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52) 자신 없는 놈이 통천관을 쓰면 머리가 아흔아홉 개로 깨어진다

* 조신 : 자신(自信), 자신 있다
* 엇인 : 없는. 엇(읏)다 〉 없다
* 아은아옵 : 아흔아홉. 99
* 벌러진다 : 깨어진다. 쪼개진다

통천관(通天冠)이 어떤 것인가. 옛날 임금님이 정무를 보거나 조칙(詔勅)을 내릴 때 쓰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이다. 왕관이나 진배없다. 그러니 이런 관은 원래 왕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지엄한 지위의 상징물로 그 위엄과 권위가 막강하다.
  
따라서 통천관을 쓴다함은, 높은 지위의 벼슬에 오른다는 말이다. 그것도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직위에 해당하는 소임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함량 미달인 자가 자리에 앉았을 때가 문제다. 

머리가 아흔아홉 개로 깨어진다 함은 과분한 벼슬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다는 뜻이다. 수모를 당할 것은 불문가지다.
  
‘머리가 아흔아홉 개로 깨어진다’라 해 과장과 비유를 곁들여 실감나게 표현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선 안되는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마디로 얘기해 ‘분수를 알아라.’ 곧 수분(守分)의 중요성을 빗댐이다. 어떤 경우에도 제 분수를 지키라는 경계의 말이다. ‘뱁새가 황새 흉내 내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 아닌가.

우리 속담에 같은 뜻을 가진 것이 있는데,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해야겠다.

“적게 먹고 가는 똥 싸라”

자기 처지를 탓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 한다. 하지만 내명(內明)한 현자(賢者)라면 모르되, 그런 자족(自足)의 도(道)를 지키며 살기란 쉽지 않다.

세상이 변했지만, 옛날엔 속진을 벗어나 산림(山林)에 몸을 놓아 물아일체의 경지에 몰입하던 시인묵객들이 많았다.

그 중에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 이 내 생애 어떠하고, 옛 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 미칠까“로 시작되는 정극인의 <상춘꼭>을 기억하리라. 그의 호부터 ’근심 없이 사는 집‘이란 뜻의 ’불우헌(不憂軒)‘이다. 산림에 묻혀 자연을 즐기는 자신을 풍월주인(風月主人)이라 하면서 자연 귀의와 안빈낙도의 삶을 노래한다. 속된 세상에는 뜻을 두지 않고 분수를 지키려 한 것이다.

노계 박인로의 <누항사>에도 그런 삶이 녹아 있다. 그가 한음 이덕형과 교유할 때, 자신의 궁핍한 삶이 어떠냐고 물어오자, 누추한 곳(누항, 陋巷)에 초막을 지어 가난한 생활을 할 때 굶주림과 추위가 닥치고 수모가 심하긴 해도 결코 가난을 원망하지 않겠다(貧而無怨)고 답한 내용이다. 자연을 벗 삼아 충성과 효도, 형제간의 화목, 친구간의 신의를 바라면서 수분(守分)하겠다는 심경을 진솔하게 토로했다.

어렵잖게 듣는 말이 있다.

“아이고 분실 알아사주기”(아이고, 분수를 알아야지)라며 안타까워하는가 하면, “주제엣 거시”(주제도 되지 않는 것이)라 해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탐하는 자를 비웃기도 한다. 능력이 되지 않으니 영 탐탁지 않다 함이다.

분수에 넘치면 과분(過分)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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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탈의 과거사를 반성하지 못하는 나라는 진정한 이웃이 아니다. 일본 말이다. 출처=오마이뉴스.
  
조선왕조실록 등 사서에서 ‘왜란’이라 한 것은 왜놈들을 우리와 동등한 문화국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임진왜란 때, ‘사야까’란 조총부대의 일본 장수가 1000여 명 부하를 이끌고 조선에 투항했다. 그래서 조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왜놈을 격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부에서는 그에게 ‘김충선’이란 성과 이름을 하사했다 하고, 그 후손들이 대구지방에 살고 있으며 일본인 관광객들이 지금도 찾는다고 한다. 그가 투항한 것은 문물이 발달해 문명화된 조선을 동경한 때문이라 한다.
  
당시 조선에 항복한 사야까 등 왜인들을 ‘항왜(降倭)’라 불렀다. 일본인이면서 조선에 투항한 왜인이란 뜻이다. 왜란 때만 해도, 저들이 조총 제조법을 익혀서 쳐들어온 것인데. 문화적으로는 한참 우리보다 뒤졌다. 임진왜란 때 도공을 비롯해 여러 장인(匠人)들과 학자들을 납치해 문화적으로 성장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 전쟁이란 표현은 가당치 않다. 왜란이라 함으로써 우리가 문화적으로 상위 국가였음을 나타내고자 한 자긍심이 담긴 표현이다. 이제 와서 일본이 좀 나아졌다고 과거 우리 조상들의 문화 역량까지 부정하지는 못할 테다. 
  
딴은 임진왜란의 ‘왜란’도 과분하지 않은가. 일본처럼 제 분수를 모르는 나라가 없으니 하는 소리다.

‘조신 엇인 놈이 통천관을 쓰민 머리가 아은아옵 개로 벌러진다.’ 

맞는 말이다. 수분(守分)은 실행이 어려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높은 덕목이다. 어찌 나라라고 예외이겠는가. 침탈의 과거사를 반성하지 못하는 나라는 진정한 이웃이 아니다. 일본 말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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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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