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반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한 뿌리 값으로 집 한 채, 배 한 척을 살 수 있었다. 선물거래라는 파생금융시장도 그 때 생겼다. 이윽고 거품이 진정되자 수많은 개인과 기업이 파산했다. 일부 역사학자에 의하면 이것이 단초가 되어 네덜란드는 항해 주도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게 되었다고 한다. 튤립은 꽃이다. 꽃이 집 한 채, 배 한 척과 맞먹을 수는 없다.

암호화폐 비트코인(Bitcoin)은 화폐다, 화폐의 가격이란 환율이다. 연초에 1 비트코인이 미화 1000불과 교환되었는데 지금은 1만8000불이 되었다. 환율이 한 해에 18배로 뛴 것이다. 어떤 화폐의 환율이 이토록 불안정하다면 이는 결제수단으로서는 결격사유다. 지불하는 측은 비트코인 값이 더 오를 경우, 받는 측은 반대의 경우에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 자산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러나 튤립이 꽃이 아니고자 했을 때 문제가 생겼는데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닌 것으로 되려고 해도 무방할까?

블록체인이라는 특별한 장치에서 연유하는 비트코인의 화폐로서의 장점은 분명하다( 8월23일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비트코인 무엇이 특별한가> 참조 ) 발행 국가가 따로 없으므로 그 가치가 국가신용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 은행 또는 우체국이라는 매개기관을 거치지 않으므로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 그리고 해킹이나 오류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이 비트코인의 화폐로서의 장점이다 그러나 기존의 화폐들에 비해 비트코인의 이런 속성들의 가치가 크다면 얼마나 클 것인가?

투기대상화된 비트코인은 이제 그 천문학적 가격상승 못지않게 시장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현재까지 발행된 비트코인의 수량, 약 1700만개에 개당 가격 1만8000달러를 곱하면 시가총액이 3000억달러가 넘는다. 이는 노르웨이의 연간 국민총생산보다 큰 규모다.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화한 비트코인

비트코인의 자산으로서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비트코인 선물시장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달 10일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에 이어 시카고 상품거래소(CME)가 18일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했고 나스닥(Nasdaq)도 새해에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선물거래는 작은 돈으로 큰 수익을 노리는 금융상품이기도 하지만 해당종목의 가격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수단이다.

비트코인 시장에도 소위 '고래'라고 불리는 큰 손들이 있다. 어떤 보도에 의하면 약 100명이 전체 물량의 거의 20%를 쥐고 있다고 하니 1인당 50억달러가 넘는 규모다. 그러나 이들이 이것을 현금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주주의 주식처분 소문은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다. 이들 큰손들에게 선물시장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물시장이 망가져도 선물시장에서 벌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비트코인 현물 가격의 행방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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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기대상화된 비트코인은 이제 그 천문학적 가격상승 못지않게 시장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며칠 전 자동차세를 납부하기 위해 위택스(Wetax) 사이트에 들어갔다. 회원가입을 하려면 인터넷지로 이용약관, 개인정보 제3자 제공동의 등 6개 항목에 대해 동의를 해야 했다. 동의하지 않으면 가입이 안된다고 하여 읽지도 않고 다 동의한다고 답했다. 이베이(E-bay) 등 외국의 전자쇼핑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용자약정' 및 당사의 '개인정보보호정책'을 잘 읽었으며 그 내용에 이의가 없다는 진술을 하게끔 요구한다. 궁금하여 살펴보니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각각 2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다.

분수령이 될 선물 시장의 등장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진술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비단 나만일까? 일일이 진실을 갈구하기에는 인터넷 시대의 정보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러한 문화적 병폐가 우리들로 하여금 무지(無知)에 둔감해 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가 이달 초 시카고 경제인 클럽에서 한 연설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단순한 답(simple answers)을 찾으려는 문화가 아돌프 히틀러를 낳았으며 오늘날 미국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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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카지노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폄하하는 단어 중의 하나다. 그러나 카지노 장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게임의 이름 정도는 안다. 반면 비트코인에 대한 대중의 열풍은 자기가 투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 그것이 하나의 진리가 되어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12월 20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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