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기행(8)] '빈집' 철거 임박한 대추리와 평화마을로 거듭나는 매향리
소록도 → 구례 (여순사건 위령탑준공식 현장) → 광주(학살현장 및 5.18 묘역) → 실상사(지리산 생명연대) → 지리산 계곡 → 지리산 국립공원과 섬진강 일대→ 전북 고창(생명평화탁발순례) → 전북 부안 새만금 (계화도 ‘그레’와의 만남)→ 대추리와 도두리(경기도 평택) → 매향리 |
대추리로 향하는 길
새만금 계화마을의 풋풋함과 그것의 청락(靑樂)에 안주하고픈 마음들을 일으켜 평화기행 순례단은 대추리로 향했다. 주민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어 솔찮게 이어지던 ‘낮술’의 늘어짐도 대추리가 가까오면서 긴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
잃어버린 추억
대추리 주민들의 추억마저도 쫓아내고 있다.
일찍이 폐교되긴 했지만, 대추리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의 장’이었던 학교는 시위의 거점이 된다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이 자리에 이제 뭐가 들어설지.
갈라지는 들녁
40년전 마을주민들이 공들여 만든 논을 그들은 그렇게 고스란히 빼아갔다. “철조망을 걷지 못해도 벼라도 대신 키워져야 되지 않겠냐”며 울먹이던 농군의 표정은 “그들은 철조망 안에서 도둑부터 키우고 있다”며 분노의 그것으로 붉어졌다. 얼마전 누군가가 모판마저 뒤집어 버리고 가져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빈집
7월에 들면 이 빈집들의 철거가 추진된다. 순례단이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대책위 사무실에서는 누군가가 이른 새벽부터 빈집을 살피고 다녔음이 보고되고 있었다. 빈집 철거작업은 남아있는 절반의 사람들에게 공포가 될 것이다. 결국 그들 또한 ‘빨리 나가라’는 경고인 셈이다. 이 철거가 지금 임박했다.
그들의 ‘가화만사성’마저 깨져 버렸다.
“평화와 분노의 두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순례단에 참가한 양다림씨는 “평화의 마음과 분노의 마음을 동시에 마주하기 너무 힘들다”고 토로 했다.
대추리에서 매향리로, 빼앗김에서 거듭남으로
대추리에서의 무거운 마음은 매향리에 들어서면서 한층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무거움과 가벼움, 어두움과 밝음이 반복되는 여정에서 우리들의 내면은 깊어갔다.
매향리의 평화 만들기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가 8월 30일 발족될 예정이다.
작년 8월 30일 폭격연습장 완전폐쇄가 공식 결정된 날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인근 ‘빼앗김의 현장’ 대추리를 떠올리며 매향리의 거듭남의 축제는 결코 즐겁지만도 않다.
700가구의 마을에서 50년 동안 이어진 36명의 자살과 공격적으로 변해버린 아이들, 전투기의 굉음으로 멀어진 주민들의 귀와 가슴도 쉽게 축제부터 벌이기를 망설이게 하는 사연들이다.
역사 기념관과 평화박물관, 복지관이 만들어지고 문화체험과 더불어 폭격장 이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자연생태의 마을 만들기도 이뤄질 예정이다. 아이들의 정서복원과 주민들의 공동체성 회복도 중요한 과제다.
갯벌에는 다시 게 들이 돌아오고 있고, 도요새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700억이 든다는 이 일대의 폭탄수거가 완전히 이뤄질때 까지
이 곳은 또한 평화만들기를 위한 살아있는 기억의 현장이 될 것이다.
“화순항 해군기지 차라리 매향리로 오라고 하세요” | ||||||||||||
이제 그는 매향리 평화만들기에 나서면서도 늘 제주도가 걱정이다. 화순항 해군기지 문제는 그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그는 작년 화순항 기지예정지를 다녀가기도 했다. 순례단과의 첫 만남에서도 그가 대뜸 꺼낸 말은 “화순항 해군기지 절대 안됩니다”이다. 그는 “차라리 매향리에 기지를 세우라고 하세요”라고 한다. 순례단은 며칠전 제주도 해군기지 소식을 접했다. 순례단의 마음이 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
※ 고유기 님은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