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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기영 작가, 문정현 신부가 함께한 '구럼비, 동백꽃 피우다-두 하르방 이야기'가 25일 오후 7시 제주시 W스테이지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10년 기념 간담회..."4.3부터 강정까지 미국 영향" 한 목소리

제주4.3을 세상에 알리는데 앞장선 소설 《순이 삼촌》의 현기영(76) 작가, 강정을 비롯해 국가폭력에 고통 받는 어디든 찾아가는 ‘길 위의 신부’ 문정현(77) 천주교 신부.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눈 두 원로가 4.3과 강정 해군기지 문제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10년 기억행동이 주최하고 4.3과 통일 마중물, 평화바람이 후원하는 <구럼비, 동백꽃 피우다-두 하르방 이야기>가 25일 오후 7시 제주시 W스테이지에서 열렸다. 현장에는 각자 분야에서 활동해온 두 사람의 궤적을 증명하듯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현 작가과 문 신부는 군사 정권에서 고초를 겪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면서, 4.3과 강정은 마침표가 아닌 계속 기억하고 싸워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현 작가는 “1978년 《순이삼촌》을 발표하고 나서 보안사 경찰에게 끌려가 3일 동안 고초를 당했다. 1980년 신군부가 득세하고 한 1년 동안 술에 빠져 지냈다. 어느 날 꿈속에서 내가 창조한 순이삼촌이 나타나 손을 뻗으면서 ‘왜 술만 마시고 있냐. 일어나라’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다음에는 보안사가 아닌 4.3영령들이 나를 고문하는 꿈도 꿨다. 그 뒤로 '나는 4.3에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라고 실감했다”고 생생한 기억을 되살렸다.

문 신부는 “1974년 4월 인혁당 사건으로 법원이 8명을 사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구치소로 달려갔는데 이미 사형 집행이 이뤄지고 난 뒤였다. 차량 위에 올라가면서 격렬하게 항의했는데 그 때 다리를 크게 다친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현 작가는 “4월 3일이 국가 추념일로 지정되고 ‘이만 하면 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4.3은 영원하고 언제나 생생하다. 그래야만 한다. 4.3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게 아닌 국가폭력에 의한 무참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진혼, 신원(伸冤)이 되지 않은 원혼이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4.3을 잊고 등한시 할 수 있나. 4.3은 계속해서 제 기억을 가져야 한다. ‘re memory’ 하며 미 체험 세대까지 기억이 계승돼야 한다. 4.3을 잊어버리면 4.3과 같은 참사가 다시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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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기영 작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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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현 신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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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기영 작가, 문정현 신부가 함께한 '구럼비, 동백꽃 피우다-두 하르방 이야기'가 25일 오후 7시 제주시 W스테이지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더불어 “4.3 이후에 광주 5.18이 일어났다. 4.3이 제대로 진상규명 되고 가해자의 죄를 물었다면 과연 5.18이 일어났겠냐. 4.3은 세계 평화를 외칠 수 있는 초석이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 신부는 “4.3의 역사는 지금의 강정까지 연장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미국의 책임이 크다. 오산 비행장, 대추리 미군기지, 제주해군기지까지 모두 미국을 위해서 주민이 희생당한 일이다. 공권력의 편법, 탈법, 불법 행동에 주민을 가두고 벌금 물고 구상권까지 하면서 강정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무엇을 위한 거냐. 결국에는 미국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한 목소리로 역사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도 크게 우려하면서 “미국에게 끌려가지 않는 외교적 자세”(문정현), “국가 간의 민중 연대”(현기영)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문 신부는 “억울한 사람을 보면 눈에 밟힐 뿐만 아니라 그것이 나를 옭아맨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는 연민의 정이 생기고 발걸음이 향한다. 지난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고, 고통스러운 시간일 수 있으나, 결국에는 해군기지라는 죽음의 깃발은 패배하고 생명의 깃발이 승리한다는 믿음을 간직하자”고 말했다. 

현 작가는 “4.3운동을 하면서 초창기엔 진상규명은 생각도 못했다. 그저 어둠 속의 행진이었다. 불가능을 꿈꿨지만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4.3과 강정도 이제 2단계 싸움이 시작됐다고 본다. 4.3은 내년 70주년을 맞아 세계화, 보편화라는 과제가 중요해졌다. 강정은 비록 해군기지가 지어졌지만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는 모두의 희망이자 씨앗이다. 4.3과 강정을 연결한다면 다크투어리즘의 성소(聖所)가 되리라 믿는다”고 기대를 걸었다.

평생 현실참여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리는데 펜을 들어온 현기영 작가, 민초들이 고통받는 현장마다 온 몸을 내던져 온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두 원로가 함께한 이날 '구럼비, 동백꽃 피우다'의 진중한 대화가 4.3에 쓰러져간 원혼과 부서진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 붉은 동백꽃을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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