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53. 파스칼의 게임이론과 밑져야 본전이론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누군가 나에게 모르스 부호 같은 신호를 보내왔다.

둔감한 나는 이 절박한 경고 신호를 묵살해 버렸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의 93.4%가 소셜미디어에 이런 절망의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자살자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이나 냉탕(지옥)과 온탕(천국)을 오가며 고뇌하다가 마침내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다. 믿는 사람(신자)이 죽었다. 내세가 있다면 그는 천국에 간다. 내세가 없다면 그의 존재는 사라져 무(無)가 된다. 믿지 않는 사람(불신자)가 죽었다. 내세가 없다면 그는 무가 된다. 그러나 내세가 있다면 그는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맛봐야 한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뜻이 신자는 사후(死後)를 염려할 필요가 없지만, 불신자는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은 다음이 더 걱정이다. 이 같은 불신자의 딜레마를 파스칼은 ‘게임이론’으로 설명했고 필자는 이를 ‘밑져야 본전이론’이라고 말한다.

신자의 경우, 내세가 있으면 본전을 뽑고도 남는 장사를 한 셈이고 내세가 없어도 손해는 없으므로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 거다. (생전에 하느님을 믿으면서 들인 돈, 시간, 정성은 지상에서의 안식과 평강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줄리앙은 교회 복도의 벽에 목탄으로 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았다. ‘영원한 기쁨이나 혹은 지옥에서 영원히 끓는 기름을 생각하면 60년간의 시련쯤은 문제도 아니다.’”

고해(苦海)요, 화택(火宅)인 이 고달픈 인생에서 60~80년의 시련을 이겨내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성서(요한계시록)가 묘사하는 지옥은 죄인이 유황불에 타오르는 연못에 던지우고 세세토록 밤낮 고통을 당하는 곳이다. 불교의 무간지옥이나 아비지옥도 끊임없이 지독한 고통을 받는 곳이다. 참람하도다! ‘매일 화형 당하는 사람들’의 아비규환으로 아수라장이 된 지옥을 연상하는 건 끔직하다.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인가, 신을 믿어서 천국행 티켓을 거머쥘 것인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은 내 의지와 결단에 달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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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ëronymus Bosch)'가 그린 <쾌락의 동산>의 일부. 아담과 하와 이후 타락한 속세를 그렸다. 사진=위키미디어. ⓒ제주의소리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 것들뿐인 이 세상에서 현명하게 산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지혜의 으뜸은 신을 아는게 아닐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어떤 초자연적인 절대자가 있다는 걸 분명히 아는 게 지혜의 출발이자 귀결점이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깊이 묵상하다보면 언젠가 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이란 결국 신과의 대화이다. 예배나 기도, 고해성사도 신을 만나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다. (신이 침묵할 때도 있다.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흔히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나는 묻는다. 

“네가 살아오면서 네 뜻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더냐?”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 신의 뜻대로 돼간다. 나는 불혹(40세)이 되면서 운명론자가 됐지만 운명, 팔자, 섭리… 다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운명론과 사촌지간인 예정설은 “모든 사건은 자유로운 의사나 행위까지도 포함하여 모두 미리 결정돼 있다”고 한다.

혹자는 운명에 도전해 운명을 바꾼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런데 운명을 극복하는 것도 사실은 운명이다. 모든 게 운명이고 예정돼 있다면 애써 노력할 필요가 뭐 있느냐,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면 될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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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다. 사람이 할 바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게 도리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 왔다.)

2018년 새해에는 핵미사일 위협도 없고, 더 이상 청산할 적폐가 없는 ‘내 마음의 샹그릴라’로 떠나고 싶다. 이 세계의 종말이 올 때, 나는 가장 치욕적으로 파멸하고 가장 순수한 상태로 징벌을 받으리라.

오! 고단한 생이여, 어서 오라!!! ……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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