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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너무 빠른 '보수후보 단일화' 선언...도민들은 선택의 시간 필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제주도교육감 선거 예비주자들이 단일화를 공식 선언했다. 

6.13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기까지 140여일이 남았고, 예비후보자 등록조차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표된 의외의 행보였다.

단일화 선언에는 고재문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고창근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김광수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윤두호 전 교육의원 등 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자 난립을 막아 도민들이 적임자를 선택하는데 혼란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목적을 밝혔지만,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을 위한 단일화냐는 의문부호가 따라 붙으면서다.

◇ 단일화 선언, 배경과 목적은?

단일화의 배경은 무엇보다 '선행 학습효과'가 작용했다. 스스로 이 점을 밝혔다.

4년전에도 일부 보수 성향의 후보들은 단일화를 꾀했다. 또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윤두호 전 교육의원, 김희열 제주대 교수와의 단일화를 통해 고창근 전 교육국장이 주자로 나섰다. 

그러나, 최종전에는 고 전 국장을 비롯해 강경찬 전 교육의원, 양창식 전 탐라대 총장 등 보수 성향의 후보 3명이 출마했고, 결국 진보 성향의 이석문 교육감이 당선됐다. 보수 후보들은 이 교육감의 득표율이 33.2%인 점으로 미뤄 완전한 보수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단일화 선언도 어부지리(?) 격으로 이 교육감에게 다시 승리를 헌납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4년전 지방선거와는 상황 자체가 달라졌다.

2014년 교육감선거는 3선 이상 연임 제한에 걸린 현직 교육감이 불출마하면서 사실상 '무주공산'이었다. 보수표의 분산을 우려하면서도 후보들이 완주를 택한 것은 저마다 승리를 자신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제주교육감 선거는 구도가 달라졌다.

제주도지사 선거와는 달리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교육감 선거는 '현직 프리미엄'이 상당하다. 이름이 자주 오르내릴수록 인지도도 올라가기 마련인데 현직 교육감 외의 후보자들은 이름을 알릴만한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다. 

결국, 단일화의 목적은 현직 교육감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 하나로 귀결된다.

◇ 판단 엇갈린 정책에 "교육행정 실패" 프레임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육정책 실패로 제주교육의 발전에 저해되고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해 제주교육 발전을 위한 교육감 도전자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개인에 따라 교육행정을 평가하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정책 실패'라고 규정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다소 궁색해 보인다.

이들은 교육감 교체의 필요성으로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제주도교육청의 수장으로서 청렴의 의무가 으뜸인데, 제주도민들은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보며 윤리의식에 대해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둘째는 "제주교육의 앞날이 너무 불안하다. 자신있게 도민들에게 공약했던 성산고등학교 국립해사고 전환 약속은 온데간데 없다. 이 뿐만 아니라 일반고등학교에 특수목적학과를 만들어 각 학교의 정체성을 교란시키고 있다", 셋째는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교장공모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코드 인사를 하고 있다. 아니라고 항변해도 도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음을 모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불거진 '친인척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차치하자. 제주도 감사위원회의 특정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교육감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감사는 교육청이 먼저 요청했다. 

'성산고의 국립해사고 전환'은 제주도교육청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온 사안이다.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문제와 함께 대외 여건 변화,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성사되지 못한 측면이 컸다. 교육청 자체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일반고 내 특수목적학과 개설'은 혹독한 평가와는 달리 환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교장공모 제도 확대'도 정부가 적극 권장해 온 정책으로 시각에 따라 판단이 엇갈린다.

결국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기에는 '팩트'가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단일화, 왜 하필 이 시기에?...'인기 투표' 우려

단일화를 발표한 시기도 의문이다.

지금은 지방선거 본선은 커녕 예선전도 제대로 치러지기 전이다. 예비후보 등록은 선거 120일 전인 2월 13일부터다.

아직 누구도 이렇다 할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화를 추진하겠다고 하면, 도민들은 선택의 근거를 어디에 둬야하는 것일까.

이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네 사람 모두 추구하는 정책이 비슷해서 누가 선택되든 교육정책은 한 군데로 갈거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비슷하다'는 정책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교육감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한 여론조사가 이뤄진다면? 이른바 '인기 투표'가 될 공산이 크다. 누구나 그 결과에 승복할지도 궁금하다. 

이들은 "네 사람 외에 교육감 도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내일(24일)까지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현직 교육감에 맞설 '보수 연대'의 틀을 공고히 다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제주교육 미래비전 '뒷전'

이석문 교육감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럴 의도가 있다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정보화기기 입찰 관련 유착관계 의혹'[믿고 따랐더니 '부정당 업체' 낙인...제주교육청의 '수상한 입찰']은 기사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승리'만을 위한 이합집산은 제주 교육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치열하게 고민한 정책을 갖고 당당하게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지향점이 같다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단일화가 필요하다면 도민의 판단에 맡겨볼 수도 있다.

승리든, 패배든 당사자들도 수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일화 선언 참여자들도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제주교육 발전에 힘을 쏟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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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우 기자 ⓒ제주의소리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진영 논리'에 매몰된 나머지 제주교육의 미래비전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정말 도민들이 '제주교육의 참 일꾼'을 선택하길 바란다면 그에 상응하는 능력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아직 그들의 자질과 능력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일 뿐, 도민들에게는 선택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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