와 어느새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존재가 되게 마련이다.

인간이 타고난다는, 믿음이 강한 유전적 숙명론자는 인생을 적극적‧능동적으로 사는 환경적 숙명론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직장생활, 학업 성적, 인간관계, 스트레스와 질병의 극복을 스스로 해 내는 환경론적 숙명론자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빈복한 놈 독새기엔 뻬가 들엉 못 먹나." 

한 번 틀어 보며 귀 기울이면 강한 메시지로 들린다. 1만 시간의 연습과 훈련이 삶을 변화시킨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증명사진 밝게 2.png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