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54. 첫사랑처럼 달콤하고 첫경험처럼 짜릿한 만남

만남이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말이 인연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모두 다 인연이고, 사람이 사물과 만나는 것도 인연이다. 장사를 해본 사람은 안다. 수십 수백 명이 물건을 보고 가지만 마지막에 물건을 갖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각물유주(各物有主)라고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삼생의 인연’이라고 한다. 삼생은 전생·현생·내생이니 옷깃만 스쳐도 80x3=240년의 인연이라는 것이다. 또 부부 인연은 3000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1겁은 무한대의 시간인데 3000겁이라면 영원에 가까운 세월이다. 결혼한 지 5년 이내에 열 중 2~3명이 이혼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나도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런 유행가 가사가 있는데 기실 모든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그런데 만남을 잘 가꾸어 선연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연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다 업보가 인연을 조종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좋고 나쁜 팔자를 타고 태어나는데, 그 원인도 전생의 업보에서 비롯된다.

카르마(Karma)를 힌두교에서는 업(業), 불교에서는 인과응보, 인연이라고 한다. 현생에서 쌓은 카르마는 내생으로 이어진다. 삼생(三生)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는 게 동양철학의 가르침이다. 불교의 인드라망(indranet)은 만물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우주의 구성 원리를 보여준다.

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설, 업보, 인과론, 동체대비, 카르마, 인드라망… 등은 다 비슷한 개념들이다. 그것은 우주 만물은 각자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물코처럼 서로 얽혀있다는 ‘그물코 사고’의 산물이다. 그래서 화엄경은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말하고 법구경은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 사랑하면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면 만나서 괴롭다”고 한다.

1838303947ef8bb4077db7b23e86d60768664541.jpg
▲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게 아니다. 아마 그대와 나, 우리들의 만남도 그러할 것이다. 사진은 시공을 초월한 특별한 인연을 다루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작품 <너의 이름은.>. 사진=다음 영화.

법정 스님이 어느 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A라는 여자가 B라는 가난한 운동권 대학생을 사랑했지만 그를 차버리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했다. 20년 후, A의 딸이 연애해서 임신했지만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애인은 B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C라는 여자는 20대 말 D와 혼인했다. 헌데 남편이 매일 아내를 때리고 학대하자 견디다 못해 가출한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남편 D는 치매환자로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마침 같은 병원에 있던 C는 D를 알아보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어느 순간 퍼뜩 제 정신이 돌아온 노인은 쭈그렁 망태가 된 노파(아내)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 대목에서 난 울었다.)

198759_229184_4647.jpg
▲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죄는 지은 대로 가고 업은 지은 데로 온다. 우리 속담에 “팔자 도망은 못 간다”는 게 있다. 누구든지 잔인한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이 기막힌 업보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인연이고, 그 인연은 업보의 결과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게 아니다. 아마 그대와 나, 우리들의 만남도 그러할 것이다. 

첫사랑처럼 달콤하고 첫경험처럼 짜릿한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건배!!!…… / 장일홍 극작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