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되지 못한 암초...절절한 귀앓이 하나
섬이 되지 못한 암초...절절한 귀앓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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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詩 한 편> (24) 여 / 박옥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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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미
아직 물속입니다. 이명 앓는 돌 뿌리

당신이 오시기엔 아직은 젖은 시간

물결에 살이 닳도록 아직 바다입니다

솟구치다 갈앉는 내 맘의 무간지옥

울음 만평 파도자락에 부침하는 이 자리

절절한 귀앓이 하나 여태 여기 있습니다

-박옥위, <여> 전문

‘여’는 섬이 되지 못한 암초를 일컫는 말이다. 평소에는 바다에 잠겨 있다가 썰물이 되면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섬.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평소에는 바위섬이었다가 밀물이 되면 바다에 잠기는...   

어느 방향에서 설명을 하든, 잠기고 드러나기를 반복하면서 ‘여’는 제 정체성에 방점 찍기를 거부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건, 원초적인 외로움을 내포하고,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원초적 자유를 갈구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여’는 해녀들의 디딤돌이다. 무언가 발에 닿는다는 사실은 곧, 한 호흡의 산소마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 삶의 저쪽이었던 바다의 바닥에서부터, 고단하고 지친 해녀의 발을 받아 삶의 있는 이쪽으로 떠오르도록 해 주는 곳. 아낌없이 열어주는 ‘여’의 품에서 바다의 딸들은 절망의 바닥으로부터 힘겨운 삶의 한 계단을 다시 오를 수 있도록 욕심껏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어머님의 일터였던 그 곳은 나에게 늘 먼 곳이었다. 이어도의 이미지에 중첩 되어 때론 정확히 길을 안다는 듯 흐르다가, 때론 책임 같은 거 알 바 없다는 듯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그런 막연함이 먼 풍경처럼 찍히는 곳이었다. 

한 가족을 이끌던 세대가 차오르는 시간 아래로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존재 유무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바다에 내리는 달빛 속에서 떠나버린 이들의 눈빛을 보고, 밀물과 썰물의 호흡에 따라 여전히 들고 남을 반복하는 ‘여’의 모습에서도 우린 그 존재를 보지만... 
 
사람들은 빠지고 풍경만 남은 그곳에 다시 원초적 그리움이 새파랗게 얼어간다. 보름달 이울고, 오래 참았던 숨을 뱉으며 머리를 들어도, 하얗게 포말만 달려들 뿐이다. 가끔 갈매기 두어 마리 위로하듯 앉았다 날아간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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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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