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기행(11)]에필로그- ‘설렘’에서 ‘충만한 평화’로10박11일 여정마친 대학생들이 말하는 ‘평화의 섬 제주만들기’

결코 짧지 않았던 11일의 평화기행이 끝났다.
참가자들은 헤어짐의 장에서 서로의 깊은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포옹은 헤어짐의 의식이 아니다. 평화가 생동하지 못하는 한반도의 곳곳을 지나왔음에도, 평화가 결코 무기력하지만은 않다는 확인의 의식이자, 뭔가 꽉 차오르듯 승화한 다음을 기약하기 위한 역설의 의식이다. 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결의이기도 했다.

“젊은이, 평화의 설렘으로 한반도를 만나다” 이번 기행의 모토였다.
‘설렘’으로 출발한 참가자들은 ‘충만’으로 돌아왔다. 대추리 매향리, 교동도 처럼 한반도 평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곳을 지나며 평화는 지당하기만 한 ‘추상’이 아닌, 반드시 애써서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평화는 성찰로부터 ; ‘백배사죄’의 실천에 합의하다

첫 기행지인 소록도에서 죽음과 한의 그늘진 역사를 만났고, 구례와 광주에서는 ‘무고한 죽음’들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은 아픈 역사는 언제나 자연의 시간을 초월해 늘 성찰과 각성의 가르침이 됨을 보여주었고, 참가자들은 그 눈물로 죽은 이들을 초혼하고 소통을 행하였다.

지리산과 새만금의 현장에서 생명의 논리를 경청하였고, 인위에 의한 자연의 헤침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와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체험하였다. 전쟁기념관과 평화박물관추진위를 동시에 접하며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의 분별을 배웠으며, 평화는 내 안에서부터 조직되는 ‘작은 실천’이 중요한 관건이 됨을 받아들였다.

일제청산의 상징처럼 된 일본군 강제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참가자들은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제피해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함께 보듬어야 할 외로운 존재임에 공감하였다. 우리는 그 할머니들께 결코 과거의 일을 듣고자 하지 않았다. 그냥 한데 어우러져 놀았다. 할머니들은 젊음을 빼앗긴 ‘자연의 시간’에 대한 피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는 이 빼앗김과 한(恨)의 깊이가 동일한 피해의 지대로서 아시아 곳곳에서 숨쉬고 있음을 알았다. 아시아교육원 방문 과정은 우리에게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는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하였고, ‘우리’로서의 아시아를 공부하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게 되었다.

▲ 이제 그들은 '평화 바이러스'가 되어 돌아왔다.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평화와 생명의 논리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 곳곳에서 진정한 평화의 갈구를 체득하였고, 일상에서의 이를 위한 실천으로 ‘백번의 절’(백배사죄)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모든 ‘헤침’에 대한 성찰을 나로부터 시작할 것을 합의하였다.  

평화의 섬을 위한 상상력 ; 대학생들이 말하는 ‘평화의 섬, 제주’

대학생 참가자들은 이제 ‘제주 평화의 섬’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다. 한반도 평화 현장에서 체득된 공감은 경제논리가 아닌 국경과 차이의 경계를 넘는 소통의 상징처로서 평화의 섬 만들기에 대한 상상력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를 실천하고 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집에 ‘여기는 평화 바이러스가 가득한 집입니다’라는 문구를 문패처럼 걸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신민영)

“이번과 같은 ‘순례’를 이 곳 저 곳에서, 기왕이면 제주도에서 장려하면, 평화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이고, 그럴 때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는 것 같아요.” (신효주)

“제주가 흔들의자의 안락함처럼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요한 평온 그것이 평화인거죠. 그렇게 제주를 가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매월 ‘평화의 날’을 만들어 평화의 의식을 반복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훈)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들부터 평화로워야 합니다. 평화강좌나 기행같은 것을 도민 모두가 접할 수 있게 ... 남녀노소, 국적불문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공간이 평화의 섬이 아닐까 생각해요” (오문태)

“평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다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교육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김정아)

“평화를 모토로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으므로, 차근 차근 교육과 토론의 기회부터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번과 같은 기회를 정책적으로 확대해 10년, 20년을 목표로 해야 제주가 진짜 평화의 섬이 된다고 봐요” (이미지)

“평화의 섬 제주를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것이죠. 그 후 나 아닌 타인을 그렇게 되도록 이해하고 사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송수영)

▲ 양다림
“ ‘돈’이 지배하는 곳이 아닌 곳으로서 제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행 중에 확인한 것은 일상 어디에도 평화를 헤치는 논리는 폭력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돈의 논리가 그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제주는 ‘돈이 필요없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려면 제주도가 하나의 큰 ‘더불어 숲’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혼자만 나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깊은 관계의 가능성’을 믿고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더불어 숲이 되고 평화가 될 수 있습니다. 깊은 관계의 소통을 할 수 있는 평화교육과 관련 정책과, 프로그램들을 다 같이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  (양다림)

다양하지만 소통할 수 있는 평화

이번 기행과정에서는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 다양한 만남에서 얻은 큰 성과는 ‘다양해도 소통할 수 있다’이다. 우리가 기행과정에서 만난 50여명과의 대화는 모두가 우리에게 차이를 인정하되, 차이짓기에 주목하기 보다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상상토록 하자는 것을 가르쳐 줬다.

평화를 얻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는 논리도, 어쩔 수 없지만 경제를 이유로 자연을 헤치려는 정책도 소통해야 할 대상으로 품어야 한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나로부터의 성찰과 각성이 있어야 한다. 평화는 지고지순한 자기안의 논리가 아닌 어떤 부조리와 악(惡)마저도 나의 죄로 각성하는 백배사죄의 실천부터 배워야 함을 공감했다. 자기만의 평화는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만남과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결국 이는 세상의 평화를 저버리는 것이다.

현장의 주민들, 활동가와 학자들, 피해자 가족들, 한센병 환자들, 죽음을 돕는 호스피스, 기자, 다큐멘터리 감독들, 생각이 다른 노동자 ... 우리가 만난 이 모두는 소통이 평화이고, 소통을 위한 자기성찰이 평화의 전제가 됨을 우리에게 일관되게 암시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평화를 위해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매우 난해한, 그렇지만 근원적인 질문이 되었고, 기행의 끝에서 ‘꽉 차오르는 충만’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다음’을 향한 여정의 시작

기행은 끝났지만, 기행으로 얻은 ‘충만함’은 새로운 계획들로 연결되고 있다. 우선 참가자들은 조만간 1박 2일의 평가회를 통해 그간의 공감을 다시 나누고, 이 충만함을 어떻게 새로운 여정으로 조직할 것인가를 의논할 것이다.

아이디어들도 나왔다.
인터넷 평화카페를 통해 일상적인 만남과 더불어 각종 평화소식들을 나눌 계획이다. 때론 국내외 평화인사, 평화서적들과 만나며 실천할 수 있는 평화의 지평을 넓히자는 의견도 대체로 공감되었다. 인터넷 카페 개설뿐만 아니라, 누구나 드나드는 공간으로서 ‘평화방’도 만들어 운영할 계획에 있다. 그리고 기행에서 얻은 충만과 지혜를 일상으로 연장하기 위한 자신만의 계획들도 만들어 공개하고 실천하기로 했다.

아시아와 평화를 위한 네트워크 만들기

또 다른 성과도 있다. 아시아 교육원에서는 조만간 개원이 이뤄지면, 예컨대 아시아 여행의 출발과 도착을 제주에서 하는 식으로, 제주가 ‘아시아의 창’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계획을 같이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한홍구 교수와의 만남에서는 평화박물관 추진을 통해 평화의 작은 거점들을 만드는 일에 함께하기로 하였다. 제주 자체가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평화의 실천을 보장해야 한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가 생각하는 방향은 바로 이러한 ‘작은 평화의 거점’을 곳곳에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 능력있는 기획 등으로 될 일이 아니다. 함께 정성을 모아 나가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만드는 과정이 곧 박물관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제국주의의 가해자로 표상되는 일본에도 원폭피해가 있다. 이 피해의 진상에 다가서고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사진전 같은 일들도 작지만 함께하는 평화박물관 만들기의 과정이 된다. 제주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다.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이제 ‘평화 바이러스’가 되어 돌아 왔다.
평화의 현장을 직접 찾아 느낀 참가자들 자체는 이제 평화의 네트워크가 된 것이다. 또 참가자들은 각자 평화바이러스로서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 네트워크들이 모여서 아시아와 소통 할 것이다.

우리의 다음 여정은 아시아로 향할 것이다. <끝>

<이번 기행에 도움을 준 한국관광공사,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서귀포남제주 신문, 아산 렌트카, 강술생 화백과 여행 과정에서 현장을 안내하고 시간을 내어 대화에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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