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50) 제주학연구센터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 쉰 번째 순서는 ‘제주학’과 제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12월 28일 오후 4시30분 제주학연구센터(제주시 동광로 51 3층)에서 ‘제주학이 무엇인가? 우리는 왜 제주학을 연구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탐라순담을 진행했다. 

2011년 제주연구원 부설로 문을 연 제주학연구센터(이하 센터)는 제주의 정체성 연구를 위한 거점 연구기관으로 민간 연구단체와 연구자를 중심으로 기획하고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아왔다.

제주학 관련 연구사업, 제주학총서 발간 지원사업, 아카이브 관리운영 사업, 제주어 중점 연구사업, 각종 학술대회 사업 등을 추진해왔던 센터는 지난해에 박찬식 센터장과 현혜경 전문연구위원 등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운영에 탄력이 붙었다. 

이 날 탐라순담에는 박찬식 센터장과 현혜경 전문연구위원이 둘러앉아 ‘제주학’과 ‘제주학연구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센터가 문을 연 지 7년 남짓. 그 사이에 제주학으로 쏠리는 관심도, 센터의 위상도 달라졌다. 세간에서 센터에 거는 기대치도 높아졌다. 이 시점에서 묻는다. 제주학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왜 지금 제주학에 주목해야 하는가? 최근 들어 제주와 제주인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제주다움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잦아졌다. 

민속, 역사, 언어를 제주학이라고 여겼던 기존의 분위기도 근래 제주도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면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민속, 언어 등 과거부터 거슬러오는 통시적인 축과 현재 제주가 처한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동시적인 축을 함께 지녀야 한다는 것.

공간 범주를 행정 단위로 보던 것에서 벗어난 ‘지역 연대’도 필요하다. 센터의 2차 계획(2017년~2022년)에서 표방하고 있는 ‘트랜스 로컬’(Trans Local)은 중앙 중심적 일방 사고에서 다차원적 관계 중심 사고로 바뀌는 지역사회, 지역학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해양 문화라고 하면 제주도뿐만 아니라 쿠로시오 문화권을 아우르거나 제주와 비슷한 세계의 섬들 하와이, 마요르카,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 비교 연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독립’도 향후 과제로 제시돼 있다. 이는 센터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제주연구원과 제주학연구센터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물음의 답이기도 하다. 제주연구원이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라면 제주학연구센터는 기초 연구를 하는 곳이다. 기초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면 정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그 동안 센터가 중점적으로 구축해온 온라인 아카이브를 오프라인에서 시민 누구나 드나들며 이용할 수 있는 ‘라키비움(Larchiveum)’ 공간을 구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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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 센터장과 현혜경 전문연구위원. ⓒ제주의소리

김태연 제주의소리 기자
: 오늘 이 자리에서 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제주학이라는 것이 정확한 학계의 명칭은 아니나 제주학 연구자로 사는 건 어떠한지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눠보려고 한다. 지난 2011년에 제주학연구센터가 문을 열고 지난해에 박찬식 센터장이 외부에서 왔다. 전문연구위원으로 한혜경 박사도 왔다. 와보니 밖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다른가?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 센터장
: 온지 2년 다 되어 간다. 예전에도 개인적으로는 몇 번 전문 계약직으로 제주도청이나 4.3 진상보고서 쓰면서 해 본 경험이 있다. 그 밖엔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다. 조직적인 일을 하다 보니, 부담감이 좀 있다. 

김태연 
: 센터장께서는 때때로 제주학연구센터와 협업하기도 했다.

박찬식 
: 원래는 센터가 처음 출범할 때, 문순덕 박사와 함께 기본 계획을 짜는데 역할을 했다. 제주학연구센터가 2011년에 문을 열었는데 당시에 우근민 전 지사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다. 오기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김태연 
: 현혜경 박사는 어땠는가?

현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
: 여기 온 건 2년 정도 다되어간다. 영국에 4년 정도 있다가 제주로 돌아왔다. 그 사이의 제주 변화에 놀랐다. 밤에 집에 가는데, 우리 집을 못 찾아서 놀랐다. 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시내는 나가지도 않는다고 거의 서울시 다 됐고 한다. 석사도 여기에서 했고 제주도 곳곳을 누비면서 다녀서 모르는 길이 없었는데, 이제는 네비게이션을 켜고 다녀야 하는 점에서 당혹감이 컸다. 센터에 입사를 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제주학연구센터’ 관련 검색어에 내 이름이 뜬다. 박찬식 센터장과도 연동돼서 나온다. 사람들이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초반에 들었다. 
우리가 공공기관이어서 아카데믹한 연구도 있지만, 행정 프로세스도 있다. 순환 고리를 이해하는데 1년 정도 걸렸다. 그 과정을 익히는데 전념을 했고, 또 익히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당면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인력이 더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태연 
: 지금 몇 명이 센터에 있는가?

박찬식 
: 우리가 부설기관이라서 현재로는 불안정하다. 공고를 통해서 들어온 인력이 7명이다. 이번에 추경 예산이 있어서 충원할 예정이다. 11~12명은 확보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10명 넘으면 나름대로 독자 기관으로 갈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혜경 
: 지난해에 센터장이 왔다. 제주연구원 입장에서 보면 외부의 인력이 들어왔다. 기대하는 것도 굉장히 크고, 도정에서도 기대하는 것도 크고, 그래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긴 했다. 비상근 하는 연구원들과 협업을 최대한 활용했다. 대충 200명 정도 되었다. 제주연구원 규모를 생각하면 이들 덕분이었다.

김태연 
: 이른바 대오를 갖추는 시기인 것 같다. 

박찬식 
: 이제 6년차이다. 2차 기본계획에서 밝혔듯이 기반이 조성되었다. 제주연구원의 부설기관으로 처음 설립할 때는 당장 독립기관으로 만들기가 어려워서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인큐베이팅하자고 했다. 그 기간이 5년이었다. 문순덕 박사가 책임연구원과 센터장으로 겸직을 했다. 겸직과 외부에서 들어와서 센터 조직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제주연구원의 도움은 받지만 색다른 제주학연구센터의 갈 길과 발전방향을 잡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제주연구원과 제주학연구센터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한다. 
제주학 자체가 정체성을 따지는 학문이긴 하지만, 이게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불어 일으킨다. 우리 자신도 명확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인간과 사회, 자연 대 자연, 인간과 연관된 자연 등 제주사람으로서 문화를 따지는 학문이라고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지역학이나 제주학의 개념은 아직도 논쟁거리라서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민속, 역사, 언어 이것만 제주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만이 아니다. 현실사회가 급변하고 있어서 이것이 더 눈앞에서 크게 다가온다. 제주도는 경관적 측면도 다양하다. 이것 또한 제주학에서 커버해야할 대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현혜경 
: 사실은 하나의 학문이 되려면 학문적 대상이 명확히 있어야 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어야 한다. 행정구역으로서의 대상으로 융복합적인 방법론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하면서 지역학을 만들어가자고 설정이 되어있다. 
지역학이라고 하는 것에서 ‘지역’은 정치적인 언어다. 외국 나가서는 아시아 출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한다. 서울 가서 애들 모였다고 하면 나는 부산 출신, 제주출신 이렇게 간다. 제주에서는 서귀포 출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역어 다층적이고 정치적인 언어다. 경제권역으로 묶어서 행정 영역에서의 선거와 다르다. 남도문화권이라고 하면 광주만이 아니다. 제주의 경우 쿠로시오권라고 하면 제주만 가지고 표시할 수 없다. 지역이라는 말은 굉장히 다층적인 언어다. 그런 점에서 지역학이 공히 질적으로 전환하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이 로컬과 로컬리티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로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제주학도 그 지점에 와있다. 그런 점에서 섬만의 제주를 연구한다면 단면적인 폐쇄적인 시각이 되어버린다. 다층성에서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제주학이 향후에 할일이라고 본다면 내가 볼 때는 제주 로컬과 로컬리티 연구를 반드시 해야 하고, 로컬에 속한 사람들의 아이덴티티를 연구해야 한다. 

박찬식 
: 그 부분은 공간적인 이야기 인 것 같다. 결국 다 같이 가야 한다. 좌표로 보면 X축과 Y축이 있다. 공간을 X라인으로 이야기 하면, 시간적인 것은 Y축이다. 민속이나 언어 등 과거의 것부터 거슬러 올라온다. 한 동안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제주학이라고 했던 것이 크다. 현재는 현재 문제의 덩어리가 크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미래의 비전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학 한국학도 그렇지만 동시적이고 통시적인 것이 제주지역에서의 지역학의 제주학의 가치는 복합되어 있다. 학문적 범주가 엄청 커질 수도 있다. 

현혜경 
: 그런 점에서 예를 들면 이런 문제가 어떻게 나타났냐고 이야기할 때, 제주도 개발사부터 지금을 이야기 하듯이 제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들이 산재되어 있어서 선학들의 계보학을 세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제주학이 이어지려고 하면 그런 부분들도 있어야 한다. 

박찬식 
: 제주학 선구자라고 하면 석주명, 현용준 등이 있다.

현혜경 
: 여러 앞선 제주 연구자들에 대한 계보를 잘 세워야 한다. 

김태연 
: 제주가 급변하는 기점을 이야기 하자면 2012년 즈음을 집을 수 있다. 제주학이 과거에서 정체성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급변기 이후부터는 동시대에 펼쳐지는 것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그 지점에 사회학과 사학이 합쳐져 있는 듯하다.

박찬식 
: 2차 5개년 계획의 슬로건이 ‘미래비전 창출하는 지역 시민 연대’라고 되어있다. 지역 연대가 지역 내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트랜스 로컬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만 그치지 않고 해양 문화, 쿠로시오 문화권에서의 위치와 세계의 다양한 지역 중 제주와 비슷한 유명한 섬들. 하와이나 마요르카,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 비교도 해야 한다. 대륙과의 연관성 이런 것들에 대해 포부는 다양한 모든 지역과의 연결을 꾀해 보고자 한다. 1차 계획에서 ‘지역을 넘어서 세계로는 간다’고 한 것은 추상적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서로 연대해보자는 것이다. 제주도 안에만 갇혀 있지 말자. 예전 제주 고유의 특수성에 매몰되었다는 표현은 그것만이 제주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그걸 넓혀가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의 종합이다.

현혜경 
: 여기서 일하며 두 가지를 목격할 수 있다. 하나는 시민권이 성장했다. 시민권이라고 하면 시민들의 권리인데, 대부분 정치적 권리에 머물러 있다. 선거권 투쟁도 하고, 교육 할 수 있는 보통 교육 권리가 달라고도 했다. 보통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보면 대졸자들이 80%가 넘는다. 사실 지금 세대별로 보면 4~50대들은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의 대학교육 받은 분들이 포진되어 있다. 정치적 권리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권리, 더 나아가서는 지식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역사를 스스로 쓰겠다고 한다. 시민권 성장했다는 하나를 분명하게 목격했다. 
또 다른 하나는 지역의 문제를 중앙을 통해서 다 해결되는 문제로 봐왔다. 안되면 국가를 통해서 하고 이제 지역의 문제가 신자유주의 시대니 여러 슬로건이 있지만 이제 지역의 문제를 국가를 통하지 않고 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어떤 상황이 우려되는 점은 도시 혹은 지역의 경제가 국가 차원을 넘어서 지역 간의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 어디서 제주도 같은 문제를 겪을 수 있겠는가? 제주도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의 예를 들어서 다른 국가에서 사례가 있다고 하면 그 것을 가지고 우리 문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마요르카, 하와이 혹은 일본의 어떤 지역을 다시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로컬과 로컬리티를 연구한다. 

김태연 
: 1차 계획과 2차 계획이 포괄하는 기간이 약 10년 정도다. 1차에서 2차로 넘어오는 동안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었고,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해가 된다. 두 분의 이야기에서 전공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센터장께서 4.3 등 지역에 관한 연구를 계속 해오셨다. 어떻게 사학 중에서도 제주에 대한 연구에 입문하게 되었나?

박찬식 
: 제주대학교 사학과 1기로 들어갔다. 대학 다닐 때, 문화유적 답사도 다녔다. 대학원에서도 언젠가 제주도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었다. 석 박사 다닐 때만 해도 로컬 히스토리라는 것은 교수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민족사, 국가 위주의 역사 인식만 강조해왔다. 최근이 4.3 교과서 집필 기준안을 가지고 오랜만에 선배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선배도 제주출신이긴 한데 이분이 생각하는 지방사와 로컬 히스토리가 다르다. 이 선배는 4.3 과정에서 제주 도민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제주사람들이 공동체적인 자치 관념 묵살 당했다는 관점이다. 오히려 우리는 지역의 자율성 공동체적인 정서를 강조하는데, 선배 교수는 계속 4.3의 구호였던 민족 통일, 제주 도민의 민족 구성원으로의 편입과정 이런데 더 관심을 둔다. 큰 차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처음에 몰랐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지방자치제 이뤄졌다. 이미 대만과 오키나와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그 지역의 사람들의 눈과 생각으로 지역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로컬리티 관점이다. 4.3공부 하면서 인식도 어느 정도 잡혔는데, 이게 곧 지역학의 중요한 과제이구나 싶었다. 그게 기조를 이루고 있다. 역사 공부하는 게 결국은 제주학에 몸을 담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박사과정 논문을 쓰고 난 다음에는 맘껏 제주도 역사들을 공부했다. 박사 이후로는 일부만 빼고는 제주도 역사와 관련된 글을 적었다. 마지막으로는 4.3연구까지 했다. 일반 중앙의 직속에 젖어 있는 그런 관점하고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학연구센터도 그런 방으로 끌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중앙의 관점이 아닌 지역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쪽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태연 
: 1901년 제주 민란 연구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 

박찬식 
: 내가 아는 사람들은 반제국주의 민주항쟁으로 결론을 끝내는데, 나는 그걸 도발적으로 적었다. 내 글을 도발적으로 인식 못하고 있다. 나중에 후학들은 평가할 것이다. 현경 선생님강창일 선배하고 입장이 다르다. 현기영 선생님도 자신의 작품을 로컬리티라고 하지만 잘 읽어보면 로컬리티가 아니고 중앙의 시선이다. 강창일 선배는 민중사라고 하지만, 우리 민중사 인식이 패권주의 젖어있는 민중사이다. 유럽은 그것이 아니다. 저변으로 들어간 민중사다. 우리는 예전에 모든 민중사가 운동권화 되듯이. 권력 쟁취용의 민중사다. 민중사문화사로 읽어야 한다. 1901년 민란을 문화사를 봐야 한다는 인식이다. 

김태연 
: 그래서 재밌게 읽었다. 현혜경 박사는 사회학 전공이신데, 어떻게 제주학으로 관심을 넓혔나?

현혜경 
: 사회학은 처음에 왜 들어갔는가 하면 고등학교 때 사회선생님이 너무 멋있어서 선생님처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했더니 사회학을 추천했다. 알고 보니 행정학이었지만. (웃음) 대학교 2학년때까지만 해도 별로 사회학에 매력을 못 느꼈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스스로 하는 질문이 많은데, 그것에 질문에 대한 해답 들을 구하지 못하고 대학교 그만둘까 하는 찰나에 3학년 초입에 강의 듣는데 사회학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면 사회학 공부를 해볼까 했다. 그런데 사회학이 어렵다. 특히나 방법론적인 걸 많이 하는 학문이다. 대학교 때 다 해결이 안 됐다. 한편으로 의례 쪽에 대해 많이 쓰는데, 우리 집이 크다 보니 경조사가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사는 왜 지내는 거야’ 이런 관심에서 시작해서 제사 연구하다보니 제사안에서도 4.3을 목격하게됐다. 4.3을 하다 보니깐 문화사에 대해서 궁금하게 되었다. 그것들을 하다 보니 대게 제주학을 연구하신 분들이 자료를 수합하는 글들을 많이 그 당시에 쓰셨다. 그것을 좀 더 분석적으로 된 글이 없나 살펴보다 보니, 나 스스로가 방법론적인 고민을 가지고 제주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전환점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제주 연구도 하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특별한 계기가 있기 보다는 삶속에서 스며들면서 하게 된다. 처음 시작은 집안의 의례가 많다는 것, 거기서 생각 궁금증을 사회학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하는 것이 하나였다.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두 번째는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 같은 것이다. 제주 사람이라서 유별나게 받는 질문들이 있다. “사투리 해봐.” “제주 여자면 너도 해녀냐?” 그러면 해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막히게 된다. 압권은 “제주의 여자가 많더라. 족은(작은) 각시가 많더라. 너도 족은 각시야?” 하는 질문들이다. 호기심에 던지는 질문인데, 가만히 들으면 비하 발언 같기도 하고, 혹은 저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에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방송에서 <위키드>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오연준이 노래를 잘 불렀다. 그런데 그 애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제주소년’ 오연준이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천상의 목소리 누구, 뮤지컬 신동 누구 등 재능을 빛내는 수식어가 붙는데, 오연준에게만큼은 지역명이 붙는다. 쟤의 재능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수도 없이 넌 누구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한다. 

김태연 
: 탐라순담을 해오면서 자꾸 제주의 정체성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본인이 존재감이 없더라도 밖에 나가서는 대접을 받으면서 존재감이 부각되고, 그러면서 다시 고향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제주학연구센터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주학을 연구를 한다는 것이 제주인의 정체성을 묻는 과정인데 최근 들어서 곳곳에서 이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이주민 급증과 개발 붐 등과 맞물려서 더욱 그렇다. 지역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다. 제주인들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해야겠다. 두 분의 관점에서.

박찬식 
: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학문에서 진리추구, 진실을 탐구한다. 그것하고 다른 게 없다. 정체성 자체, 지역학의 정체성이라는 용어를 지역학 연구의 최종목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체성이 탐구과정에서 본질이 담겨 있어서 결국 공동체 지역안의 사람들에 대한 탐구를 하기 때문에 사람 개별 탐구도 있고 집단적인 사회 탐구도 있고, 자연도 탐구 할 수 있다. 환경 속에서 사람 기질 같은 것이 배태가 된다. 어찌 보면 정체성 연구 자체가 제주학 연구 본질 목표다. 왜냐하면 제주 사람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말한 대로 뭔가 특색 있어 보여서 언어나 역사가 특색이 있어 보여서 혹은 민속 같은 것이 특이해 보여서, 색달라서 연구해야겠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어느 지역에 가나 다 특성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과 연관된 모든 걸 탐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왜 관심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한국의 역사과정이 오래된 왕조 역사와 일제 통치, 해방 이후의 남북 분단, 군인들의 정치 속에서 자기의 자율적인 인식을 못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자기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발전하기도 하지만, 경쟁 속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 그 속에서 대안으로 지방자치가 나왔다. 지방차지가 이뤄지는 속에서 제도적으로 우리는 되돌아보게 되었다. 선택적으로 국제 자유도시라는 개방적인 표현을 내건가 대신에 특별 자치를 것을 내걸어서 다른 지역보다 더 지역의 정체성을 따져보게 된 계기가 있다. 

김태연 
: 제주를 둘러싼 여건도 바뀌고, 센터의 위상도 바뀌었는데, 이중적인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첫 번째는 제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제주어를 쓴다거나, 정체성을 내건 행사가 많아졌지만, 깊이는 없어졌다. 반대로 제주학을 학문적인 영역으로 인식하는 이중적인 시선이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나가야 하는가?

박찬식 
: 우리 센터의 고민이다. 대학과는 다르다. 대학은 연구하고, 교육이 중심이다. 연구한 자산을 가지고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전문 연구자를 양성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오름을 하나만 하더라고 전문가만 다닌다고 했는데, 이제는 박사라고 붙여도 좋을 만큼 오름에 대해서 잘 아는 탐방객들이 많이 생겼다. 역사 유적도 그렇고 제주어의 같은 경우에도 제주어보전회라고 상당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에게 ‘아마추어니깐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 우리한테 계몽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저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탐구하고 있다. 저변의 영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센터 같은 공공영역들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정책적인 면도 있고, 요구되는 바가 많다. 한 편으로는 대학 연구기관 같이 연구할 것이냐? 연구라는 것도 용어가 거북하다. 너무 전문적인 사람들만 모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좌도 개설하고 시민들이 일기 쉬운 책으로 만든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그런 네트워킹도 하겠지만, 진짜 아주 어려운 전문영역에 있는 기초자료들을 많이 다양하게 모아들어서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장차에는 좀 더 대학이 하기 힘들다. 공공기관의 밑바닥 작업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기초자료들을 모아들여서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번역하는 등 이게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전문적인 자료를 가지고 접할 수 있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1차 작업이 다. 나머지는 연구 하면 대중화 작업도 있겠지만 자유의 대중화가 제주학 센터의 큰 과제라도 생각한다.

김태연 
: 2차 계획 이후에는 독립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이다. 제주학연구센터가 독자기관으로 서기 위해 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만 이야기 한다면? 

박찬식 
: 일단 현실적으로 이야기 하면 인력과 예산이다. 해보고 싶은 것은  오프라인 아카이브관이다. 온라인은 개설해서 좌혜경 박사가 열심히 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 오키나와 가서 충격을 받았다. 현립자료관이 있다. 중국에는 어딜 가나 기본적인 자료를 갖춘 곳이 있다. 우리는 해봤자 국가기록원이다. 이마저도 행정 문서를 취급하기에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제주학과 제주의 문화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모르는 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자료를 모아놓은 공간이 필요하다. 라이브러리 아카이브 뮤지엄을 합친 ‘라키비움(Larchiveum)’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제주학연구센터는 아니고, 제주학--원 이렇게 격상을 해야 될 것 같다. 독립 공간으로 거기 들어가는 콘텐츠 기초자료에 대한 수집 정리 작업을 다루는 것이다. 이것들이 이뤄지기 위해선 독립이 되어야 한다. 
  
제주연구원과 질적인 면에서 혹은 내용적인 면에서 상당히 스펙트럼이 다르다. 우리는 제주연구원의 일을 침해 하지 않는다. 아직은 헷갈리는 사람도 있지만, 제주학연구센터가 차별적인 일을 하다보면 앞으로 10여년 정도 지나면 제주연구원과 뚜렷한 구분을 갖는, 제주학에서 서로 상보적인 기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제주연구원 못지않은 제주의 특색 있는 공공연구기관이 될 수 있다. 

현혜경
: 상보적이게 된다면 아주 커다란 시너지를 내게 된다. 어떻게 보면 보상되는 그림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제주학연구센터, 제주연구원 이러면 이름이 같으니깐 비슷하게 본다. 

사실은 요새 전국의 신흥 개발연구원, 발전연구원들이 ‘발전의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어떤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나’고 해서 이름을 바꾸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절반만 바꿨다. 제주는 이름 바꾼 경우이다.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제주연구원으로 이름 바꾸니깐 우리에게 질문이 온다. 제주연구원이나 제주학연구센터 왜 다르냐, 같이 제주를 연구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질문은 거시적 관점이다. 제주를 연구하는 단체가 우리만 있지도 않고, 자연 연구하거나 신화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더 기초적인, 아카데믹한 면이 있다고 하면 제주연구원은 정책 연구에 포커스가 있다고 말한다. 제주와 관련된 아카이브나 이런 것들의 토대를 잘 닦아 놓으면 상보적인 효과가 확실히 일어날 것이다. 정책이라고 하는 것도 단순히 그 당시의 뭐만 보고 짜깁기할 수 없는 것이다. 계보학적인 어떤 흐름도 보고 분석도 해야 한다. 그래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과도기라서 그런 질문들을 종종 듣는다. 

정체성 연구는 제주학의 정체성으로 연동될 수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말하자면 정체성 연구는 지속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요즘 아이들에게 조선시대 정체성을 가지고 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것처럼 시대, 공간마다 다른 정체성이 있다. 그래서 정체성 연구는 지속적으로 쌓아가면서 해야 한다. 최근에 정체성 질문이 많아졌다. 제주인의 정체성이 뭐냐가 아니라 왜 이제 와서 제주인의 정체성 이야기를 하냐 이거다. 시민들이 그런 질문을 다시 돌아보는 수준에 도달했다. 시민권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것과 연관해서 두 번째는 ‘제주다움이 무엇인가’이다. 김 기자는 제주다움이 뭐라고 생각하나?

김태연 : 그걸 알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다.

현혜경 
: 제주에 관련된 영상이나 이미지를 떠오르라고 하면?

김태연 
: 바다가 떠오르고 돌하르방, 해녀 등등이 떠오른다. 

현혜경 
: 사람들이 자연 풍광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 한다. 성산일출봉 그 다음에는 감귤 풍경이다. 감귤 풍경이라는 것이 뭐냐? 혹은 성산일출봉이 뭐냐고 물었을 때 떠오르는 인상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일출봉이 우뚝 서있는 풍경, 여러 상가들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떠올리는 그림에서는 상가들의 그림은 없다. 상가들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다. 감귤 풍경 하면 제주도 현무암 돌담, 돌하르방 초가집이 같이 나온다. 고구마를 말리는 풍경을 보자. 물도 나오고, 바람도 나온다. 왜 많은 제주의 바람이 고구마를 말려주니깐. 여기서 이 풍경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향수이기도 하다. 생각을 해보면 제주다움이라고 하면 하나의 풍경 공학 같다. 풍경 공학이라는 것은 미학적인 요소도 있어야 하고, 정치적 요소, 경제적, 시공간적, 사회문화적 있다. 그것들을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것이 설계가 되고, 그 다음에 같이 한 사람들의 시대적인 공유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원도심을 어떻게 재생할 것이냐에 대해 의아해 한다.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 1980년대 대학 다닌 분은 원도심 하면 문화적 향수가 있다. 한짓골 중심으로 하는 그런 인상들이다. 상인들에 이야기 하면 옛날만큼 장사가 잘 되었으면 한다. 정주 공간으로 살고 있는 주민들의 경우에는 옛날만큼 안전하면 좋겠다고 한다. 각자의 바람이 상충하고 있다. 원도심을 재생한다고 하면 그 당시에 시대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뽑아내야 한다고 본다. 그걸 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변해 버렸다. 풍경 공학적인 요소가 최적의 요소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그 곳에 지역 공동체의 의해서 움직이던 것들이 외부사람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나다 보니 공유되는 매개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속도는 빨라져서 섬 그리드 락(Grid Lock)으로 된다. 섬 그리드 락으로 인해 교통체증으로 오도 가도 못한다. 교통만이 아니라 전체가 그리드 락이다. 또 지역에 원래 살던 토박이와 주민들 간의 또 생각하는 기준들이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음성적인 그리드 락이 나타난다. 
한 이주민이 센터로 전화를 자기가 이런 말을 녹음을 했는데, 욕 같다고 번역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거만 가지고 번역할 수 없고 맥락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교육 강좌를 운영하는데, ‘육지사람 받지 말자’고 노골적으로 말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게 왜 이럴까. 시대가 공유하는 혹은 지역 공동체가 공유하는 풍경공학적인 설계가 없다. 이 부분을 해소하려면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해야 하는데 그 인식이 없다. 제주 인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걸 해소할 수 있는 강좌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태연 
: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간단히 ‘연구랑 교육 같이 하면 좋지’라고 했던 말 밑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 설명해주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현혜경 
: 우리더러 너무 아카데믹 한 거 아니냐고 한다. 또 하나는 너무 그냥 깊이 없는, 활용 안하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근데 그걸 뒤집어 보면 두 개를 잘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이런 과도기이다. 박찬식 센터장이 온 뒤에 제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센터의 역할에는 제주학 활성화도 있다. 아카데믹한 부분을 버릴 수는 없다. 아카데믹한 부분에서 가장 첫 번째는 관련 자료를 잘 수집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본다. 실제로 제주와 연구들을 해방이후에 보면, 물론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관변학자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해방 이후에도 선학들이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특히 지역학 중에서 제주 연구자들은 굉장하게 열정이 있다. 어떻게 보면 태생적으로 생겨 난 것 같은 열정이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제주도 관련 논문으로 쓴다고 하면 취업하기 어렵다 혹은 편협하다고 한다. 마치 한국 전체를 써야하는 것처럼 말한다. 4.3관련 논문을 쓰는데 제주도 사례만 말하냐느고 하더라.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것 하나만 분석해도 좋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들도 변하는 시대상을 몰랐을 수 있다. 지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특히 제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자료 생산을 해왔다. 그 자료들이 현재 와서는 기준이 잘 되어 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산재해 있는 상황이라 자료들을 잘 수집 하는 것이다. 제주 안에서만이 아니라 재일 교포에도 가진 분들이 많다. 외국에도 있다. 영국에서 살다 왔는데, 그 곳에서 놀란 점이 1840년대의 영국의 아편전쟁도 있지만, 동북아 해안선 일대를 전부 훑었다. 거문도도 점령하고, 제주도도 와서 조사했다. 성산포 싹 조사했다. 그런 자료들이 영국 내셔널 아카이빙에 다 있다. 이제 해외 나가있는 자료들. 하와이는 했지만, 업무 협약을 했다. 사실은 자료 가져오기 위한 일련의 전단계이다. 그런 것들을 싹 모아두면 여기에서 아카데믹하게 이용할 사람은 이용하고, 시민연구자도 역량이 상당한데, 그 분들도 활용 할 수 있다. 정책 집단에서도 문제는 활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활용을 일회성으로 하지 말고 깊이 있게 가자는 것에 플랜이 있다. 제주학 트러스트를 운영해볼 필요성이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제주학 트러스트라는 것은 무언가를 위탁하면 관리하고 관리하는 자산 관리팀, 연구를 자원을 활용하는 팀에 있어선 시민 자원봉사 등 지원자들을 활용해서 프로그램들을 할 수 있다. 교육, 문화 행사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 그것은 향후에 독립이 된다면 모델을 적용하고 있지만 지금 상태로서는 수많이 욕구를 해결 할 수 없고 플랜만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제주 확대로 학술대회 외연을 확장해 시민들도 접할 수 있게 연구 단체들도 협업해서 할 수 있는 토대를 점진적으로 하려고 한다. 

김태연 
: 벌써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현혜경
: 아까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다. 지난번에 보도 자료도 나왔지만 전략을 세웠다. 첫 째는 우리를 둘러싼 톱니바퀴를 부셔보자. 하나만 가지고 안 된다. 활성화도 하고, 톱니바퀴들을 어떻게 조성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변수들을 봤더니, 법과 제도 정비, 조직 정비, 재정적인 것도 안정적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는 공간의 문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들을 창의적으로 하는 것은 우리만 할 수 없다. 기대치가 높은 많다는 것은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전부가 할 수 없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잘 조성해서 하려고 한다. 국내외 연구자들로 해서 사업들을 잘 해보려고 한다.  일정부분을 봤을 때,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조례의 경우는 전국적으로 3개가 있다. 제주도는 설치 및 운영 조례이고, 호남학은 진흥 조례에 근거한다. 강원학이 최근에 우리를 벤치마킹해서 설치운영으로 했다. 강원학의 경우 생겼다가 없어진 조직이다. 왜 없어졌냐 하고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그 가운데서 느낀 것은 제주학이 다른 학에 비해서 제주학을 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굉장하다. 사회적 소명이 있어서 잘 도와가려고 한다, 제주학연구센터에는 일하러 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소명을 이루러 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제 전국 지역학에서 제주학을 벤치마킹해서 모델로 삼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전국 지역학 진흥법 논의 자리에서 조직적인 면에서 센터장 말고는 2명의 연구원 밖에 없었지만, 최근에 늘어나게 되면서 팀 체제로 가게 되었다. 연구기획팀, 제주어팀, 행정팀 이렇게 해서 가고 있다. 업무나 체계화 되는 시점이다. 재정 부분이나 공간 부분은 단기간에 될 수 없는 부분이라 안정적인 재정 확보 문제를 갖고 있다. 향후 굉장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 조성면에서는 많이 다양화 된 편이다. 그전에는 제주어에 중심을 두었다고 하면, 현재는 역사사업 파트가 강화되고, 교육 사업이나 교류사업 파트고 강화된 측면도 있다. 제주학이 깊이가 얕은 행사하지 않냐고 하는데, 국제 학술 행사의 경우 깊이가 좀 더 있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본다. 아마 주목이 되어서 위상이 높아지는 것 같다. 

김태연 
: 보통 ‘기자는 기사로 이야기하고 연구자는 논문으로 이야기한다’고 말을 한다. 오늘 논문도 보고서도 아닌 두 분의 이야기들을 듣게 돼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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