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막장드라마 식 사학정책의 주역들

도둑놈의 회초리

벌써 한 해가 지나간다. 올해 정유년을 마감하는 고사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됐다.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란다. 행사를 주최한 교수신문은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시민들이 촛불을 들면서 나라를 바로 세울 기반이 마련됐다”는 것을 선정이유로 들었다. 지금까지 새 정부의 적폐청산이 반년 이상 끌고 왔음에도 구악의 잔존세력들의 당초 예상과 소망과 달리 국민들의 ‘피로감’이 전무한 것은 지난 십년간 켜켜이 쌓여왔던 사악함을 척결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의지의 단호함을 입증해준다.

그러나 지난 두 차례의 정권에서 자의든 타의든 서민과 약자들의 삶만 옥죄는데 한몫했던 인물들은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 등 모든 분야에서 요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금 이들의 행태와 비교하면,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고 말했다가 잘렸던 지난 정권의 한 교육부 고위직 공무원의 망발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가장 반민주적이고 위법적이었던 정권의 주역에 가까웠던 구여권의 세력들이 새 정부의 적폐청산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오히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외치는 민주투사가 되는 ‘어이상실’의 현상은 말 그대로 “도둑놈이 도리어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주 판 블랙리스트

필자가 올해 한 해 동안 경험했던 제주사학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세 분의 교수협 교수들이 억울한 해직을 당하면서도 공적 기관들로부터 아무런 공적,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모습은 우리지역이 촛불의 패러다임인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변화의 물결로부터 완전한 무풍지대로 머물러 있음을 입증한다. 그분들의 해직은 가히 제주 판 ‘블랙리스트’ 사건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교수협 교수들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업적평가는 사실상 그들의 해직을 노린 보복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도감독기관인 제주도가 애써 외면하고 제주법원이 법적 정당화를 부여했던 것은 진실과 정의가 실종된 제주판 ‘혼용무도(昏庸無道)’에 다름 아니었다. 

교수협 교수들의 ‘줄줄이’ 해직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도내 사학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원희룡 지사에게 묻고 싶다. 똑똑함이라면 자타가 인정하는 원 지사가 교수들의 석연찮은 해직이 그동안 도내 여론을 들썩였던 교수협의 숱한 성명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과연 헤아리지 못했을까. 필자는 몇 년 전 졸업식에 초청귀빈으로 참석했던 원 지사가 식장을 먼저 나서다 항의시위 중인 한 해직교수와 직접 마주쳤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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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공직자의 기계적인 중립

해직교수가 “지사님, 제주한라대학교의 잘못된 부조리들을 확실하게 관리 감독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자, 원 지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이 감사를 받고 있는 중이죠”라는 아리송한 선문답 같은 답변을 던지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와의 대면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따른 ‘마지못한 마주침’이었고 의미심장한 미소는 멋쩍은 ‘썩소’에 불과했다. 그의 숨은 진심은 나중에 열린 도의회에서 교수협 교수들에 대한 학교의 탄압에 따른 도의원의 질의에 대해, “솔직히 골치 아프다. 학내분규에 대해 어디 한쪽을 편들 수 없어 매우 조심스럽다”는 그의 무책임한 답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울어진 법의 저울

그의 눈에는 엄청난 일신상의 협박과 희생을 감수하며 사립대학의 민주적 개혁을 위해 분투해 온 교수협 교수들의 노력이 봉급 몇 푼 더 받기 위한 ‘밥그릇’ 싸움쯤으로 보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비횡령과 입시비리 등 심각한 부정행위를 범한 사학족벌처럼 교수협 교수들도 마찬가지의 중대한 범죄라도 저질렀다는 것일까. 그동안 수차례 도내여론을 들썩였던 많은 성명들과 보도들을 단 한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읽어봤는지 의문이다. 흔히 무능함과 무책임, 그리고 태만함을 감추는데 효율적이고 편리한 수단으로 상용되는 ‘영혼 없는 기계적 중립’은 마지막 교수협 교수까지 잘릴 때야 그칠 것인가. 쌍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더 이상 중립을 설 수 없을 테니.

반면에 ‘블랙리스트’ 식 보복성 업적평가를 총장의 재량권이라며 1, 2심에서 사학의 손을 들어준 지역법원은 사학의 부조리한 전횡에 법적 면죄부를 부여했다. 3심까지 똑같은 판결이 나왔으니 적어도 법적 테두리 내에서는 구원의 손길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국정농단과 댓글공작의 주역들에게는 갖은 해괴한 논리로 이전의 결정을 번복하며 구속을 풀어주는 특별한 휴머니즘을 베풀어준 사법부. 민심과 따로 노는 그들이 꿈꾸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슈퍼 갑만이 사는 세상”이 아닐까. 영원히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한 쪽으로 기울어져만 가는 법의 저울은 이제 저잣거리 푸줏간에서도 쓰지 못할 정도다.

도의회의 막장 드라마

그리고 지난여름 대학평의원회 개정과정에서 제주도의회의 일부 의원들이 보여준 막장 드라마는 또 어떤가. 대학평의원회는 대학의 국회에 해당되는 기구로서 사학의 최고운영자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법으로 규정된 최소한의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의회는 자신들이 직접 문제의 사학에 대해 요청한 감사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대학평의원회 개정안에 대해 사학의 자율권을 핑계로 예전보다도 오히려 훨씬 후퇴한, 사학 운영자에게만 유리한 ‘악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학재단의 사적 영리주의로 교육이 위기에 처한 현 상황에서 사학의 자율권이라니, 아직도 문제의 본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학조례 입법권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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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 해를 마감하며 마주한 겨울. 올해 따라 유난한 추위를 견디며 지낼 수 있는 것은 겨울 다음에 봄이 올 것이라는 확인된 믿음 때문이리라. 그러나 시대적 변화의 도도한 흐름에도 아직도 혼용무도에 머물러 있는 공직자들이 있는 한, 제주의 사학은 봄이 없는 영원한 ‘동토의 왕국’으로 존재할 것이다. 내년의 지방선거에는 제비가 제주사학에도 봄소식을 전하려나. 암담하고 막막할 따름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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