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비엔날레-탐라순담(耽羅巡談)] (32) 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안내자 모임 '한라생태길라잡이'

제주비엔날레 2017 프로그램 중 하나인 ‘탐라순담’은 탐라 천년의 땅인 제주도의 여러 인물들과 함께 토크쇼·집담회·좌담회·잡담회·세미나·콜로키움·거리 발언 등 다종다양으로 제주의 현안과 의제에 대해 이야기(談)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주인공이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약 50회에 걸쳐 ‘제주 하간듸’(많은 곳)서 ‘제주 사름’(사람)이 ‘제주를 곧는’(말하는) 탐라순담이 열립니다. 제주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의 여러 담론 속에서 제주의 가치, 제주의 현안을 길어 올리고 사회적 예술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탐라순담[耽羅巡談] 서른두 번째 순서는 제주참여환경연대의 생태안내자 모임인 ‘한라생태길라잡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3일 오전 9시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서 서른두 번째 탐라순담이 진행됐다.

생태안내가 생소하던 2001년부터 한라산 케이블카반대운동을 계기로 결성된 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안내자 모임 ‘한라생태길라잡이’는 16년 동안 함께하며 관음사 탐방로 모니터링, 초등생 생태교육 ‘한라생태학교’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3년에는 직접 기획한 ‘안뜨렁물 만나러 가는 길’프로그램이 환경부 인증을 받아, 한 달에 2회씩 청소년들에게 별도봉의 자연과 곤을동이 지닌 슬픔을 안내한다.  

자연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드나들던 것이 직업으로 굳어졌다. 매일을 봐도 늘 놀라운 풍경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남들에겐 징그럽게만 보이는 벌레도 이들에겐 그저 어여쁘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내놓는 자연을 알아보고 가까이 두는 즐거움에 수 년 동안이나 관음사 탐방로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인맥이 아니라 ‘자연맥’(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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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라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팀장(진행) 
: 제주참여환경연대 휴먼라이브러리에서 4-5년 동안 꾸준히 제주에서 자기만의 제주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는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생태 안내자, 그게 뭐에요?’라고 정했다. 2001년부터 자원활동을 하시는 한라생태길라잡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 특별히 오늘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은 한라생태길라잡이라는 단체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이 활동을 하시게 되었고 그것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또 개인적인 고충들, 개개인의 이야기들이다. 

김영숙(푸르미)
: 나는 2년 동안 회장역할을 해 오고 있다. 한라생태길라잡이는 원래부터 한라생태길라잡이로 만들어진 단체는 아니다. 예전에 한라산 케이블카 반대 모임이 제주에 있었다. 그 모임이 해체되면서 한라산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한라산의 자연을 잘 알고 제대로 사람에게 알려서 보호해야 할 당위성을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참여연대 내에 그룹이 만들어지고 따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한라생태길라잡이가 조직이 되었다.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한라생태길라잡이란 게 공부를 하면서 발족은 이후에 된 거다. 나는 올해 15년 차다. 여름방학이 되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박 2일 동안 한라생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17회 진행되었다. 

박유라
: 그럼 제주도에서 제도적으로 시행하기 전부터 시작된 건가?

김영숙(푸르미)
: 그렇다. 예전 선배들이 한라산을 이렇게 개발시키면 안 된다는 그 당위성에 대해서 조사해서 한라산을 왜 보호해야 하는 곳인지 알리자는 이런 생각들을 펼쳤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물론 제주도가 화산섬이기 때문에 지질학적이나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생태학적으로는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에 대해 기초적으로 모니터링 하게 된 것이다. 그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해서 여기를 다니는 탐방객들을 대상으로 자연해설을 했었다. 도에서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민간인인 우리들이 생각을 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제주도에서 언제부턴가 생태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탐방안내소가 생기기 시작했고 생태안내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겹치게 되었고 불편해 보이는 점도 있었다. 제주도의 곳곳에 오름도 있고 산도 많은데 이곳에만 중복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라봉, 별도봉도 굉장히 좋은 곳이니까 그 쪽도 한번 모니터링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모니터링 영역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 곳을 모니터링 하면서 프로그램을 또 하나 만들었다. 모니터링과 병행해서 청소년들을 위한 생태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관음사는 안내하는 일이 적어지게 되니까 모니터링 횟수도 줄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관음사 모니터링을 한라산 모니터링을 안 할 순 없다. 여태까지 해 온 것을 그래서 한 달에 한번이라도 하자는 의견이 모여서 모니터링을 하고 그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예전에 참여관찰지라는 글을 썼었다. 이곳을 모니터링 하면서 그 모니터링에 기반한 글들 중에 조금 더 재미있고 일반인들이 알기 쉬운 것들, 관심 있는 것들을 관찰지 형태로 해서 A3 크기로 만들어서 비치했었다. 한라산 들어오는 입구에 비치했다. 올해부터 다시 그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곧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중간에 다이어리를 만든 적도 있었다. 모니터링에 대한 것을 기반으로 아주 예쁜 다이어리를 만들었었다. 

박유라
: 궁금한 것이 그럼 계속 앞에 비치를 해 놨다가 지금은 안하고 있는 것인가?

김상미(비목)
: 참여관찰지를 했던 게 우리가 주말에만 해설을 하니까 평일에 오시는 분들도 내용을 좀 공유하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끼리 한 내용을 정리해서 비치를 해 왔었다. 그러다가 실제 여기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해설사 선생님들이 국립공원에 생기니까 큰 의미가 없어진 거다. 한 3년 정도 비치했다. 탐방 안내소가 생기면서 내가 첫 번째 탐방안내소에 들어가게 된 계기로 우리가 여기에서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을 국립공원 인정을 해 줬다. 그래서 들어올 때 따로 돈을 안내도 되고 캠프를 진행할 때 도움을 받는 등 서로 교류가 있었다. 그리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에 올라오시면서 보신 안내판을 처음 할 때 저희 단체로 와서 도움을 요청하셔서 저와 국립공원 직원분이 함께 진행을 하게 되었다. 국립공원과 저희 한라생태길라잡이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음사에는 배치가 안 되었지만 관음사에도 국립공원 직원이 배치가 되면서 저희가 적극적으로 활동을 안 해도 충분히 대체가 됐다. 이 곳에서 저희 일부는 빠지고 다른 쪽으로 에너지를 쓰게 된 거다. 관음사하면 생각나는 게 <치유와 공생의 숲 학교>이다. 재미있었다. 참 많은 것을 했다. 


김영숙(푸르미)
: <이름표 달기 활동>도 했다. 아파트에 다니면서 나무에 이름표를 달았다. 지금은 나무 이름표가 여러 곳에 달려있지만 2002-3년도쯤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 아파트에 가서 이름들을 모르시니까 나무 이름을 달고 했다. 우리도 공부하면서 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아름아름 소문도 나고 했다. 우리가 가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분들도 그 때부터 나무 이름을 다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것 같다. 그리고 체험학습 같은 것도 했었다. 평생학습지원센터와 연계해서 탑동에서 진행했었다. 지금은 생태에 관련된 많은 단체들이 생겨서 제주의 자연이나 생태에 대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고 알리는 역할들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볼 때 우리 선배님들이 제주의 생태나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아주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쪽으로 연결되는 효과가 있어서 지금 제주도가 그나마 열심히 개발을 하겠다는 도지사님이있지만 막을 수 있었던 베이스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박유라
: 민간에서 하던 게 공적 영역 흡수가 되면서 꾸준히 이어지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기도 하다.

비목(김상미)
: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기 모니터링한 것이 굉장히 오래 되어서 도감을 하나 만드는 게 우리의 숙원 사업인데 못 했다. 이 곳 한라산의 식생에 대해서 우리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너무 과한가? 10년을 이 구간을 계속 다니니까 여기의 식생에 대해서는 우리 선생님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모아서 정리를 하고 다음 사람들에게 넘겨지고 계속 축적을 하자는 차원에서 도감을 이야기 했다. 그 뒤로 국립공원에서도 여러 가지 도감들이 나오고 하면서 굳이 우리가 만들어야 되겠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이 나무가 무슨 나무다’하는 것 외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나무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아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에 좀 죄송하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에 우리 선생님들이 개인적인 열정으로 시작했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일인다역을 하면서도 여기를 못 떠나고 애정을 갖고 계속 오시는 것 같다. 새로운 일을 하자고 하기엔 좀 힘든 부분들도 있고 그렇다. 하지만 우리 활동들을 한 번 정리해 나가는 차원에서는 그런 축적의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유라
: 선생님들의 활동이 어떤지 다시 한 번 잘 들었고 알게 되어 숙연해진다. 한라산을 지키기 위한 활동들이 뿌리를 내려서 다양한 활동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게 된다. 나는 여기서 왜 활동하고 있고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는지 또 내 별명은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를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누고 싶다. 

김숙이(도토리)
: 나는 2005년부터 활동을 했으니까 12년차이다. 내 위로 2002년부터 활동하신 선배들이 3기수 있다. 생태안내양성교육을 받고 숲에 오면 나는 도시락 먹는 것과 숲에 가는 것만 좋았다. 나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게 뭐에요?”라는 질문 밖에 못 했다. 매일 물어봤다. 지난주에 와서 물어 본 것도 몰라서 다시 물어보고 어제 물어 본 것도 또 물어보고 했다. 어제 봤는데도 오늘 보면 또 모르고 그랬다. 내 동기들과 비교를 해 봤어도 나는 정말 모자랐다. 지금도 비교가 되는데 그런데 지금 12년 지나고 생각하니 느리게 가더라도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있는 것 같다. 잘 모르지만 공부 진도도 잘 못 나가지만 난 여기가 너무 좋았다. 도시락이 좋고 같이 오는 사람이 좋고 숲이 좋았다. 잎이 지면 지는 대로 새 순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좋았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예쁘다, 신기하다” 했던 것 같다. 또 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수  많은 동기들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관음사만 간다고 하면 설렌다. 내 생태 별명은 이 숲에서 가장 동물들을 추운 겨울 배고픈 동물들을 먹여 살리는 도토리이다. 숲에 있는 동물들에게 쓰임새가 있는 도토리처럼 나도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쓰임새 있는 일부분이 되자고 해서 도토리이다. 

신정수(무수)
: 나는 길라잡이 멤버는 아니다. 참여환경연대 생태안내자 과정을 듣고 있다. 별명을 아직 정하지 못하고 고민 중이다. 계속 무수라고 하라고 하신다. 무수는 무라는 뜻의 제주어이다. 동네 삼촌이 자꾸 내 이름을 까먹으시고 무수라고 하시는데 이 이야기를 동기들에게 했더니 동기들이 너무 좋아하면서 무수라고 하라고 한다. 

박유라
: 생태 안내 교육을 받았는데 선생님들 보면서 어떤 점을 느꼈나?

신정수(무수)
: 내가 제주의 생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제주의 생태를 사람들이 어떻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논문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2차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여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다. 여름에 이곳의 세밀화를 그릴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왜 새싹을 보면 그렇게 기쁜 걸까?

김숙이(도토리)
: 왜 안 기쁘지?

김상미(비목)
: 왜 안 기쁘지? 난 그게 더 궁금하다.

신정수(무수)
: 나도 봄에 새싹이 많이 나면 기분이 좋다고 느끼긴 한다. 하지만 여기 선생님들은 “이 잎맥을 봐봐. 여기 솜털 보이지? 보들보들 예쁘지 않니?” 이런다.

김숙이(도토리)
: 아직 안 미쳐서 그렇다.

신정수(무수)
: 이 나뭇잎의 거치를 보는 것이 이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그러시는 걸까? 내 동기들과도 처음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다. 우리가 민오름에 갈 때 까지만 해도 굉장히 재미있게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선생님들이 무슨 나무 이름만 새로 알려 주면 “아 선생님 더 이상 하지 마세요”라고 하게 된다. 하나 더 들어가면 그 전에 외운 것을 까먹게 되니까. 우리 이번에 졸업하면 조끼에다가 “나무 이름 묻지 마세요”라고 적을 거다. (일동 웃음) 우리 동기들은 서로가 다 모자라다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서 끝까지 같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김현아(자운영)
: 나는 지금 5년차이다. 아직 초짜이다. 나는 이주민이다. 제주도에 오자마자 참여환경연대에 관심이 있어서 처음에는 환경적으로 다가갔는데 생태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나는 곤충을 굉장히 좋아한다. 좋아하면 다 보이게 된다. 곤충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한다. 

신정수(무수):
: 지난 번에 여기 왔을 때 털 정말 많은 벌레를 보면서 “예쁘다, 얼굴 좀 봐. 이 입 좀 봐”라고 말하는데 이해가 안 됐다.

김현아(자운영)
: 예전에는 거미가 있으면 다 치웠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 키운다. 나는 아직 잘 모른다. 먼저 생태적인 것도 일단 사람이 좋으니까 인연을 이어 갈 수 있는 거다. 나무는 계속 배워도 모른다. 곤충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왠지 박사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펼쳐서 찾게 된다. 또 다른 선생님들이 물어보면 알려줘야 하니까 그래서라도 공부를 하게 된다. 

박유라
: 원래부터 생태나 곤충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

김현아(자운영)
: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산에 다니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원래 관심은 많았다. 전공도 생물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안 되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만약 내가 스무 살 때 이걸 시작했다면 대단한 박사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 별명은 자운영이다. 

박유라
: 자운영이 뭔가?

김현아(자운영)
자운영은 꽃이다. 비료대신 토양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쓰는 녹비작물이다. 처음에 이름을 정할 때 여기 길라잡이에 비료가 되겠다는 뜻으로 지었다. 내가 예전엔 정말 못 됐는데 착해졌다고 친구들이 이야기한다. 여기 오면 내가 좀 착해진 느낌이다. 

박유라
: 여기 오면 착해질 수 있나?

김현아(자운영)
: 추천한다. 그것은 정말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금 5년 차인데 마음이 부드러워진 것을 느낀다. 

박유라
: 자연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김현아(자운영)
: 그것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다. 

푸르미(김영숙)
: 내 별명은 ‘늘 푸르미’ 이다. 한라생태길라잡이에 와서 만든 별명은 아니고 내가 2002년도부터 쓰던 닉네임이었다. 나도 육지 것이다. 제주에 왔는데 너무 좋았다. 혼자서 하다못해 토끼풀만 봐도 너무 예뻐서 쪼그리고 앉아서 보곤 했는데 그걸 보면 원래부터 자연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카페에 가입하려면 닉네임이 필요한데 그 때 사용했던 것이 늘 푸르미이다. 주면에 보면 푸르미아동센터니 정말 많은데 내가 원조이다. 푸른 게 좋아서 늘 녹색인 게 좋아서 붙였다. 사실 나는 꽃보다도 녹색의 것들을 더 좋아한다.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교육 모집을 할 때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때에는 무척 힘들었다. 면접도 보고 그랬다. 심지어 잘린 사람도 있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었다. 나는 좋아서 자발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늘에서 나를 태어나게 할 때 너는 나가서 자연을 좋아해라 그렇게 보낸 것 같다. 

앵두(우연순)
: 나는 앵두라고 하고 10년차 되었다. 나는 교육을 받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관음사 탐방로는 내게 숲의 교과서이다. 10년간 모니터링을 정말 열심히 다녔고 여기만 누가 와서 해설해 달라고 하면 너무 신나게 왔다. 한라생태길라잡이나 생태안내자는 내가 요즘 논문을 많이 열어 보는데 전국의 생태안내자에게 기초가 되는 곳이 여기다. 논문에 정말 많이 등장을 한다. 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 안내자 교육이 전국에서 처음 시작이 되어서 전국적으로 벤치마킹 되고 논문에도 정말 많이 등장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생태안내자 교육만 받고 나가서 정말 안타깝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이 여기에서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귀뚜리(김유신)
: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본토박이이다. 2015년에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이 곳에 발을 걸치게 되었는데 안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생각한다. 해보니까 너무나 배울게 많았고 이곳의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내가 낯가림이 좀 심한 편인데 격없이 대해주는 포근한 조직이어서 한 해 한 해 나오게 되었다. 

박유라:
: 생태 안내자를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귀뚜리(김유신)
: 옛날에는 내가 사진만 찍으러 다녔다. 다 꽃만 찍으러 다녔다. 노란 꽃들 빨간 꽃들 다 꽃들이었는데 어느 날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노란 꽃들 중에 꽃잎이 다섯 개인 것도 있고 바글바글한 것도 있고 이 노란 꽃들이 다 같은 꽃들이 아니었다. 다 찍고 나서야 이게 대체 무슨 꽃인지 궁금해 졌다. 노란 폴더에 분홍 폴더에 색깔 별로 사진만 잔뜩 있고 이름은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이름도 조금 지나면 이름을 까먹어서 혼도 많이 났다. 멀리서 숲을 보기만 하고 나무를 못 봤다가 여기 와서 나무도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저기 노란 꽃 민들레 이정도 이었는데 이제는 민들레는 꽃잎은 이파리가 다섯 개고 이런 것을 여기 와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내 별명은 깔깔마녀인데 여기 오니까 생태로 지으라고 하더라.

박유라
: 깔깔 생태마녀

김유신(귀뚜리)
: 내가 하고 싶은 별명은 기존의 멤버들이 다 하고 있었다. 지금은 귀뚜리라고 하는데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성만(굴렁동산)
: 충청도 출신이다. 별명은 굴렁동산이다. 제주다운 별명을 짓고 싶어 하던 차에 내가 사는 곳 지명이 굴렁동산길이어서 우연치 않게 짓게 되었다. 막상 짓고 보니 모든 것은 평등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의 생명이 다. 높은 곳이 있어야 낮으니 곳도 있고. 최근에 별명이 길다고 바꾸라고 하는데 바꾸게 되면 쇠자를 붙여서 굴렁쇠로 할까 생각도 해 봤다. 여기 입문하게 된 계기는 좀 길다. 짧게 말하면 산이 좋아 다니다가 우연찮게 산에 사는 생물들 책도 보고 하다가 관심도 갖게 되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숲을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도 넉넉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한라생태길라잡이에 입문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기 와서 보니 활동하시는 분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게 좋고 또 숲이 좋고 다니면서 공부도 되고 해서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될 것 같다. 오름을 다니면서 오름의 위치 선정을 처음에 책이 없을 때에는, 가서 A4 용지에 그림으로 그려서 여기 무슨 오름이 있고 그 옆에 무슨 무슨 오름이 있다 이런 게 그려 놨었다. 그냥 안내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지역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나름대로 책도 보고 하다 보니 길라잡이에 입문하자마자 활동하자고 하셔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10여 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여기 참여환경연대에서 활동하게 된 것도 좀 어려웠었다. 내가 건설회사에서 일했었는데 건설회사는 개발위주로 해야 되는데 참여환경연대 같은 경우에는 개발을 저지하는 꼭 저지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좀 어려웠었다. 케이블카 이야기가 나오고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윗세오름에서 했는데 시위를 하는 것을 촬영도 하면서 한 번 입문을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참여하게 되고 활동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다. 

김상미(비목)
: 원래 참여환경연대에서 오름 안내를 했다. 

김금순(여름)
: 내 별명은 여름이다. 너무 추운 것을 못 견뎌서 여름에는 활동하고 겨울에는 쉰다. 나는 기찻길밖에 없는 마포에서 태어났다. 자연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에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 같다. 2008년도 생태 안내자 교육을 받고 시작했다. 굴렁동산선생님이 소개 해 줘서 산에 다니는 거 좋아하면 이런 모임이 있으니 들어가 봐라 하셔서 들어오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공부는 안하고 매일 따라 다녔다.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이유는 다니다 보니 ‘자연맥’이 늘어나서 이다. 자연들이 전부 자기를 드러 낼 때가 있다. 어느 날 ‘나 여기 있어’ 하고 꽃이 피면 그때 자기를 소개하는 거다. 말을 걸고. 한번만 드러내는 게 아니다. 봄이 되면 벚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든다. 그래서 그 애들과 눈 마주치고 말 걸고 하다 보니 아직까지 못 가고 있다. 멀리 있어도 초록 산에 희끗희끗한 것만 보여도 산달이야 라고 알아본다. 걔네들을 그 시기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러면 안부가 궁금하고 그렇게 되어서 여태까지 있게 된다. 

박유라
: 생태안내자 교육에 접수한 계기는 뭔가?

김금순(여름)
: 제주도에 와서 서문통 할머니들만 사는 동네에 살았다. 또래도 없고 심심해서 남편 초등학교 동창들 오름 가는 걸 따라 다녔다. 오름에 가 보니 너무 좋아서 여자 동창 중 한 명이 다음에 또 오세요 란 인사치레에 또 갔다. 빈말이었는데 말이다. 오름 같은 곳 가는 게 좋으면 참여환경연대에 이런 모임이 있으니 가 보라고 추천을 받아서 오게 되었다. 내게 자연에 대한 동경이 없었다면 한 번 나오고 말았을 거다. 

강진숙(바람꽃)
: 지금 현재로는 길라잡이 중 제일 막내이다. 2015년에 교육을 받았고 횟수로 3년 차이다. 별명은 바람꽃이다. 맨 처음에 들어와서 이름을 지었을 때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미술치료교육을 받을 때 거기 팀장님께서 그 별명을 줄여서 나를 시바샘이라고 불렀다. 시바신과 연결해서 나름 의미가 있었는데 생태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데 시바샘은 좀 아니었다. 발음할 때 주의하라고 말을 해도 세게 하시는 분도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간 게 바람꽃이었다. 나는 정말 바람이 좋다. 바람꽃은 제주에는 없다. 대부분의 바람꽃은 초봄에 핀다. 여름에 피는 유일한 꽃이다.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박유라
: 어떻게 생태 안내자 교육을 받게 되었고 여기 와서 활동을 하니까 어떤가?

강진숙(바람꽃)
: 이전에는 생태에 관심이 없었다. 나가는 것을 싫어했었다. 2015년에 내가 나가던 미술치료센터에서 생태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땄다. 거기 일환으로 한 선생님이 알아보게 되어서 네 명의 선생님과 함께 오게 되었다. 그런데 와서 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 되어서 그 다음에 그 센터를 그만 두고 여기만 하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지 했던 계획을 많이 바꾸게 했던 계기가 되었다. 내가 꽃 이름과 나무 이름들을 아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숲에 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뒤늦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 너무 재미있다. 여기만 오면 목소리 톤도 굉장히 높아지고 막 신난다. 선생님들 만나면 그렇다. 아직까지는 내가 초보라 선생님들을 뵐 때 관찰자적인 입장일 때가 많다. 선생님들 보면 어쩜 저렇게 아이 같으신지. 순수하시다. 올해 모니터링 제목이 신들의 산책인데 여기 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게 내게는 정말 신들과 함께 하는 산책 같다. 자연과 소통하시고 뭔가 하나를 봤을 때 좋아하시는 그 순수함 자체가 정말 신들 같다. 모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면 뭐든지 얘기 해 주시고 그 거에 관해 단순히 이름이 아니고 의미 같은 것을 내가 생각해 볼 수 있게 전해 주시는 게 많다. 행복하게 따라다니고 있다. 

박유라
: 들을수록 이상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웃음)

강진숙(바람꽃)
: 나는 새싹을 봤는데 아무 감흥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행복하게 여기서 함께 하고 있다. 

백영경
: 나는 백영경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제주참여환경연대 회원 가입을 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보면서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좋다. 

홍영철(쑥대낭)
: 나는 참여환경연대에서 어둠을 담당하고 있다. 생태안내자 모임 올레 소속이다. 

박유라
: 여기 선생님들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짧게 나눠달라. 

홍영철(쑥대낭)
: 아까 나를 우리 단체에서 어둠을 담당하는 올레라고 했는데 이분들은 정반대이다. 한라생태길라잡이는 밝고 목소리 톤도 다들 높다. 그래서 우리 올레가 연구자 내지 수도자라면 이 분들은 천상 해설가구나 라고 생각한다. 같은 단체에서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 있을까?

안은정(송이)
나도 정규 교육은 못 받았다.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엔지니어 쪽으로. 고제량 선생과 동기인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우리가 학교 다닐 때 환경에 대한 것은 처리하는 것만 배우고 환경 철학에 대한 것은 교수들이 안 가르쳐 줬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내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함께 어울리다가 길라잡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을 알게 되고 12-3년을 해 오고 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내 자아를 못 찾았다. 저 나무를 보면 이름이 뭘까 별로 궁금하지가 않다. 저 꽃이 노란색인데 왜 노란색인지는 궁금하지만 이름이 뭔지는 별로 안 궁금하다. 그래서 모니터링을 하러 올 때마다 선생님에게 매번 찍힌다. 10여 년을 다니다 보니 풍월은 좀 들었다. 대충 찍으면 아는데 장소를 옮기면 또 모른다. 나는 이 사람들의 이 느낌이 좋다. 몇 년 지나서 뒤돌아보면 나의 친정은 이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늘 마음을 줄 수 있는 곳 늘 어울릴 수 있는 곳 그리고 이 사람들과 무엇인 가를 하면 늘 기쁜 곳이다. 같이 한 곳을 보고 한 가지 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이곳의 매력이다. 내 별명은 송이이다. 미스코리아 나갔다가 미가 떨어진 ‘스코리아(scoria) ’, 송이이다. 

김상미(비목)
: 지난번에 송이 선생님이 자신을 “미, 스코리아입니다”라고 소개하시더라. 

안은정(송이)
: 그러면 다 기억한다. 

김상미(비목)
: 아까 여름 선생님이 자연의 친구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때가 있다고 했다. 오다 보니까 그 동안에는 숲에 가려져 안 보이던 노란 가을 비목이 지천으로 있었다. 지금 5.16 도로 넘어 와도 그렇고 어딜 가도 보이는 길쭉한 노란 이파리는 80%는 비목이라고 보시면 된다. 내 생태이름은 비목이다. 처음 대구 수목원에서 생태 공부를 시작했다. 식물 분류를 공부하신 선생님이 우리를 지도하셔서 숲에 가면 이 나무 잎이 어떠니 거치가 어떠니 이런 것들을 먼저 배웠다. 팔공산에 갔을 때 향기를 맡아 보라고 한 게 있었는데 그게 비목이었다. 그 향기가 너무 좋아서 별명을 비목의 향기라고 했는데 그 이름이 너무 길어서 비목이라고 정했다. 지금은 주변에서 비목의 이름이 너무 슬프니까 바꾸는 게 어떠냐고 하는데 이 비목이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나무이다. 지금 보면 숲 그늘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나. 그래서 계속 비목이란 이름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5년도에 제주도에 들어와서 참여환경연대의 생태안내자 교육을 받게 되면서 인연이 되었다. 내가 제주도에 입도 하면서 한라생태 길라잡이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나의 제주도는 한라생태 길라잡이와 거의 같이 활동하면서 10년 넘게 있다가 아까 선생님께서 말한 것처럼 나는 친정이 한라생태 길라잡이이고 내 생활의 거의 80%를 한라생태 길라잡이와 같이 했고 지금도 나가서 생활하고 있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한라생태 길라잡이가 있다. 자주 오지 못해도 항상 같이 있다. 오늘도 선생님들 모이신 다고 했고 나도 와 본지 오래 되어서 특히 관음사에서 한다고 해서 시간 조절해서 오게 되었다. 여기는 영원한 고향인 것 같다. 항상 생각이 난다. 항상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박유라
: 우리 엄마가 항상 비목 선생님 같이 열심히 하는 분이 없다고 말씀 하셨다.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셨던 분이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하셨다. 항상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나?

김상미(비목)
: 제 2의 인생에 숲을 빼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은 못 믿을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새침떼기이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제주도에 와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숲을 알게 되고 하면서 인생이 좀 바뀌었다. 아까 여러 선생님들이 말했지만 내가 사랑하게 되니까 보이게 되고 보이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알고 싶고 그러다 보니 처음에 내가 알 던 것과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게 힘인 것 같다. 또 하나는 여기 계신 우린 선생님들이 큰 것 같다. 일 년 만에 툭 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힘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한 때 힘든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총무였는데 그 때 일이 있어서 네 명만 남았었다. 누군가 한 명이 사라져 버리면 이 모임이 안 되기 때문에 똘똘 뭉쳐서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정말 많은 일들을 했었다. 그 이후에 선생님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힘이 생겨서 유지되고 있는데 거기에서 오는 끈끈함, 표현할 수 없는 게 여기에는 항상 있다. 

앵두(우연순)
: “안돼요” 이걸 해 본 적이 없다. 무언 갈 물어보고 얘기하면 안 된다 못 하다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뭐든지 물어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려고 하지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김영숙(푸르미)
: 올해의 생태학교 주제는 동물의 똥이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우리가 그 똥을 주우러 다녔다. 아이들과 그 생태학교를 하기 위해서 똥을 주우러 다니는 선생님들도 재밌었다.

안은정(송이)
: 올해는 똥박사가 되었다. 1년 내내 몇 개월을 똥을 많이 주웠다. 

앵두(우연순)
: 정말 재미있었던 게 똥을 물에다 풀 때 선생님이 서슴없이 손을 넣어서 풀었던 거다. 

안은정(송이)
: 똥을 모닥불에 넣고 불을 피웠는데 거기서 구운 고구마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다는 거. 똥을 넣었는데도. 재미있었다. 똥을 주제로 하면 또 하고 싶다. 

박유라
: 내가 오늘 질문하려고 했던 어떻게 이 모임이 지속적으로 원동력을 가지고 있었나, 생태 안내자의 삶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 이런 것들을 물어 보려고 했는데 선생님들이 생태 안내자의 개인적인 그런 것보다 이 모임이 갖는 힘, 이 모임이 주는 긍정감과 사람과 자연에 와서 그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부분이 더 크고 그런 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에 한라생태 길라잡이가 유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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