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55주기 4.3위령제 참석 무산 전말
노 대통령 55주기 4.3위령제 참석 무산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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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총리, 진상조사보고서 6개월 유예 고집, 노 대통령 사과 무산
10월 정부의 공식 견해를 담은 4.3보고서가 최종 확정된다.
최종이라함은 지난 3월 보고서가 작성,심의 의결됐으나 4.3중앙위원회(위원장 고건 총리)가 "6개월간 의견수렴 후 수정보완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은 무산됐다.
이의 배경과 진상을 둘러싸고 당시에도 논란이 된 바 있는데, 앞으로 한달 가량 남은 최종보고서 확정에도 아직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당시 수정보완 의결 전후과정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판단된다.
이번에는 결코 이러한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이 동 기관지([참세상 만드는 사람들] 35호)에 실었던 기사내용 중 이와 관련된 부분만 옮겨 싣는다.[편집자주]


지난 3월 29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이하 '4·3위원회'라 약함)는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단장 박원순 변호사, 이하 '보고서작성기획단'이라 약함)이 작성한 [진상조사보고서]를 일부 수정해 심의·의결했다.

[진상조사보고서]는 4·3특별법의 제정 목적인 '진상규명'의 핵심이며, 이는 곧 '명예회복'을 위한 근거이다. 또한 4·3위원회는 이날 '대통령의 사과' 등 보고서작성기획단이 제출한 7개항의 대정부 건의안을 접수했다.

이에 도민들은 닷새 앞으로 다가온 4·3위령제 때 대통령이 참석해 정부의 최고책임자로서 유족과 도민들에게 사과함으로써 50여년 맺힌 한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대선 때 "현재 진행 중인 진상조사 결과에 당시 국가권력이 잘못한 점이 드러난다면 4·3 영령과 제주도민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이고 사과할 것이고, 대통령이 되면 기필코 제주도민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약한 바도 있어 그 기대는 곧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

고건 총리 4.3위령제 참석 반대

그러나 고건 총리는 [진상조사보고서]가 6개월간 유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의 사과와 4·3위령제 참석을 반대했다.

고건 총리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총리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고건 총리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성명 발표와 함께 4월 3일 위령제에 참석하려는 고건 총리를 막아서며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 파문이 일었다.

한편 노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무산된 데 대한 도민들의 실망감이 채 가시기도 전인 4월 7일자 [자유시민저널]에는 "제주도지사, '4.3희생자 선정 문제 있다' 인정, 건국희생자 제주도유족회 대표단 도지사 방문 자리서"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려 도민들을 경악케 했다.

'자유시민저널' 4.3 기사 파문

이상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가 시작된 3월 하순경부터 [자유시민저널] 기사를 둘러싼 파문이 계속된 4월 하순까지 한 달간의 사태는 향후 '4·3문제 해결'에 큰 걸림돌이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줬다.

특히 이같은 파문이 계속되는 동안 도내 4·3관련 단체들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은 그 심각성을 더해줬다.

이제 왜 이같은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진상은 무엇인지를 시급히 그리고 정확히 진단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지난 일에 대해 반성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향후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희생자 선정', '위령공원 조성' 등 4·3특별법의 핵심 요소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4·3문제 해결을 위한 도민들의 자세를 가다듬고 걸림돌들을 제거할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고건 총리와 국방부, 그리고 청와대'

당초 {진상조사보고서}는 3월 21일 열린 제6차 4·3위원회에서 심의·의결될 예정이었다. 진상조사보고서는 보고서작성기획단에서 2년여에 걸친 조사와 12차례의 회의를 거치는 노력 끝에 작성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보고서작성기획단에 속해 있는 군경측 위원들의 의견도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고건 총리는 뚜렷한 이유도 대지 못한 채 그 결정을 뒤로 미뤘다.
이날 대부분의 민간위원들은 보고서 심의·의결을 강력히 주장했다. 정부측 위원인 강금실 법무장관도 "법이 정한 시한을 넘길 수 없다"며 심의·의결할 것을 주장했다.

4·3특별법 제6조와 제7조에 의하면, 위원회는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2년 이내에 관련자료의 수집·분석을 완료하고, 그로부터 6개월 이내에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4·3위원회가 구성된 때가 2000년 8월 28일이므로 법이 정한 시한을 넘길 수 없다는 강 장관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었다.

심지어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은 고건 총리가 일부 군경측 위원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결정을 미루려 하자 "다수결로 처리하자"고까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건 총리는 군경측 위원들과의 의견조율을 이유로 다른 위원들에게 사정하다시피 하며 그 결정을 3월 29일의 제7차 회의로 미뤘다.

이어 고건 총리는 국방부장관(차관)이 포함된 소위원회를 구성해 3월 24일, 25일, 28일 자신이 직접 주재한 세 차례의 축조심의를 벌여 군경측에서 제기한 일방적 주장을 보고서에 대폭 수용토록 했다.

축조심의에 참석한 보고서작성기획단의 박원순 단장은 보고서의 심의·의결을 위해 군경측의 요구를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진상조사보고서는 ①보고서작성기획단의 자료조사·분석과 보고서 작성(2년 소요) ②제6차 4·3위원회(3월 21일) ③제1차 보고서심의 소위원회(3월 24일) ④제2차 소위(3월 25일) ⑤제3차 소위(3월 28일) 라는 여러 단계의 충분한 절차를 거친 끝에 제7차 위원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의견조율'이란 이름 아래 국방부장관 혹은 차관이 참석한 '축조심의'를 벌이는 동안 군경측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기 때문에 제7차 위원회 때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건 총리,진상보고서 심의유보, 보고서 의미 축소 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리는 3월 29일 열린 제7차 위원회에서, △보고서 의결을 6개월간 유보시키거나 △유보시키지 못해 의결될 경우엔 보고서의 의미를 축소시킨다는 두 가지 전술을 사용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위원 대다수의 반대에 부딪혀 그 의도가 완전히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유보 전술'과 관련해, 고건 총리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 가능성'을 그 근거로 들었다. 보고서는 보고서작성기획단이 2년여 동안 국방부, 경찰청, 정부기록보존소, 국사편찬위원회 등 국내 기관은 물론이고 미국, 러시아, 일본에까지 가서 자료를 수집·분석한 결과물임에도, 아무런 근거자료도 제시하지 않은 채 '새로운 자료의 발굴 가능성' 운운하며 심의·의결을 6개월간 유보시키려 한 것이다.

고건 총리는 박원순 보고서작성기획단장과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이 '법이 정한 시한'을 문제삼아 유보 불가 입장을 밝히는데 대해서도 "4·3특별법에 정해진 보고서작성 시한은 훈시적 규정일 뿐"이라 주장했다.

결국 총리와 군경측 위원의 '6개월 유보론'에 대해 나머지 대다수 위원들이 '당장 의결하자'고 맞서며 논쟁이 벌어졌고, 그 타협의 결과로써 "보고서를 심의·의결하되, 6개월간 시간을 두어 새로운 자료가 나와 수정보완 할 부분이 생긴다면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수정보완 한다"는 '조건부 의결'을 하였다.

고건 총리는 보고서를 심의·의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이번에는 보고서의 의미를 축소시키려고 하였다.

3월 21일 제6차 위원회 이후 세 차례의 소위원회와 이날 열린 제7차 위원회까지 의제는 오직 하나 '진상조사보고서 심의·의결 문제'였다.

그러나 고건 총리는 이날 4·3위원회의 심의·의결 대상을 4·3특별법 3조 2항의 1인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국내외 관련자료의 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으로 호도하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몇몇 위원들이 그 의도를 간파해 지적함으로써 4·3특별법 3조 2항의 4인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및 사료관 조성에 관한 사항'으로 바꿔 심의·의결할 수 있었다.

만일 이 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깜빡 넘어갔다면, 후에 "그 때 의결한 것은 '자료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이지 '진상조사보고서'를 의결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도 아무 말 못할 상황이 될 뻔했다. 과연 '행정의 달인'다운 교묘한 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우여곡절이 있었고, 또한 비록 6개월 후 수정할 여지를 남기기는 했으나, 진상조사보고서는 3월 29일 열린 제7차 위원회에서 분명히 심의·의결된 것이다.

고 총리, "보고서 확정안됐다" 대통령 제주행 막아

이에 따라 도민들은 다가오는 4월 3일 위령제 때 대통령이 참석해 정부 최고책임자의 자격으로 도민과 유족들에게 사과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곧 노 대통령이 도민들에게 사과하지도, 위령제에 참석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통령의 제주방문 취소 결정이 '바쁜 일정' 때문이 아니라 "진상조사보고서가 유보됐으니 위령제 방문과 사과를 6개월 후로 미루는 게 좋겠다"는 총리의 보고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총리의 주장에 의해 6개월 후 수정될 여지가 남긴 했으나, 그것은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바꿔야 할 만한 중요한 자료가 추가 발견 또는 제출될 경우'에 한한 일이고, 그럴 경우 글자 그대로 수정·보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총리실은 마치 보고서가 심의·의결되지 않은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막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3월 31일 오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령제 불참과 사과 유보가 최종 결정됐다. 그리고 위령제에는 고건 총리가 대신 참석키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은 "고건 총리의 4·3추모제 참석은 보고서에서 요청한 사과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위로를 표명하고 그동안의 진상규명 과정을 설명하는 차원"이라며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이튿날인 4월 1일 즉각 보도자료를 내어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추 의원은 "고건 국무총리가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시한을 올 2월 말까지로 정한 제주 4·3특별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채택 시한을 연장했고, 청와대는 이런 무책임한 조처에 의지해 대통령의 사과를 유보했다"고 비판한 뒤 "4·3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는 인권의 가치에 대한 선언이자 노 대통령의 공약인 만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또한 "고 총리의 시한 연장 조처는 진상보고서 채택과정에서 군경 쪽 일부 위원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라며 "총리가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진상조사의 결실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그 의도를 경계한다"고 비판했다.

4월 2일에는 제주참여환경연대를 비롯한,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여민회 등 3개 시민사회단체가 성명을 내어 고건 총리를 비판하면서 그의 위령제 참석을 반대했다. 3개 단체는 성명에서 "청와대의 유보 결정에 고건 총리의 자의적이고 위법적인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면서 "이러한 배경에는 4·3특별법을 통한 4·3진상조사의 결실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려는 극우세력들의 목소리를 의식한 고건 총리의 편향된 사고가 작용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 "4·3진상규명과 도민 명예회복에 찬물을 끼얹은 고건 총리의 위령제 참석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총리실, 문제 불거지자 책임 떠넘기기 시도'

그러나 총리실에서는 4월 2일 추미애 의원의 문제 제기에 대해 4·3위원회 명의로 반박 해명서를 발표하며 정당성을 강변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의하면, 해명서는 우선 '보고서 6개월 유보'와 관련해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한을 넘겨 심의·의결하더라도 이 심의·의결이 무효가 아니라는 유권해석이 있었다"면서 "위원회는 더 이상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이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단 의결을 하고 수정의 여지를 열어놓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신용하 위원이 '보고서안은 매우 객관적·중립적으로 기술된 보고서로 평가함과 아울러 보고서 채택 여부에 대해서는 일단 의결하되, 앞으로 6개월을 시한을 두고 보고서 내용을 수정할 정도의 새로운 자료나 증언이 나오면 위원회 의결을 거쳐 수정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있어, 여러 위원들의 동의를 구한 결과 참석자 전원일치로 의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어 해명서는 "'총리가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진상조사의 결실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나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면서 "진상조사보고서가 1개월 후 발간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번 4·3위령제 행사시 정부의 공식입장을 표명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3사건 당시 제주도민의 10%에 해당하는 2만5천∼3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희생의 근원이 군경 등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 행위(희생자의 86.1%가 군경에 의해 희생)라고 밝힌 보고서의 내용을 바꿀만한 '새로운 자료'는 없다.

또한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1만4,028명 중 10살 이하 어린이가 814명(5.8%), 61살 이상 노인이 860명(6.1%), 여성이 2,985명(21.3%)으로 노약자가 전체 희생자의 33.2%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같은 불변의 사실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자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리는 이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서 "보고서가 수정될 여지가 있으므로 대통령의 사과를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총리실에서는 또한 대통령 사과와 위령제 참석을 반대한 책임을 4·3위원회 전체에 떠넘기기도 했다.

이는 이지훈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가 한겨레의 '왜냐면'이라는 지면(4월 3일자)을 통해 고건 총리를 비판하자, 이병진 국무조정실 일반행정심의관이 역시 한겨레의 같은 지면(4월 5일자)에 반론을 펴면서 나왔다.

이 글에서 이병진 심의관은 "위원회는 7차 회의 뒤 위원 전체 이름으로 조건부 의결 내용과 진상조사보고서기획단의 7개항 건의문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진상조사보고서가 더 논란 없이 최종 확정된 이후에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밝힐 것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마치 위원회 전체가 대통령에게 입장 표명을 유보하라고 건의한 것처럼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4·3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민간 위원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는 말'이라는 반응이다.

3월 29일 결정된 것은 보고서의 심의·의결과 7개항의 건의문 접수 뿐이며, 4월 2일 대통령 초청 오찬 때에는 고건 총리와 군 출신인 한광덕 위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위원들은 대통령의 사과와 위령제 참석이 무산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4월 3일 위령제는 대통령의 참석과 사과를 바라는 도민들의 큰 기대를 저버린 채 열렸다. 전날 총리 참석 반대 성명을 낸 본회를 비롯한 3개 단체와 민주노총, 전교조, 민주노동당제주지부 당원들은 행사장 입구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면서 총리의 행사장 진입을 막았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리는 왜 이토록 진상조사보고서 채택을 미루거나 혹은 그 가치를 폄하하려고 했을까. 총리는 3월 21일 열린 제6차 위원회에서 보고서 의결을 일단 저지한 후, 3월 24일부터 자신이 직접 주재한 3차례의 축조심의를 벌였고, 3월 29일 제7차 위원회를 열었다.

이는 일주일간 무려 4차례나 장시간 회의를 주재한 셈인데, 특히 그 기간은 3월 20일 발발한 미국과 이라크 사이의 전쟁 때문에 정부에서 연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리던 비상시국이었다. 총리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인가.

총리가 이처럼 진상조사보고서에 민감하게 반응한 까닭은, 그가 4·3사건에 대해 왜곡되거나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군경을 비롯한 보수세력들로부터 비난받지 않으려는 철저한 '면피성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청와대 일부 세력, 4.3문제 해결 방해'

그동안 국방부는 물론 보수우익단체인 자유시민연대와 예비역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등에서는 4·3사건을 왜곡하면서 지속적으로 진상규명 작업을 방해해 왔다.

그런데 이들 외에도 4·3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세력의 한 축이 청와대라는 사실이 최근 한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중앙일보} 2003년 5월 6일자에는 "청와대 '전문가 對 운동권' 두 날개"라는 제목 아래 수석·보좌관들의 성향을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청와대의 현실을 중시하는 전문가그룹과 이상을 추구하는 운동권그룹이 주요 현안을 놓고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이거나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고 소개하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4·3사건에 관한 대통령의 사과 문제를 꼽았다. 기사 내용 중 4·3사건 관련 부분을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려갑시다." "안됩니다"

지난 달 2일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린 청와대 본관 집현실. 새 청와대 회의 가운데 가장 격렬했다는 논쟁이 벌어졌다. '4·3사건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는 내용의 진상규명위 보고서를 놓고서다. 이 때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보고서가 나오면 제주도에 가 희생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문제는 보고서의 단서조항이었다. 진상규명위의 결론에 대해 군 등이 강력히 반발해 '6개월 안에 새로운 내용이 나오면 보고서를 수정한다'는 조건이 붙었던 것. 재야 출신의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은 "6개월 유예해도 내용은 그대로다"며 제주행을 밀어붙였다.

예비역 3성 장군인 김희상(金熙相) 국방보좌관은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군·경의 입장도 있다. 대통령의 행동은 상징성이 크다"고 반대했다. 결론은 정부의 공식 사과를 미루는 쪽이었다.

이날 대통령은 공식 사과를 유보하는 결정을 내린 후, 오후에는 4·3위원회의 민간 위원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보고서가 6개월 후 확정되면 내년 4월 3일 또는 그 이전이라도 정부의 입장을 표명할 것이며, 내년 4·3위령제에는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편 3월 31일 청와대 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과 사과 유보 방침이 정해졌음에도 4월 2일 또다시 이 문제가 회의 안건으로 올랐다는 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총리와 일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위령제 참석과 사과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는 흔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만일 '전문가 對 운동권'이라는 {중앙일보}의 기사 제목처럼 잘못된 과거를 극복하고 개혁을 위해 진지한 모색을 하는 그룹이 '이상주의에 빠진 운동권'으로 치부되고,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해온 관료집단이 '현실주의적인 전문가'로 평가된다면 '참여정부'의 앞날이 걱정스럽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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