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25) 종이컵- 다큐와 르포 사이 2/ 임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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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해체되어 던져진 것들 중에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된 삶의 애환을 시인은 ‘종이컵’의 어투로 들려주고 있다. 사진=김연미. ⓒ제주의소리

내가 뭘 어쨌다고 내게 침을 뱉느냐고?

내 아무리 일회용의 비천한 삶이지만 맡은 일 단 한 번이라도 가벼이 여긴 적 있었냐고? 산에서 바다에서 길에서 들녘에서 식당에서 호텔에서 밤하늘 비행기에서, 커피면 커피 맹물이면 맹물 소주와 막걸리에 그 잘난 와인까지 내 언제 낯가리는 것 보았냐고? 그도 모자라 초장 된장 고추장에 담뱃재에 오줌까지 죄다 받아 줬거늘, 이제 와서 고맙다는 공치사는 고사하고 우악스런 손아귀로 목줄을 조이다가 지르밟고 걷어차서 내쫒는 포악질까지 견뎌야만 하냐고? 오래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 없었고 텀블러나 머그잔을 탐한 적도 없었는데 그저 그런 쓰레기에 파렴치한 취급이라니...

계약직 그리 홀대하면
네 사업도 일회성 아니냐고?

- 임채성, <종이컵- 다큐와 르포 사이 2> 전문


평범하게 사는 걸 거부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의식의 어느 지점을 뒤적이다 보면 색바랜 그 치기가 먼지 가득 쌓인 채 잊혀진 욕망이 되어 사그라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출함의 양 극단사이 어디쯤 발을 대고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그 끝점을 바라보며 허공에 뜬 꿈을 꾸려 했었다.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파악된 나의 위치를 외면하고자 했던 자의식의 다른 발로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거부감은 내 삶의 갈피갈피를 빈틈없이 꼬아놓기만 했다. 단단하게 조여오는 매듭을 앞에 놓고 망연한 시간을 보내다보면 세상은 더욱 더 크게 내 앞길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실체도 없는 불안과 위압감에서 나는 늘 주눅 들어 있었고 결국엔 평범의 하한선에서도 한참 더 아래쪽에서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끝점으로 내몰리지 않고 산다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운데 지점에서 둥글둥글 살아가기를 희망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소망이었는지를 아프게 깨달으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참 멀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사람들은 중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 그 극단까지 사람들을 내 몰고, 또 내몬다. 허리띠를 졸라매다보면 결국 양끝점만 뭉툭한 기형적 구조가 될 것임이 뻔한 이치임에도 중간지점을 샅샅이 분해하여 마지막 한 조각까지 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체되어 던져진 것들 중에 ‘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된 삶의 애환을 시인은 ‘종이컵’의 어투로 들려주고 있다. ‘일회용의 비천한 삶’,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면 언제든지 버려져 발아래 짓이겨지는 종이컵. 반짝반짝 빛나며 단단하기까지 한 ‘텀블러나 머그잔을 탐’하기는커녕, ‘쓰레기 취급’만 하지 말아 달라 항변하는 목소리가 절절하다. 존재의 존엄성을 상실한 시대에서 우리는 누구든지 종이컵임을 아프게 깨닫는 것이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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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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