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저녁, 비어있는 어머니 방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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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詩 한 편] (28) 탈피 / 이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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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미
 
그제보다 어제보다 아침보다 마르는 저녁
 
수순대로 밟아가는 어머니의 시시각각
 
그 수순 받아들이는 침묵들이 무섭다
 
들숨에 귀 세우고 날숨에 손을 얹어
 
스무 해 신부전증 피문어 같은 혈관
 
더 이상 바늘 한 구멍 들이려고 않는데
 
휘 휘 어둠이 날미역 같은 머리를 푼다
 
다 닿아서야 고통과의 화해를 하시나
 
만조를 건너는 어머니 낯빛 고요하시다

-이애자,<탈피> 전문-

주변에 죽음의 그림자가 맴도는 나이, 지금 우리가 그런 때인가 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자리가 비워지고, 어머니 아버지 목소리가 사라진다. 명절이 되면 안방에서 상을 받고 앉아 계시던 어른들 대신에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어느덧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몇 안 남았다. 점점 집안의 한 쪽으로 밀려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었을 때,  드디어 내 차례가 오는가. 아니면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순서도 따지지 않고 나 먼저 덮치는 건 아닌가. 위기감이 든다. 주변에서 들리는 죽음의 이야기들이 남 얘기 같지가 않다.
 
어머니 죽음과 그 죽음에 도달하기까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 누구의 죽음인들 아픔 없이 읽을 수 있으랴만 유독 이 나이가 되어 읽는 어머니의 죽음은 가슴이 아프다. 시시각각 마지막 지점을 향해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침묵이 무섭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그러나 생은 고통과 손을 놓지 않아서 바늘구멍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통의 극단점에 와 있다.  죽음에 도달해서야 고통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고요한 낯빛을 보며,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제목에 한참을 머무른다. 죽음이란, 육체와 정신의 분리에 다름 아님을 인식한다. 마르고 마르다가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곧 죽음이니, 죽음 앞에서 울고불고 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부질없다.  굳이 죽음의 정의를 탈피라는 한 단어에 집약시키려 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한다.  얄미울 정도로 세세하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해 놓고,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의 파장 안에 옴짝달짝 하지 못하게 묶어 놓고, 그 모든 것이 탈피에 다름 아니니 그렇게 슬퍼할 것도, 아쉬워 할 것도 없다는, 그렇게 위안을 삼으려 하는 것이다.
 
1월 12일 아침 9시 45분, 지난했던 한 생애를 탈피하고 눈 쌓인 길을 지나 훨훨 날아가신 내 어머니는 지금, 어느 봄 꽃송이 위에 고운 날개 펼치고 계시는지. 비어 있는 어머니 방 앞에서 그 부존재가 주는 존재감을 몸서리치게 느끼다가 서둘러 돌아와 버린 설날 저녁이 내내 쓸쓸하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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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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